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공감의 시대, 교회는 세상과의 공감력이 최상인가?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기가 어렵다. 사실 교회는 공감력이 최고여야 하는 곳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최고의 공감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죽어 마땅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신 것은 공감력이 최상에 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는 교회가 공감에 있어서 최상임을 보여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정신만 있으면 가능하다.

교회는 하나님과의 공감의 좌소이다. 또한 교회는 세상과의 공감의 좌소이다. 인간과의 공감의 좌소이다. 이 좌소를 좌소답게 만들 때 교회의 공감 능력이 최고가 된다.

코로나19를 통해 보여준 것은 교회의 공감 능력이 그리 높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가 십자가의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세상과의 공감도가 높아야 한다. 교회가 세상과 공감을 잘하면,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한다. 공감이 되면 복음의 문은 저절로 열린다.

공감하지 못하면 큰일 난다

21세기, 공감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다. 하나님과만 공감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교회 간에 공감해야 한다. 세상과도 공감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면 교회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이 확 줄어든다.

야후와 구글의 차이가 있다. 공감 때문에 한 회사는 망했지만 한 회사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야후는 검색 서비스와 이메일의 유료화, 번잡한 광고,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문어발식 콘텐츠 등으로 소비자와 공감이 잘 안되어 점차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반면 후발주자인 구글은 이메일의 서비스와 더불어 뛰어난 검색 엔진을 제공하고 구글 어스를 공개했으며, 유튜브를 인수해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 제공을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과거에도 공감이 기업의 사활을 결정했다. 공감이 더욱 중요시되는 언택트 시대에 공감이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당연하다.

연세대학교 최재붕 교수는 프로그램 「다큐 플렉스」에서 언택트 시대에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공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킬러 콘텐츠로 공감을 사라"고 말한다. 나아가 언택트시대는 "BTS처럼 공감을 얻으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결국 진정성으로 타인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킬러 콘텐츠를 만들 수 없다."

공감이 언택트 시대에 삶의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언택트 시대 소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다름이 아니라 마음을 사는 거고, 열광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업이나 기업가가 공감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힘들다. 그럼 교회는 다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공감하지 못하면 교회가 세상에 존치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세상과의 공감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교회는 공감의 동심원을 그려야 한다

교회는 '공감의 동심원'을 그려 공감을 점차적으로 넓혀 가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교회의 공감 무기인 십자가로 세상을 향해 '공감의 동심원'을 그려야 한다.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공감의 동심원'을 넓혀 가라고 말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혐오가 깊어지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공감의 동심원이다.

공감의 동심원이란 처음에는 나와 가족(씨족)에 머물러 있었던 공감의 동심원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 국가, 다른 민족, 심지어 최근에는 동물에게까지 흘러가는 것이다.

교인은 공감의 동심원을 그려야 한다.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하는 뇌의 공감 회로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공감 신경세포인 거울 신경 세포계를 갖고 태어난다. 거울 신경 세포계는 타인을 직접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공감할 수 있게 한다.

흰 공막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쉽게 읽는다. 그 결과 상대방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갖는다. 교회는 공감의 동심원을 그려야 한다. 그릴 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보태지면, 더욱더 강력해진다.

김도인 아트설교연구원
▲김도인 목사. 

김도인 목사
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언택트와 교회』, 『감사인생/공저』, 『독서'꽝'에서 독서'광'으로』,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자와 묵상/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이기는 독서/절판』,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