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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칼럼]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라

기독일보 seattle@christianitydaily.com

입력 Apr 08, 2013 06:57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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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어느 편이냐'가 아니라

김형태 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김형태 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신앙인들은 종종 하나님을 자기 이익과 목적 추구의 조력자(servant)로 생각하기 쉽다. 우리 인간의 목표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들의 성장을 도우며 자기의 하는 일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노력하며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각급 조직이나 기관의 리더들은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자문자답해야 한다. 테러리스트들이 의지하는 신과 우리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같은 존재인가? 성경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지식의 출발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해 축복하시고 열방의 아버지(믿음의 조상)가 될 것을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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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기록자는 "너희는 여호와의 善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福이 있도다(시 34:9)"라고 썼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요 3:16)".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관리하고 유지하신다. 또 하나님을 향해 경배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시는 분으로 드러내신다. 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다(히 13:8).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이 곧 이슬람과의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어느 한 신앙이나 한 종교단체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누구 편이냐를 따지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냐 아니냐인 것이다.

많은 희생자를 낸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과 북군의 지휘관들은 똑같은 하나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똑같이 하나님이 자기들 편이라고 주장했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링컨의 삶과 리더십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모든 존엄과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신념을 갖게 하였다. 처음엔 북부연합을 해방시키기보다는 노예제도의 억제조정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남북전쟁으로 인해 재난과 고통과 죽음이 온 땅을 휩쓸고 남북 양 진영이 같은 하나님께 서로 승리를 간구하는 모순 속에서, 그는 문제의 본질을 발견하게 되었다.

역시 문제는 하나님이 어느 편이냐가 아니라 어느 편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느냐는 것이었다. 분명한 해답을 찾은 링컨은 전쟁 도중에 '노예해방'을 선포하였다. 노예제도는 악한 제도였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자신의 운명은 자기 책임 하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난 후로는, 남군의 승리냐 북군의 승리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인권보장의 승리냐(하나님의 승리) 아니면 인간의 편의적인 이해득실 추구의 승리냐(인간의 승리)의 대립이요 싸움이라는 것을 따져야 했기 때문이다.

두 진영 간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전쟁이라는 현실을 알고 나니까, 하나님의 승리를 위해 싸워야겠다는 새로운 전쟁관이 생긴 것이다.

그는 전방 지휘관들이 "대통령 각하, '하나님이여 우리 편을 도와주옵소서!'라고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할 때, "난 그런 기도는 못하겠다. 대신 '우리들이 하나님 편으로 가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기도의 중심이 '인간'에서 '하나님'으로 바뀐 것이다. 하나님이 고정된 자리에 머물러 계시고 우리 각 사람들이 그 분 쪽으로 옮겨가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기도의 바른 자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하인 다루듯 자기 뜻과 소원 성취를 도와주는 심부름꾼 정도로 생각하며 산다.

또 링컨은 아무리 노예해방령과 그 의도가 옳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하고 적용하는 절차와 방법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좋은 목적을 나쁜 방법으로 추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개의 전쟁들이 목적은 숭고해도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방법을 통해 추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링컨이 전한 재선 취임사는 승리 축하가 아니라 희생자 위로의 메시지로 표현되었다. 그 한 부분을 읽어보자.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고, 모든 이에게 자비를 품고, 하나님이 주신 정의를 굳게 믿으면서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 이 과업을 완수합시다. 국가의 상처를 싸매고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과 그로 인해 홀로 된 과부와 고아들을 돌봅시다(이하 생략)." 신앙에는 '신학적 정의'와 함께 '실행적 덕목'도 중요한 것이다.

①모든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②사람들의 성취 뿐 아니라 인격적 성장에도 도움을 주며 ③사람들을 일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대하며 ④사람들이 하나님을 자유롭게 탐구하며 공개적이고 편안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도록 가르치고 도와줘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목적 가치'로 대해야지 '수단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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