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영 교수(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실천신학)
(Photo : 기독일보) 안지영 교수(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실천신학)

나의 인생에 어느 날 끼어든 아브람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소심한 모습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여서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 했던 비루한 인생이 갑자기 영웅 행세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타향살이가 두려워서 누구라도 함께 해야 그나마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조카 롯을 끌어들였던 인물이지요. 그러다가, 나중에 조카 때문에 자신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겠다는 생각에 불안해서 헤어지자고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인간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이런 인물을 선택하셔서 계속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해해보려 한다면, 하나님의 자비 외에는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자기 아내에게 자기를 남편이 아니라 사촌오빠라고 하는 것이 사랑의 징표라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아브람. 이 소심한 자가 조카 롯이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말에 자기 생명을 겁니다. 조카를 끌고 가는 바빌론 연합군을 무작정 쫓아갑니다.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다시 데려와야겠다고 자기 종들을 집합시켜 출격 준비를 단단히 합니다. 아브람이 전투를 준비하여 출격하는 이 장면이 매우 생경하기만 하네요. 까딱 잘못하면 자기와 자기 종들 모두가 다 죽거나 부상당할 확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는 전투가 아브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계산도 할 것 없이 무작정 바빌론 연합군을 뒤쫓아 가겠답니다.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아내를 남에게 넘기려 했던 자가 조카를 위해서는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조카를 위해 서둘러 집안 장정들을 이끌고 떠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라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간까지 빼 줄 것 같다가도 정작 아내와 식구들에게는 귀찮아 하는 태도를 보이는 남편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부리나케 바빌론 연합군을 뒤쫓아간 아브람은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인 단에 이르기 전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헤브론에서 단까지 약 200킬로미터 거리인데, 그 거리를 급하게 걸어서 갔다고 하더라도, 나흘 이상 걸리는 거리입니다.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자기 조카 롯을 포로로 잡아가는 그들을 향한 분노가 탱천했을까요? 그래서 '이것들을 단단히 혼을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가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급한 마음에 정신없이 출발하기는 했지만, 막상 길을 가다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되지는 않았을까요? 작은 무리로 큰 무리를 공격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마음이 꽤나 복잡했을 겁니다. 막상 출발하기 했지만, 자기 병력으로 그 연합군을 상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질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그들은 약 이천 킬로미터의 먼 거리에서도 여기 가나안 땅을 식민지처럼 지배하며 12년 동안 조공을 받았을 만큼 강한 군사력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소돔 왕의 주도로 다섯 왕이 모여 힘을 합쳤지만 저들의 공격에 힘없이 무너져 버릴 정도로 저들의 군대는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군대를 대항해서 포로로 잡혀간 롯을 구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무모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수로 이들을 물리칠 수 있을지 막막해서, 어쩌면 아브람의 마음은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을 겁니다. 간다고 했으니 가기는 해야 하는데, 막상 출발해보니 가는 길이 참으로 무겁게만 느껴졌을 겁니다.

우리네 인생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무런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도 가야만 하는 답답한 상황 말입니다.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던 적이 없는 이가 어디 있을까요? 그것도 앞 일이 불확실해서 한 발 떼기가 쉽지 않은 정말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브람의 처지가 내가 겪었던 처지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저들이 진을 친 단 성에 도착해서 보니, 상황이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전투는 고사하고, 어떻게 하면 조카를 몰래 빼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겁니다.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승기를 잡을 확률은 제로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도착해 보니, 예상 밖의 상황이 전개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아브람과 그 일행이 바빌론 연합군을 밤에 몇 패로 나누어 공격을 해서 물리쳤다고 했는데, 이 과정을 추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브람이 단에 도착할 무렵에, 바빌론 연합군은 승리에 도취되어 모든 경계심을 풀어버린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나안 다섯 개 성의 군대를 단숨에 패퇴시켰으니, 그 지역 다른 성의 왕들이 이 연합군을 대항할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연맹군들은 바빌론 연합군과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그만 초토화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완전 승리를 하고 단까지 이동한 바빌론 군대는 얼마나 기고만장했겠습니까! 이들은 이번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노획품으로 커다란 파티를 열고 있는 중이었을 겁니다. 단 성에서 술과 음식을 조달하고 포로로 잡아온 소돔 성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부려먹었을 겁니다. 이렇게 크게 승리한 군대를 감히 어느 누가 대적하겠다는 꿈이나 꾸겠습니까? 그들은 승리감에 도취한 나머지 군대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경계태세도 해제한 채, 모두들 술에 취하여 몸도 가누지 못할 상태가 되어 버렸던 것 같습니다. 아브람과 일행은 이런 정황을 목격하게 된 겁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고민했던 문제가 한 순간에 풀리며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자신감을 얻은 아브람은 깊은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저들이 전혀 긴장하지 않고 풀어져 곯아떨어졌을 때 여러 패로 나누어 급습을 했습니다. 그러니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군대가 어찌 바짝 정신을 모아 공격하는 소수의 여러 패를 상대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군부대 내의 이곳 저곳에서 번쩍이는 칼과 창 끝에 그만 속수무책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그만 지리멸렬, 견디지 못하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합니다. 며칠 전 소돔과 고모라 군대가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보다 더 급하게 모든 포로와 노획물을 내팽겨 놓고는 줄행랑 쳐버렸습니다. 아브람과 그 일행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저들을 더 추격하여 아주 혼을 빼놓았습니다.

아브람은 졸지에 개선장군이 되어 다시 헤브론을 향해 돌아옵니다. 이렇게 돌아오는 일행을 가나안 땅 사람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요? 아브람이 전에 장막을 쳤다가 떠나버렸던 세겜 성 사람들, 베델과 아이 성 사람들 모두 나와 이들을 환영하며 축하하며 기뻐했을 겁니다. 그동안 저 힘센 나라들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들어줘야만 했던 이들은 아브람을 달리 보게 되었을 겁니다. 아브람이 두려워했던 그들이 지금은 아브람을 우러러보게 되는 반전이 일어난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오는 아브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돌아오고 있었을까요? 그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한 적이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전혀 이길 가능성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 승리가 그에게는 전혀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이 상황이 과연 진짜인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와있는 수많은 주민들의 박수 소리가 아직 실감이 나질 않았을 겁니다. 그동안 자기가 두려워했던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전쟁은 자기 자신의 영웅적인 전투력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은 얼떨결에 롯을 구하기 위하여 바빌론 군대를 향해 돌진했는데 아브람이 이겨버렸습니다. 헤브론으로 돌아오면서 자기가 거둔 승리가 믿기지 않아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