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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과 아인슈타인을 잇는 천재학자, 맥스웰의 신앙

기독일보 함영환

입력 Feb 21, 2013 05:25 P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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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맥스웰의 탁월함

과학사를 보면, 뛰어난 과학자였으면서도 그가 연구한 분야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학문이거나 학문 자체가 대중과 친근하지 않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에게 그 업적이 평가절하되어 있는 인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과학자들일수록 아주 심오하고 뛰어난 업적들을 일군 과학자들인 경우가 많다. 사실 이들이야말로 과학의 천재였다. 아인슈타인이 “인류 역사상 3대 과학자의 한 사람”이라 극찬했던 마이클 패러데이나, 지금 소개하는 맥스웰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에 대해서는 “뉴턴 이래 가장 심오한 결실을 맺은 이론 물리학자”라고 하였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맥스웰은 과학사에 있어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최대 이론 물리학자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사실 그가 발견한 네 개의 수학 방정식은 오늘날 뉴턴의 운동 법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와 함께 물리학 사상 3대 공헌으로 꼽히고 있다. 전기와 자기(磁氣)는 맥스웰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현상을 통합할 수 있는 이론은 맥스웰이 살던 당시까지 아무런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 두 현상을 통합할 수 있는 미분방정식을 유도해 낸 사람이 바로 맥스웰이었다. 그가 유도해 낸 네 개의 방정식으로 인해 광학과 전기학과 자기학은 비로소 똑같은 이해의 체계 아래 해석되고 연구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이론과학과 응용과학에 있어 그가 이 분야에서 이룩한 연구 성과의 파급효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의 방정식에 따르면, 전자기파의 속도는 매초당 30만km로 빛의 측정 속도와 같다. 즉 빛을 일종의 전자기파로서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파장 중에는 가시광선 외에 주파수가 다른 별개의 전자기파가 있다는 것도 그의 방정식으로 증거가 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죽은 지 8년이 지난 1887년에야 비로소 독일의 천재 물리학자 헤르츠(1857-1894)에 의해 겨우 입증될 수 있었다.

2-3년 뒤 마르코니는 이 전자기파를 이용하여 그 유명한 무선전신을 발견하였다. 엑스선, 감마선, 적외선, 자외선 등도 맥스웰의 이론에 의해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들이 훗날 발견된 것이었다. 오늘날 라디오를 듣고 TV를 시청할 수 있고 다양한 디지털 영상이 가능하게 된 것도, 그가 처음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덕분이라고 보아도 그리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요셉 클락 맥스웰(Joseph Clerk Maxwell:1831-1879)은 스코틀랜드의 수도였던 에딘버러에서 변호사였던 존 클락 맥스웰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는 바로 위대한 크리스천 과학자였던 패러데이가 전동기를 만들어 낸 해라는 것이 우리의 흥미를 끈다. 이들 두 사람은 신앙적으로는 모두 신실한 장로인 동시에, 과학 분야에 있어서는 오늘날의 전기와 전자 분야에 있어 각각 실험 및 실용 분야와 이론 부분의 기초를 닦은 위대한 과학자들이었다. 또한 패러데이의 여러 과학적 발견에 대해 맥스웰이 수학화에 열심을 내었다는 것은 과학사에 전해지고 있는 유명한 일화이다. 패러데이는 탁월한 과학자이기는 하였으나 초등 학력이 전부였다. 수학과 물리학의 이론적 기초는 당연히 맥스웰 쪽이 탁월하였다. 하지만 맥스웰은 겸손한 과학자였다. 맥스웰은 그의 선생 패러데이와 반대되는 해석을 내리는 무례를 결코 범하려 하지 않았다.

8살 때 시편 119편을 모두 암송한 천재 아이

그는 어릴 적부터 상당히 조숙하고 머리가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그의 천재성을 뒷받침하는 일화 중에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8살 때 이미 그가 성경 시편 119편을 암송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맥스웰이 8살이 되던 그 해는 그의 어머니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해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지킬 것을 반복 강조하는 시편 119편은, 총 176절로 구성된 성경에서 가장 긴 구절이다.

아마도 병약했던 그의 어머니는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어린 자녀의 신앙을 위해 의도적으로 시편을 암송시킨 것 같다. 어머니의 이 같은 의도적 교육은 모태신앙인 맥스웰이 신앙적 굴곡 없이 훗날 교회의 장로로서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삭일 겨를도 없이 이 위대한 천재는, 아들의 천재성을 간파한 그의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정교사에게서 철저히 양육되었다. 맥스웰은 에딘버러 아카데미를 거쳐 불과 15세 때 영국 왕립협회에 ‘난형 곡선에 관한 논문’이라는 어려운 수학 논문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847년 에딘버러 대학을 거쳐, 1850년에는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청년 시절에도 역시 그는 뛰어난 천재 과학자로서의 재능을 보인다. 토성의 주위를 돌고 있는 토성의 고리(띠)가 액체나 고체가 아니라 작은 고체 입자일 것이라고 수학적으로 분석한 맥스웰의 결론은, 100여년이 지난 뒤 미 우주선 보이저호에 의해 비로소 확인이 되었다.

맥스웰은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된 후로는 거의 일생을 몇몇 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수많은 과학의 법칙들을 발견해 내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용어들을 모르면 물리학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을 만큼, 그는 물리학 분야에서 찬란한 공헌을 남긴 과학자였다. 그 이론들을 살펴보면, ‘맥스웰 방정식’ 뿐 아니라 기체가 일정한 온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수식화한 ‘맥스웰 분포식’, 색깔의 혼합도를 시험하는 ‘맥스웰 원판’, 외부의 압력에 따른 물체의 역학적 관계를 설명하는 ‘맥스웰식’, ‘맥스웰 변형’, ‘맥스웰 볼츠만 분포’ 등 현대 과학자들조차 잘 이해하기 어려운 법칙들을 그는 100여년 전에 연달아 발표한 것이다. 이 같은 일련의 연구 과정을 거치면서 맥스웰은 영국 과학자단체인 왕립협회에서 주는 럼포드메달도 수상하였으며, 1861년에는 왕립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누군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맥스웰은 19세기 물리학자들의 왕자였다!”
다윈의 진화론을 반박한 과학자


그렇다면 ‘19세기 물리학자들의 왕자’였던 맥스웰은 진화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다윈 시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다윈의 편이 되었던 것으로 여긴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당시 영국 자연사박물관장이었던 리처드 오웬은 진화론을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맥스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윈과 거의 같은 시대 사람이었는데, 진화론을 반박한 것으로 유명하다.

“분자의 유사성을 설명할 수 있는 진화의 가설이란 없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끊임없이 변화되어간다는 것을 항상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1796년 무신론자였던 프랑스 사람 라플라스에 의해 제안된 우주 진화 가설인 성운설도 수학적 자료를 가지고 반박했던, 철저한 신앙인이었다.

교회 장로 맥스웰의 신앙

그는 성경의 가르침이 결코 과학적인 연구와 별개의 것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생령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셔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고 창조하신 세상을 사람들에게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구를 다스림으로써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솜씨를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훗날 그의 노트에서 발견된 기도문은 성경 창세기 말씀에 대한 그의 깊은 신뢰와 확신, 그리고 우리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창조 세계에 대한 청지기직과 인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의 고백으로 차 있었다.

그는 교회 장로로서 성경에 관한 심오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거기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겸손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순종으로 일관한 삶을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마리샬 대학에 근무하던 당시, 그 대학 학장의 딸이었던 캐더린 메리드워와 결혼하였으나 평생 동안 자녀는 없었다. 그들 부부에게 2세가 없었다는 사실은 주 안에서 그들이 누구보다도 헌신된 삶을 산 또다른 이유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가난한 자를 돌보며 그들과 함께 기도하며 고통을 나누는 일에도 항상 열심이었다.

“그는 고결한 인격에 위대한 능력과 독창성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하나님 앞에 늘 깊은 겸손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의 대학 동료였던 한 교수가 훗날 그를 표현한 말이다.

1879년 11월 5일,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뛰어난 과학자이자 헌신된 그리스도인이었던 맥스웰이 48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를 조금은 아쉽게 한다. 그러나 헌신되고 성령 충만한 최초의 집사 스데반을 하나님께서 최초의 순교자로 데려가셨듯이,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가 어떻게 모두 알 수 있을까?

“사고(思考)가 사실과 단단히 맺어져 있는 어둡고 깊고 은밀한 곳으로 나를 이끌고 가서 수학자의 정신 작용과 분자의 물리적 행동을 그 진정한 관계 속에서 볼 수 있게 하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맥스웰)

* 이 글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연구소’ 홈페이지(www.kictnet.net)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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