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은 에스더 금식일로, 에스더와 유대인들이 금식함으로 유대인들을 전멸의 위기에서 구원한 사건을 기념하는 부림절을 기억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금식하는 날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저 역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날의 금식에 동참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에스더 금식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며, 리바이브 이스라엘 대표이신 아셔 인트레이터 목사님이 “또 그럴 수 있을까?” 라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지금도 에스더서에 기록된 것과 비슷한 일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에스더서와 현재의 중동정세에 비추어 설정해 본 것이지요. “당시 바사 왕국이 인도에서 이집트까지 127개 주를 다스렸듯이 127국가로 된 국제 연합, 하만과 같이 거짓말과 속임수로 정치적 영향력을 얻는 악한 지도자의 등장, 전세계의 유대인들 내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전부 죽일 법의 통과, 이란(페르시아)이 유대인 학살의 결정적 역할, 찬양과 경배 가운데 왕이신 주님을 사랑하는 친밀한 신부의 영성을 가진 에스더같은 교회가 일어남, 교회가 유대적 뿌리에 접붙임받은 사실을 인정하며 에스더같이 유대 민족의 구원을 위해 중보하며 금식함, 이스라엘 박멸의 재앙이 다가오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갑작스럽고 초자연적인 반전이 나타남, 하나님의 백성들이 싸워 승리함, 모르드개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전권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됨,” 과연 이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아셔 목사님은 일어날 수 있다고 결론 짓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우선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반복되는 역사가 그렇게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물론이요, 여호수아와 함께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가나안 7민족과 싸워야 했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하고 에서가 야곱을 미워했듯, 지금도 이스마엘과 에서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미워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했듯이 모세 당시, 이집트의 바로왕은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들을 다 죽이고자 하였고, 예수님 당시 헤롯왕은 3세 이하의 이스라엘의 사내 아이들을 다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에스더 당시 하만이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고자 하였듯이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역시 유대인들 학살을 시도하였고, 마찬가지로 로마의 디투스 장군은 유대인들 전멸을 계획하며 잔인하게 저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서기 135년 바르-코크바가 일으켰던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유대인들은 로마에 의해서 나라를 완전히 빼앗기고 디아스포라로 방황하게 되었고, 당시 캐토릭들은 유대인들을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라 하여 핍박하였습니다. 반세미티즘의 역사는 이후 지속적으로 반복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1290년에는 영국에서, 1306년에는 프랑스에서, 1492년에는 스페인에서 추방당하였고 독일에서는 1348년에, 스페인에서 1391년에 각각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1478년에 있었던 종교 재판 이후, 로마 교황은 서유럽에서 유대인들을 몰아낼 것을 명하는 1555칙령을 발표 하였고, 마침내는 600만명의 유대인이 희생되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현재 아랍국가들, 특히 이란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지구 상에서 없애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멸 시나리오가 4000년의 역사를 통하여 너무나 동일하고 일관성있게 반복됨에 우리는 그저 놀랄 뿐입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이스라엘 회복과 반전의 역사 또한 반복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열국의 모진 탄압과 전쟁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의 주인이 되었고, 모세도 모르드개도 죽음의 위협가운데 살아나서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가 되었고, 지난 1948년 이스라엘은 결국 2000년만에 국가로 독립되었습니다. 과연 토인비의 말대로 역사는 반복되며, 이스라엘 반전과 회복의 역사 역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반복될 것입니다. 지난 부림절, 저는 시 122:6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온 세상의 미움을 받는 이스라엘의 구속사적 입장을 헤아리며 그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그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어찌 축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며 유대인의 회복을 위하여 중보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