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본질은 '대화'

"진보건 보수건 신학은 당연히 대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신학의 가장 큰 문제는 대화의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겁니다. 우리 시대가 당면한 생태계 위기, 전쟁, 경제 양극화, 기술과학 발전에 따른 문제 등 다양한 긴급 현안에 대해 정직하게 응답하는 것이 바로 신학이 해야 할 일입니다."

최근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열린 북미주 한신선교대회에서 만난 한신대학교 채수일(蔡洙一·59) 총장의 말이다. 진보신학자이자 대학 총장으로서 그가 지닌 신학적 이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맨 먼저 대화가 그 본질이라고 운을 뗏다. 그는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도 세계와 대화하는 형식의 하나요,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도 '대화'하고자 함이요, 성육신의 이유 또한 '대화'에 있다"면서 세상의 구원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대화'가 그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덧붙여 "신학이란 전통적으로 교회를 섬기는 학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선교를 돕는다는 의미이지 교회 교권에 예속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면서 섬기되 교회를 비판적으로 섬기는 것이 신학의 본래의 기능이요, 본질이라고 했다.

◆한국 진보신학의 오랜 신학적 담론 '하나님의 선교신학'
19, 20세기 초 서구 선교에 대한 반성, 선교 영역과 한계 철폐에 기여

그에 따르면, 기장과 한신신학의 오랜 신학적 담론의 주류를 이룬 '하나님의 선교신학'은 1950년대 이후 세계 진보신학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요한 전거였다. 이는 백인 유럽 선교사 중심의 선교, 일방통행적 선교, 서구 문명 우월주의의 선교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다.

또 하나 '하나님의 선교신학'이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선교의 영역과 한계를 철폐했다는 것이다.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할 때에 '세상 끝'이라는 건 영토적인 경계의 끝이 아니라 '세상의 온 영역'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선교의 제한적 영역을 철폐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 하나님의 선교신학이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동구권이 붕괴되고 동서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이데올로기 보다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체제가 강화되면서부터 하나님의 선교 개념만으로는 오늘날 복잡해진 세계 현실 안에서 복음을 증언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新선교신학 개발 필요성 대두…우리 시대 중요한 화두는 '생명'
생명살림 '희년신학'이 그 대안

이에 따라 새로운 선교신학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채 총장은 경제 양극화 현상, 구조적 빈곤 문제를 비롯해 생태계 위기 문제 등 이 시대가 직면한 여러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신학적 담론으로서 레위기에 나오는 '희년 신학'이 새로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가 있다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본질을 둘러싸고 생물학자, 의학자들 조차 그 본질 규명에 어려움을 보이고 있지만, 생명에 대해 학문간 공통점으로 '생명 현상의 관계성'을 그 본질로 본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를 비롯해 모든 생명의 본질은 '관계성'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관계성이 파괴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관계성을 파괴하는 것을 이른바 '죽임의 문화'라고 표현합니다. 죽임은 죽음과는 다릅니다. 죽임은 매우 구조적인 문제이며, 상당히 의도된(계획된) 살인이자 파괴라는 점에서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자연스러운 현상인 죽음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인간과 피조물을 죽이는 구조적인 악의 문화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채 총장은 "당연 '전쟁'이 죽이는 문화요, 경제적인 이유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며 "종교간 분쟁, 에이즈, 빈곤 문제, 구조적인 차별문제 이러한 것들이 인간을 죽이는 우리 시대의 '문화'"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왜 하필 '문화'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이 죽임이 개별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집단적. 구조적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문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오늘 우리 시대에 추구해야 할 신학적 담론이 있다면 그건 바로 '생명'"이라면서 "이 생명을 파괴하는 현실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생명 신학의 과제'요, 우리 시대 한신이 추구해야할 신학적 담론이요, 선교 신학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채수일 총장 주요 약력

-1952. 2. 5 전북 군산 출생
-1970~1974 한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1974~1976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신학석사 학위 취득
-1986~1991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신학박사 학위 취득
-1997~2009 한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2009~현재 한신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