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도 않지만 죽지도 않는 녀석’이 나타났다. B급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좀비’가 문화계 전반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것.

그 절정은 전 세계에서 개봉한 최신작 블록버스터 <월드워Z>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판권 경쟁’으로 화제가 됐다. 앞서 올해 초 개봉한 <웜 바디스>에서는 젊은 남성의 뇌를 먹은 좀비의 ‘로맨스’가 펼쳐지기도 했다. 이밖에도 최근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나 예능, 웹툰 등 문화 콘텐츠는 무수히 많다. 그렇다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 ‘요물’을 기독교 세계관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까.

‘가장 진화한 좀비’가 나타나는 영화 <월드워Z>.
(Photo : 기독일보) ‘가장 진화한 좀비’가 나타나는 영화 <월드워Z>.

◈좀비의 탄생, 그리고 변주(變奏)

‘좀비(Zombie)’는 원래 아메리카 서인도 제도의 부두교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컫는 말로, ‘살아있는 시체’라는 형용모순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단어는 현재 컴퓨터 해킹의 매개물(좀비PC)이나 특정 정치진영을 빗대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서 탐욕스럽고 부패한 금융인들을 비꼬는 의미로도 등장했다.

좀비는 비록 허구의 존재이지만, 주로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각인됐다. 최초의 좀비 영화는 1932년작 <화이트 좀비>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의 모습은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좀비는 △살아있는 사람을 먹고 △자신들끼리는 죽이지 않으며 △좀비를 없애는 길은 머리를 공격하는 것 뿐이고 △전염이 가능하다는 등의 ‘특징’을 갖게 됐다.

영화평론가 강진구 교수(고신대)는 “좀비는 보통 부두교에서 나왔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할리우드가 이를 불러내 만들어냈다고 봐야 한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는 영화에서 창조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할리우드에서는 A급과 B급을 나누는 기준이 작품성이 아니라 제작비인데, 공포물은 대부분 저예산으로 만들어진다”며 “적은 돈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고 관객들을 불러모으기 가장 쉬운 것이 공포물이고, 좀비는 이러한 공포물 중 가장 늦게 출연한 대상”이라고 했다.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으면서 만화·영화 등에 조예가 깊은 울산라이즈업무브먼트 조휘용 목사(울산교회)는 “B급 문화에서 주로 소비되던 좀비를 일본 쪽에서 게임으로 재활용했고, ‘바이오 하자드’나 PS용 게임 등으로 인기를 끌자 미국으로 건너가 ‘레지던트 이블’이 출시됐다”며 “불을 꺼 놓은 채 혼자 이불 속에서 움찔움찔하는 게임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영화화됐고, 나름대로 검증이 끝나 영화로 제작됐다”고 밝혔다.

◈영화계가 ‘캐스팅’한 좀비, 날이 갈수록 진화하다

만화 ‘바이오 하자드’.
(Photo : 기독일보) 만화 ‘바이오 하자드’.

조 목사는 “비슷한 이미지의 드라큘라는 문학에서 왔지만, ‘좀비’는 돈이 될 가능성이 있어 영화계로까지 넘어온 사례이고 대표적인 것이 <월드워Z>”라며 “원래 좀비는 뛰지 못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스펙터클을 위해 뛰어다니는 좀비들이 등장했고, <웜 바디스>에서는 좀비에게 ‘마음’을 주어 여성을 사랑하는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감염된다는 점에서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진격의 거인’과도 연결이 가능하다”면서 “드라큘라는 ‘인간보다 뛰어난 소수’로서 엘리트적 개념이라면, 좀비는 ‘나’를 제외한 다수인 데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점에서 영화적으로 매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강진구 교수도 “<월드워Z>만의 특징이 있다면, 예전에는 바이러스가 퍼져도 한 나라에서 질병이 끝났지만 이제 세계 어디서든 순식간에 퍼질 만큼 연결된 사회 구조를 갖게 됐다는 것”이라며 “영화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무차별적으로 전 세계에 퍼지면서 인간에게 위협을 주는데, 이는 공포의 대상에 대한 문제를 전 사회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잘 알려진 에볼라 바이러스나 조류 독감 등이 전 세계 공통의 문제로 떠올랐는데, 이런 사회환경적 위기감이 좀비를 통해 극대화됐다는 것.

강 교수는 또 “상업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사람들은 ‘좀비’를 악(惡)이라 규정하기 때문에 좀비를 죽이는 것에 죄책감보다는 상당한 쾌감을 느낀다”며 “윤리적으로 지탄을 받는 폭력에 대해 사람들은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할리우드에서는 ‘폭력에 대한 정당성 부여’가 굉장히 중요한데, 좀비에서는 이것이 가능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영화 속에 폭력 장면이 많을수록 관심을 끌기 쉬운데, 떼로 나오고 죽지도 않는 ‘좀비’에 대해선 ‘무차별적 살상’도 무리가 없다는 것. 그는 “‘좀비’를 하나만 죽이는 경우는 없고 기본이 수백 단위인데, 이처럼 ‘좀비’가 영화에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듯한 잘못된 쾌감을 안겨주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며 “‘좀비’가 현대 사회의 위기 의식을 드러낸다지만, 상업적으로는 실체하지 않는 대상을 하나의 ‘사냥감’으로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좀비를 불러낸 사회, 이를 치유해야 할 교회

<월드워Z>에서 엄청난 숫자의 좀비가 등장하는 모습. 좀비들이 오르고 있는 벽이 있는 곳은 ‘이스라엘’로 설정돼 있다.
(Photo : 기독일보) <월드워Z>에서 엄청난 숫자의 좀비가 등장하는 모습. 좀비들이 오르고 있는 벽이 있는 곳은 ‘이스라엘’로 설정돼 있다.

‘좀비(월드워Z·웜 바디스)’, ‘이상기후(설국열차)’, ‘종말(엘리시움) 등 영화계에서는 이러한 ‘극단적 설정’이 계속되고 있다. 강진구 교수는 이에 대해 “일단 영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현실 사회에 대한 불안과 위기 의식의 결과물”이라며 “이상 기후나 핵에 대한 공포, 테러 등의 문제들이 항상 세상에 존재하다 보니 불안하고, 그러한 심리를 ‘종말’을 통해 드러내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좀비’의 경우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가 투영됐다고 했다.

조휘용 목사는 “지금 우리는 SNS를 통해 모든 것이 완전하게 공개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며 “까놓고 얘기하면 돈이 될 게 별로 없어서 좀비가 나온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듯 글 하나만 SNS에 잘못 올려도 단 한번에 몰락해버릴 수 있는 구조에 대한 미지의 두려움이 좀비로 구체화됐다고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문화사역자 신상언 선교사(낮은울타리)는 “영화 제작자들은 대박이든 쪽박이든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생명을 바쳐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어 낸다”며 “영화 제작자들에게는 어떤 감각 같은 게 뛰어나 미래에 대한 예견력이 있다고 평소 생각해 왔는데,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 중 하나인 불안과 절망감을 감독들이 잘 포착하고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강진구 교수는 “영화에서 사회적인 위기와 종말을 다루고 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고, 해결 방안이 문제”라며 “기독교 세계관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이 위기와 불안감을 갖고 있음을 이해하고 교회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월드워Z>에서는 좀비를 관찰하면서 질병에 걸린 이들이 잘 보지 못함을 파악하고 주인공이 자신의 몸에 바이러스를 주입해서 이를 퇴치하는 등, 그 대안이 ‘과학’이었다”며 “기독교는 이러한 ‘과학 중심적 사고’를 가진 세속적 대안 앞에서, 훨씬 더 수준이 높은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보다 실질적이고 영속적인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질적 대안’에 대해 강 교수는 “영화에서는 ‘왜 좀비가 나타났는가’를 말하지 않지만, 기독교인들은 사회의 건강성 즉 자연과 생태계, 환경 등을 하나님께서 주신 ‘문화 명령’에 따라 잘 보호하고 지켜 나가야 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의미에서 질병이나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기독교의 책무라는 것.

강 교수는 “좀비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추세는 아니다”면서도 “우리는 사람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므로,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을 통해 불안을 이겨내고 참된 생명을 향한 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함을 알려야 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