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외로워합니다. 참으로 믿을만한 친구를 가져보았으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 동역자를 가져보았으면, 모든 것을 다 믿고 맡기며 얘기할 수 있는 유능하면서도 신뢰할 만한 파트너를 가져보았으면 이런 바램들을 갖습니다. 모세가 바로 이같은 상황에 처했던 것 같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받는 40일간, 금귀고리를 빼내어 아론에게 가져다주며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내라고 합니다. 아론은 백성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결국 금송아지를 만들어주며 백성으로 엄청난 우상 숭배의 죄악을 저지르게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매우 진노하셨고 모세는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모세는 아론에게 크게 실망했던 것 같습니다. 이 우상 숭배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너희끼리 약속의 땅에 올라가 잘 살아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같이 안 가겠다는 무서운 선언을 하십니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에게 간구합니다. “나와 함께 보낼 자” 즉 파트너를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때 모세는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리더로서의 와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는 누구인가 자기를 돕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그 무거운 책임감과 짐을 나눌 진정한 동반자를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My presence will go with you. I, Myself, will go with you.“ 모세가 파트너를 보내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의 답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파트너가 되어주시겠다는 제안입니다. 이후의 출애굽기의 내용을 보면 결국 모세는 아론과 함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파트너를 바꾸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 막강한 파트너십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모세의 파트너가 되어주시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파트너가 되어주셨을 때, 모세는 이후 아론과 여호수아와 같은 훌륭한 동역자관계를 이루어 가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어려운 순간들, 사람들을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직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파트너가 되어 주셔야 세상의 파트너들과도 잘 지낼 수 있습니다. 형통한 자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파트너로 모시는 사람”일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파트너를 잘 만나면 성공합니다. 거꾸로 파트너를 잘못 만나 망했다는 얘기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큼 훌륭한 파트너가 어디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파트너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의 모든 자원이 되시고 모든 기회가 되신다는 의미 입니다.

그런데 예수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파트너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그리고 이 약속은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이나 모세, 여호수아, 다윗의 파트너가 되어주셨듯이,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이제 우리의 파트너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파트너십을 약속하신 후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I will give you rest.”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파트너십을 누리는 자들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파트너십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러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든지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는데 문제는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는가입니다. 다윗은 대표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삶에는 “묻자와 가로되” 라는 기록이 자주 등장합니다, 다윗은 범사에 주님께 여쭈고 의논하며 살아감으로 하나님과의 파트너십을 견고히 했음을 봅니다. 우리에게도 위대한 파트너가 계십니다. 그 분과 가까와지기를 사모하며, 범사에 여쭈고, 의논하고 순종하며 위대한 파트너십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늘 리더로서의 외로움 가운데 살아가는 저에게 가장 신뢰할만한 위대한 파트너가 항상 저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