- 복음명령과 문화명령을 균형있게 수행해야 -

고유경 박사.
(Photo : 기독일보) 고유경 박사.

예수께서 "들의 꽃이 어떻게 자라나는가를 살펴보아라.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입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들꽃 한송이의 아름다움도 솔로몬의 인위적인 영화에 비길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살다간 최고의 문화적 인간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의 영광을 한갖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의 아름다움 앞에서 여지없이 격하시킨 것이다. 혹자는 이를 예수님의 인간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의 한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두가지 요소에 의하여 이루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하나는 바로 복음이요, 다른 하나는 이 복음을 표현해 내는 문화적인 형식이다.

문화신학자 '반틸'은 말하기를 종교는 문화와 분리할 수 없다. 모든 문화는 종교에 의하여 활기를 띤다. 기도에만 제한된 종교는 기형적이며 역사적으로 열매맺지 못한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아주 "비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문화창조를 위해서 밤낮으로 뛰면서 문화선교를 하는 사람들을 '2등 사역자'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문화에 신경을 쓰다보면 복음과 선교에 대한 관심을 저하시킨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과 문화를 분리하는 이원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한 주님의 최고의 지상명령인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역을 완수해 낼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다. 물론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마 28:19~20)이기에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최우선적인 사명 중의 하나이지만, 그러나 복음전파가 중요한 만큼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문화명령(창 1:27~28)도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때 '기독교문화', '기독교적 문화', 혹은 '그리스도의 문화'라는 말들을 함께 쓸 수 있다고 보는데, 이는 모두 복음이 기초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는 문화를 지칭하는 말이며, 복음(선교)사역과 함께 문화사역도 하나님의 일이라고 확신시켜 주는 말이다.

다시 말하여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잃어버린 자를 찾는 심정을 간직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바로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사명과 같은 것이 아닌가? 예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오늘날의 교회는 과연 잘 감당하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예수님의 이러한 지상명령을 현대판 씨 뿌리는 비유로 간략히 살펴보자. 이 일을 하기에는 네가지가 필요한데, 가령 먼저 씨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씨를 뿌리는 자와 씨를 자라게 하는 것(태양과 비, 비료 등), 그리고 씨가 뿌리를 박아 자라게 하는 토지(흙)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미 씨는 참씨앗인 예수 그리스도(복음의 씨앗)가 계시고, 그리고 햇빛과 비를 주시면서 자라게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것이며, 또한 씨를 뿌리는 일은 교회와 성도의 책임일찐대 대형교회나 개척교회나 구분할 것없이 이 일에는 어느 정도는 이미 잘 훈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토지(땅)인데, 오늘날 땅이 모두 썩어져 가고 피폐해져 어떠한 씨앗도 그 땅에서 자라지 못하고 뿌린 즉시 죽게 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즉 참씨앗인 복음도 이미 있고 씨를 뿌리는 교회와 성도들도 이미 열심히 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직접 자라게 하시는데, 과연 문제는 땅이 완전히 썩어가고 있기에 참씨앗인 복음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날 주님의 복음전파명령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먼저 토지개량, 즉 문화변혁에 관심을 가지고 워싱턴지역의 전교회와 성도들이 이 일에 시간과 물질을 집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가까운 지역복음화(전도)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온통 멀리 떨어져 있는 소위 세계선교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마치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려면 선교라는 슬로건을 걸어야 한다는 이상한 풍조(?)도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히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복음화 순서가 먼저 예루살렘-->온 유대-->사마리아-->땅끝 까지로 되어 있는데(행 1:8) 우리의 교회들은 그 역순으로 하는 것도 모자라 지역복음화, 즉 예루살렘과 온 유대는 아예 생략한 듯이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한다면, 여기서 말하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는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워싱턴지역의 문화적 토양을 개량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많은 복음의 씨앗을 뿌린들 모두 헛수고만 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우리의 자손들이지만 우리와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1.5세와 2세(Korean American Youth)들을 위한 복음화 사역에 관해서도, 이제는 기존의 1세교회들이 채택해 온 "EM Pastor" 채용만으로 해결하려는 임기응변식의 방법을 탈피하고, 미래지향의 새로운 대처방안을 철저히 강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흔히들 같은 문화권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전도(Evangelization)"라고 하고, 타문화권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선교(Mission)"라고들 한다. 인류문화는 세계관의 열매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문화의 뿌리는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20세기가 낳은 복음주의 사상가인 프란시스 쉐퍼는 서양문화를 분석한 틀을 요약하면서, "역사와 문화에는 하나의 흐름이 있는데 그 흐름은 사람들의 사고에 근거해서 흘러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바로 문화전쟁 또는 문명충돌은 바로 세계관의 전쟁이라는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 21세기의 전쟁은 군사와 경제전쟁이라기 보다는 그 이면에서 진행되는 잘못된 세계관과 바른 세계관의 대립과 충돌인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책이지만 동시에 인류문화의 기초가 되는 세계관적인 패러다임인 것이다. 그리고 세계관의 중요한 한 모퉁이를 차지하는 문화관의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워싱턴지역(볼티모어지역 포함)을 살펴보자. 500여개의 교회와 4만여 성도들이 있다고 하는데 좀처럼 성도의 숫자가 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 가운데 기존 교회끼리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는 형편이다. 큰 교회는 좋은 시설과 양질의 교육시스템이 있는 관계로 이미 구원받은 타교회 성도들이 수평적 이동으로 대거 몰려옴으로 인해 장소부족과 새신자교육의 과부하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을 겪고 있으며, 소형교회나 개척교회는 주위에 중/대형교회가 들어온다고 하면 지레 겁을 먹고 불신자 전도보다는 기존 성도관리에 노력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중/대형교회로 떠나는 교인들을 단지 뒤에서 물끄러미 쳐다볼 수 밖에 없으며, 심지어는 문을 닫는 소형교회가 계속 늘어난다는 이야기에 마음 아프기도 하다.

이러한 가운데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회가 연합하여 워싱턴지역의 문화를 개량하는데 힘을 합치는 것 뿐이다. 이 일을 수행함에는 대형-소형교회의 규모를 따질 필요가 없으며, 단지 이단 종파가 아닌 정통 복음주의(Evangelical)라면 교리나 교파의 벽을 뛰어 넘어 공동전선을 구축하여 기독교의 진리인 복음을 문화적인 양식을 통하여 표현하고 전달하는데 힘을 써야 하겠다.

그리고 교회들도 성도들이 드리는 헌금을 사용함에 있어서 분명히 그 우선순위를 복음전파에 두어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교회재정을 복음명령(선교)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의 씨앗이 잘 자랄수 있도록 하는 토질개선(문화명령)에도 균형되게 집행할 것이며, 오히려 오늘날은 문화명령을 수행하는데 더욱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워싱턴지역에서 기독교복음 문화운동에 앞장을 서고 있는 기관들(신문, 방송, 예술, 음악, 출판 등)중 대부분이 재정적으로 어려워 지역복음화를 위한 문화사역을 감당하는데 상당히 어렵다고 하는 것은 바로 워싱턴지역의 땅이 완전히 썩어 더 이상 복음의 씨앗이 자랄 수 없다는 증거이며, 또한 교회는 개교회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마치 신앙클럽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느낌마저 들 정도가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세계복음화 국제대회에서 결정된 로잔언약 제10항(전도와 문화)에서 교회는 복음을 문화상황에 맞게 설명함으로써 그 문화속에서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독교인들도 문화를 누리는 사람들이지만 특별히 하나님께로부터 '문화의 파숫꾼이자 문화의 변혁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임을 기억하자고 천명하였다. 이처럼 지역의 교회들과 성도들도 이제부터 문화의 변혁자로 거듭나야 하겠다.

이제 워싱턴지역의 문화변혁을 갈구하면서 하나님의 문화명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명령을 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지역의 기독교문화 사역기관들의 유기적인 협력 강화를 통하여 지역의 제교회와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각오로 더욱 힘을 다해 워싱턴지역 복음화에 매진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하여 성도들의 뜨거운 기도와 이를 추진할 주님의 신실한 동역자들이 자원해서 동참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다.

끝으로, 개구리 삶는 비유가 우리의 상황을 잘 이해시켜 준다. 즉 개구리를 푹 삶기 위하여는 팔팔 끓는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던져 넣는다면 어떠한 개구리라도 즉각 튀어나오게 되어 실패할 것이며, 다만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넣어 개구리로 하여금 기분을 만끽하도록 하면서 서서히 열을 가하여 개구리를 푹 삶을 수 있다는 농담같은 비유를 회상하면서 우리지역의 16만에 해당하는 동포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인지를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하면서 강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