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은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팀은 안디옥을 출발해서 도보로 실루기아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습니다(행13:4). 바울과 바나바가 첫 선교지가 구브로섬(행 13:4∼14)입니다. 구브로섬은 현재 키프로스(Cyprus: 사이프러스라고도 부름)입니다. 사이프러스에서 한국 황진하장군(육사25기, 중장)이 유엔(UN)의 평화 유지군 사령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어 우리들에게 친숙한 곳입니다.

구브로는 시실리(Sicily)와 사르디니아(Sardinia)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며, 1960년 8월 16일에 탄생한 지중해에 있는 섬 국가입니다. 1878년부터 1960년까지는 영국이 식민 통치를 했으나 1960년에 독립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키프로스는 남북으로 분리되어 남쪽은 그리스 계통으로 북쪽은 터키 계통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구브로는 형식상으로는 터키도 아니고 그리스도 아닙니다. 정치도 독립 되어 있고, 구브로 파운드라는 독자적인 화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도는 니코시아(Nicosia)입니다.

구브로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와 소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많은 배들이 왕래하는 국제항구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구브로는 고대 국제 무역이 활발했습니다. 구브로는 구브로에서 나온 은과 구리와 삼나무(선박의 재료)등을 수출하여 경제적으로도 번영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구브로에서 최초 선교를 시작할 때 이 섬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며 로마 원로원에서 임명한 서기오 바울이 총독으로 주재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살면 지중해를 왕래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구브로는 단순한 바나바의 고향이 아닌 세계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에서 다소 등 큰 도시가 있는 북쪽으로 가지 않고 실루기아로 내려와 구브로로 내려갔습니다. 구브로가 복음화 되면 여기서 세계 각처로 그 복음이 퍼져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구브로는 세계로 뻗어가는 선교의 길목이었습니다.

구브로를 향하던 바울과 바나바는 구브로 섬 동쪽 끝에 위치한 살라미 항구에 도착합니다(행13:5). 살라미가 파송된 선교사 바울과 바나바의 첫 선교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살라미는 성경에 기록된 공식적 파송 선교사의 첫 선교지입니다. 살라미(Salamiv":sal-am-ece':살라미스)는 평화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샬롬'에서 온 듯합니다. 이 이름은 여러 가지 철자로 표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와 비잔틴의 작가들은 보통 Salamivνη (살라미네)로 언급합니다.

살라미는 지중해 동부에 있는 구브로섬 동쪽 끝에 위치한 항구도시입니다. 구브로 섬의 오래된 수도로서 상업 도시 살라미는 시리아 맞은편 동부 연안의 낮은 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살라미는 B.C. 6세기에 그리스의 통치를 받았다고 합니다. 살라미는 이 섬이 이집트 지배를 받을 때 총독의 거주지였고, 로마가 이 섬을 지배할 때에는 바보가 총독 거주지였습니다.

살라미는 고대 전사에 나오는 살라미 해전 유명합니다. 기원전 480년,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도시국가 그리스와 당 대 제국인 페르시아가 지중해 패권을 두고, 전쟁을 치릅니다. 그리스는 380척으로 750척에 달하는 페르시아 군에 대항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시 국가인 그리스가 강대국인 페르시아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군이 페르시아 대군을 무찔렀습니다.

그리스군은 후퇴를 가장한 기만전술로 페르시아 군을 좁은 해협(살라미스 해협)으로 유인해 기습 돌격하여 페르시아 함대 200척을 침몰시켰습니다. 이 해전으로 페르시아군 4만 명을 수장시켰습니다. 그리스 군 사령관인 테미스토클레스는 전술과 전략으로 이기는 전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울둘목)대첩과 흡사한 전술이었습니다.

역사학자 헤겔은 자신의 저서 "역사철학"에서 살라미해전을 평합니다. "역사의 관심사는 저울 위에 놓인 것과 같았다. 한편에는 한 명의 군주와 그의 힘 아래 뭉친 동방의 전제국가가, 다른 한 편에는 보잘것없는 자원과 규모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개성이 독특한 도시 국가들이 전투대형으로 맞섰다. 역사 상 정신의 힘이 물질의 양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이렇게 명백하게 드러났던 적은 없었다." 살라미스 해전의 역사적 의미입니다.

바울 일행이 방문할 때 살라미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구브로 살라미에 도착하여 즉시로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바울은 새로운 도시를 방문하면 회당을 찾아가 말씀을 전하면서 해당 지역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여러 회장이라는 말은 상당한 유대인들이 살라미 지역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융성하는 도시와 지역을 찾아 거주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살라미는 헬라 시대와 로마 시대에 번성했습니다. 아직도 그 시대의 유적지인 원형 경기장, 극장, 체육관, 등의 유적지가 살라미에 남아 있습니다. 살라미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순교한 바나바 무덤과 바나바 기념 교회가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전승은 바나바는 살라미에서 유대인 폭도들에게 순교 당했습니다. 구브로 출신의 요셉, 위로의 아들 '바나바'는 자신의 고향에서 순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