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온누리교회 유진소 목사가 중앙장로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다.
(Photo : 기독일보) ANC 온누리교회 유진소 목사가 중앙장로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다.

ANC 온누리교회 유진소 목사가 중앙장로교회(담임 한병철 목사)에서 부흥회를 인도,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성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아가페 사랑에 대한 깊고도 재미있는 강해로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26일(금), '장성한 사람'을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유진소 목사는 "성경 전체는 사랑으로 연결된다. 아담이 에덴에서 추방된 것은 사랑의 공급라인이 끊어진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다시 연결하셨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림이라면 이를 비추는 조명과 같은 분이다. 이는 곧 성령의 역사도 결국 사랑의 역사임을 말해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유진소 목사는 "성령 충만의 본질은 사랑이다. 바울은 성령의 9가지 열매에 대해 말한다. 9가지 열매는 모두 인격에 관한 것이다. 신앙과 인격은 분리될 수 없다. 성령의 역사는 절대 비인격적이거나 탈인격적인 것이 아니다. 그 중 첫번째 열매는 사랑이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며 그 사랑의 신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성경 전체를 꿰뚫는 아가페 사랑에 대해 설명해 냈다.

다음은 유진소 목사의 설교 요약

인간의 타락 이후 온전한 이는 아무도 없다. 가장 훌륭한 사랑을 꼽으라면 부모의 사랑을 많이 꼽겠지만 이는 위대할지언정 완전하진 않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겠지만 그 사랑이 빗나가거나 무지한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아들과 갈등하며 느낀 것은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20년간 설교를 했고 그 모든 주제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모른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사랑에는 남녀간의 사랑인 에로스와 친구간의 사랑인 필레오, 가족간의 사랑인 스텔게가 있다. 예수님은 이런 단어들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없어 그 당시 헬라어에서 거의 쓰지 않던 단어 '아가페'를 가져다 쓰셨다. 아가페는 굳이 해석하자면 후하게 대접함, 연민 등으로 표현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이 사랑을 받았으며 해야 할 사랑이다.

그러면 아가페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인가. 3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아가페 사랑은 우리의 인간적 본능과는 상관이 없다. 이는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다. 아가페 사랑에는 욕심과 이기심이 없다. 본능에 관련된 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아가페 사랑은 자연적으로 되지 않는다. 본능을 거스르는 것은 훈련 받고 결단해야 한다. 사랑하기로 결정을 해서 하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 삼았다. 그 분 또한 아들의 죽음으로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겪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기로 결정했기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가페 사랑이다.

두 번째로 아가페 사랑에는 대상이 없다. 사랑의 대상이 있으면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사랑의 강도가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아가페 사랑은 대상과 상관이 없다. 따라서 영성이라 할 수 있다. 대상과 상관없이 사랑이 내게서 나가는 것이다. 그가 받던 안 받던 상관이 없다. 그래서 아가페 사랑이 죄를 이긴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것은 상대와 상관없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다. 이것 또한 그냥은 안 된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 가능하다.

세 번째로 아가페 사랑은 주기만하지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줄 때 받겠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서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이다. 그가 표현한 사랑들을 보면 대개 추상적이고 상징적이다. 또 한 사람 사랑에 대해 잘 표현한 사람이 있는데 바울이다. 그의 글은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을 보라. 여기에 이해 안 될 말이 하나도 없다. 이를 잘 정리해 보자면 크게 4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아가페 사랑은 참아주고 품어주는 것이다.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참지 못하는 것과 두려워 하는 것이다. 두렵기 때문에 참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가 망가질까, 잘못될까 하는 두려움이다. 영어성경을 보면 구약에서는 에세드라는 단어를 Grace로 신약에서는 카리스라는 Grace로 표현한다. 영어성경 중 다른 버전을 보면 카리스를 Unfailing Love라고 표현하고 있다. 은혜란 참아주고 품어주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다. 바로 십자가 사랑이다.

두 번째로 아가페 사랑은 겸손한 것이다. 섬김이다. 예수님은 아가페 사랑 그 자체였다. 겸손함을 보여준 것이 얼마나 많은 가. 교만은 사랑을 망가뜨린다. 사랑하는데 왜 열 받고 화가나나. 교만하기 때문이다. 아가페 사랑을 해보면 아가페 사랑을 시도하는 순간 성령께서 임하신다. 기쁘다. 이는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자 특권이다.

세 번째로 아가페 사랑은 자기 중심적이지 않다. 서로간의 사랑의 언어가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관심이랑 사랑의 언어를 갖고 있고 어떤 이는 배려라는 사랑의 언어를 가질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로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알면 이 갈등은 해결 될 수 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랑이 이기적이 되면 '관심'은 '통제'가 되고 '배려'는 '방치'가 된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신 것이 사랑이다. 우리의 자리까지 내려오신 것이다. 그 분의 입장이 아닌 우리의 입장으로 내려 오신 것이다.

네 번째로 아가페 사랑은 바르고 긍정적이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악한 것을 북 돋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때론 바르고 긍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오래 참고 품는 것, 겸손한 것 등과 충돌된 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성령이 함께하시면 오래 참고 인내하면서도 바르고 긍정적일 수 있다. 예수님은 그 뜻대로 바르고 긍정적인 것들만을 하셨지만 우릴 끝까지 사랑하고 섬기며 모든 것을 주셨다.

바울은 사랑을 은사와 9가지 열매로 표현했다. 이 은사를 받지 못하면 신앙은 절대 성장할 수 없다. 9가지 열매의 다음 장에는 장성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랑을 하면 장성한다는 것이다. 신앙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아가페 사랑을 하라. 가정에서 교회에서 인생 가운데 아가페 사랑을 하라. 사역을 많이 해서,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더 배우면 혹은 다른 어떤 것을 해서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아가페 사랑을 하는 데서 성장한다. 그리고 그곳에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