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박사의 '조직신학 에세이'를 게재합니다. 정성욱 박사는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M.Div.)를, 영국 옥스퍼드 대학 신학부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 지도 하에 조직신학 박사학위(D.Phil.)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30여권의 저서, 편저, 역서를 출간했으며, 수백여편의 학술/비학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신학대학원(Denver Seminary) 조직신학 교수이자 아시아 사역처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덴버신학대학원 정성욱 교수
(Photo : 기독일보) 덴버신학대학원 정성욱 교수

지금 우리는 교회론에 대한 깊은 묵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호까지 교회에 대한 유기적 이미지 (organic images)들을 네가지로 탐구했다. 첫째는 예수님의 몸된 교회, 둘째는 예수님의 신부된 교회, 셋째는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인 교회, 그리고 넷째는 성령의 전인 교회이다. 오늘은 교회에 대한 이미지 다섯번째에 대해서 묵상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에서 교회가 하나님나라의 백성/시민이라는 (people/citizens of the Kingdom of God) 진리이다.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God)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성경학자들의 오랜 논쟁이 있었다. 현재까지의 성경신학적 합의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통치, 지배, 다스림 (the reign of God)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나라의 근본 의미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매우 부족한 해석이라고 평가한다.

신구약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바른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나라의 네가지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시민/국민이다. 둘째는 하나님나라의 영토/국토이다. 셋째는 하나님나라의 통치원/주권/국권이다. 넷째는 하나님나라의 헌법이다. 그런데 이 네가지 중에서 앞의 세가지 요소 즉 국민, 국토, 국권은 하나님나라를 구성하는 외면적/구조적/형식적 (external/structural/formal) 요소 즉 하드웨어에 해당한다면, 네번째 요소인 헌법은 하나님나라를 구성하는 내면적/내용적 (internal/substantial) 요소 즉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 비유컨데 하나님나라의 외면적/구조적/형식적 요소는 그릇이라면, 하나님나라의 내면적/내용적 요소는 그 그릇에 담긴 내용물인 것이다.

인류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타락전 에덴동산에 세워졌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후 그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외면적/구조적/형식적 요소의 복을 주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은 많은 자손 즉 백성과 국민을 가지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땅을 정복하라"는 것은 영토와 국토를 잘 유지, 관리하고, 확대해가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것은 그 나라의 통치권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 28절은 에덴동산에 세워질 하나님나라의 외면적/구조적/형식적 요소 (국민, 국토, 국권)를 복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와 약속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 통치자로 세워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국민, 국토, 국권이 있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 국토, 국권은 절대로 필요하지만, 여전히 외면적/구조적/형식적 요소일뿐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상 하나님나라의 내면적/내용적 요소이다. 하나님나라의 내면적/내용적 요소는 하나님나라가 지향하는 가치, 이상, 풍토, 문화, 질서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의 가치, 이상, 풍토, 문화, 질서를 규정하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 나라의 헌법이다. 하나님나라의 헌법은 창세기 2장 16-17에서 주어졌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6-17절은 전통적으로 하나님과 아담이 맺은 행위언약, 또는 선악과금명이라고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이 본문을 에덴동산에 세워진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본문은 하나님나라의 가치, 이상, 풍토, 문화, 질서를 규정하는 헌법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나라의 외면적/구조적/형식적 요소를 복으로 주신 하나님은 2장에서 그 나라의 내면적/내용적 요소인 헌법을 주시고 있다. 그렇다면 창 2:16-17이 규정하는 하나님나라의 가치와 이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임으로 먹되"라는 말로 표현되는 자유의 원리이다. 둘째, "먹지 말라"는 말로 표현되는 순종의 원리이다. 셋째,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로 표현디는 법치의 원리이다. 요컨데 하나님나라의 내면적 가치와 이상과 질서는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자유와 하나님이 세우신 법에 대한 순종, 그리고 불순종에 대한 사법적 조치를 포함한다. 여기에 에덴동산의 전체적 풍토로서의 평강/샬롬과 에덴이라는 말 자체로 표현되는 기쁨의 원리가 포함될 수 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 17절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낟. 하나님나라의 내면적 가치와 이상과 풍토가 바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나라가 지향하는 가치, 이상, 풍토, 문화, 질서는 하나님과 피조인간 사이의 올바른 인격적인 관계에 있다. 그 인격적 관계는 자유롭게 순종하는 삶 속에서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관계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강조하여 가르치신 이유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에덴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하게 되었고,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상실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재건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의 최초의 설교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었고 (막 1:15), 비유를 통한 핵심적인 가르침이 하나님의 나라였고, 심지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까지도 계속해서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행 1:3).

이렇게 하나님나라를 이해하고 나면 하나님나라와의 관계에서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백성/국민/시민임을 알게 된다. 물론 교회 안에 하나님나라의 통치가 임하고 실현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교회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심령이 하나님나라의 통치가 실현되는 영역이요, 땅임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외면적 요소 중에서 하나님나라 백성/시민/국민의 측면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19)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나라를 구성하는외면적 요소로서의 시민, 백성, 국민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시민/국민으로서 특권과 책임을 동시적으로 누린다. 교회의 특권은 바로 하나님나라의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신부가 되고, 머리되신 그리ㅅ도와 친밀하게 연결된 몸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교회의 주님이며, 신랑이며,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고, 양육하며, 인도하고, 끝까지 보호하신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부요함과 풍요함을 함께 누리게 된다. 예수님의 임재를 누리고, 에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이다.

한편 하나님나라의 백성/시민/국민으로서 교회가 감당해야할 책임은 하나님나라를 원수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거룩한 국방의 의무,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하는 거룩한 근로/섬김의 의무, 하나님나라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 물질을 헌신하는 헌금/나눔의 의무, 하나님나라의 탁월한 시민이 되도록 날마다 자신을 연마하는 거룩한 교육/훈련의 의무 등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시민/국민인 교회의 정체성을 바르게 회복해야 한다. 동시에 그러한 교회가 가진 놀라운 특권을 풍성하게 누릴 뿐 아니라, 교회에 주어진 거룩한 책임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속히 이 일을 이뤄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