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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칼럼]미움과 고난에도 감사

기독일보 @chdaily.com

입력 Feb 15, 2013 10:26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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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켄한인장로교회 이기범 목사

스포켄한인장로교회 이기범 목사

노새 한 마리가 마른 우물 속에 빠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쓸모없는 동물을 굳이 살려낼 필요가 없다고 의견을 모았고, 그대로 매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삽으로 흙을 퍼서 던졌습니다. 그러나 노새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등판에 흙덩이가 떨어질 때마다 노새는 몸을 흔들었습니다. 흙이 떨어지니 이제 나는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흙을 밟고 올라섰습니다.

삽질이 이어질수록 노새의 위치는 높아졌습니다. 결국 노새는 우물 꼭대기에 닿아 걸어 나왔습니다. 노새를 죽이려는 자들이 생각했던 매장 방법, 그것이 도리어 노새를 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고소하고, 사람들을 여론으로 몰아 불법 재판을 강행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악의에 찬 감정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면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모든 상황이 끝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더구나 3일 동안 주님이 무덤에 갇혀 있을 때는.

그런데 하나님은 이 끝나보이는 듯한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역사적 사건 가운데 가장 놀라운 반전을 일으키신 것이지요. 하나님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좋은 일과 나쁜 일,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을 각 자 표현하고 행동하도록 허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종합하여 놀라운 퍼즐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구원의 퍼즐 말입니다.

인간의 구부러진 판단과 병든 의지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6)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왜 고난이 닥치도록 허용하시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왜 주님 곁에 배신자 유다 같은 인물을 그냥 두셨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여인의 유혹을 물리친 요셉에게 왜 억울한 옥살이를 살도록 허용하셨느냐고 항의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득세하는 것 같고, 착한 사람들은 늘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창에 찔렸고, 순교당했습니다.

왜 신실한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는지, 도리어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그 현상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높은 생각, 깊은 사랑을 우리가 다 가늠할 수 있을까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55:9).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기범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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