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장 2절> 

송재호 목사
(Photo : 기독일보) 할렐루야한인교회 송재호 목사

어떤 글을 보니까 "기독교의 심장은 성경이고, 성경의 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십자가이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말에 의미를 우리가 가만해 생각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 믿는 모두에게 얼마나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성도의 삶은 십자가의 영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만일 성도의 삶에 십자가가 빠지게 된다면 그 삶은 마치 엔진 없는 자동차 같고 그리고 책이 없는 도서관 같은 삶 일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십자가를 성경이 왜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지를 배우게 되는데 그 이유는 십자가는 신앙의 본질이며, 십자가는 신앙의 처음이요 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자가를 사랑하게 하신 마음도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을 보내면서 성도된 우리는 철저하게 십자가위에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들을 올려놓고 못 박기 위하여 힘쓰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도 그 이름의 뜻이 '작은 자'였지만 자신도 철저하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완전히 낮아지기를 그리고 자신을 부정하기를 힘쓰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독교사에 위대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 수 있는 길은 오직 죽음 외에는 자아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원했으며 우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죽노라."라는 고백으로 삶을 살아가길 원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십자가 위에서 날마다 죽노라"라는 고백을 드리려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아"란 죄와 욕망의 뿌리라는 점입니다. 자아가 죽지 않으면 결코 "죄"와 "욕망"은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은 삶에서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자아와의 싸움을 통해 십자가의 삶을 다짐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내면세계에 자아가 살이 있을 때에는 결코 그리스도와 연합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아를 포기하고 우리의 전 생애를 주님께 맡길 때 비로써 우리 삶의 중심에 주님이 주인이 되어 그의 거룩한 뜻과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매일 죽으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신비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 아래서 깨어지고 부서진 경험과 흔적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내면에 아직도 살아 꿈틀대는 자아의 죽음이 없는 신앙의 모습은 결코 그리스도가 모든 가치의 중심이 아니라 육적 소욕을 채우는 수단과 방편으로 이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덴마크의 철학자인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하나님은 무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다. 하나님은 그가 사용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먼저 무로 만드신다."고 하였고, 철저히 자기를 비하시켜 목숨을 걸고 자기부정의 삶을 살려고 애썼던 미국의 선교사인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스스로 죽지 못한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못하고 멸망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은 결코 쉽지 않고 많은 고난과 아픔이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그 길은 믿음으로 순종하며 걷게 되는 길임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의 삶이 이와 같은 길을 묵묵히 인내하며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