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박사의 '조직신학 에세이'를 게재합니다. 정성욱 박사는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M.Div.)를, 영국 옥스퍼드 대학 신학부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 지도 하에 조직신학 박사학위(D.Phil.)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30여권의 저서, 편저, 역서를 출간했으며, 수백여편의 학술/비학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신학대학원(Denver Seminary) 조직신학 교수이자 아시아 사역처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덴버신학대학원 정성욱 교수
(Photo : 기독일보) 덴버신학대학원 정성욱 교수

신구약 성경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교회에 대한 다양한 그림들을 그려주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교회의 이미지 (image), 교회의 초상 (portrait), 교회에 대한 비유 (parable) 등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두 번의 글을 통해서 교회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격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라는 이미지에 대해서 상세히 묵상해 보았다.

이번 호에는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여러 이미지들 중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그림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1위격이신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권속" (household of God) 또는 "하나님의 가족" (family of God)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에베소서 2장 19절은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권속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오이케이오스 (oikeios)"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오이케이오스"의 어원적인 뜻은 "가족의 일원"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라는 뜻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은 교회는 성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공동체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이다.

일반적으로 세상 법에 의해서 가족이 형성되려면 두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하여, 그 두 사람의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나야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세상에서 가족이란 무엇보다 "피"를 나눈 사람들이다. 피를 나눠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물학적 가족이 된다. 물론 오늘날 생물학적인 피를 나누지는 않았더라도 법적인 의미에서 가족을 이룰 수는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도 입양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가족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본질상 부부관계는 생물학적인 피를 나눈 관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의미에서의 가족이란 "피"를 나눈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영적으로 볼 때 교회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가족이라는 말은 교회가 바로 "피"를 나눈 공동체라는 뜻이다. 그 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영적인 가족인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공유하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생물학적으로 볼 때 우리의 혈액형은 A, B, AB, O형이 있을 수 있지만, 영적으로 볼 때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혈액형은 J, C형이다. Jesus 형 또는 Christ 형이란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참된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심령의 문설주에 바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가족의 구성원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교회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영적 가족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은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은 서로 서로에 대하여 영적인 형제와 자매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생물학적인 피를 나눈 형제와 자매들도 매우 끈끈한 사랑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어서 때로는 서로를 위하여 물질을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을 희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보혈을 나누어 가져서 영원히 형제와 자매가 된 우리 성도들은 훨씬 더 끈끈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래서 요한1서 3장 15-18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피를 나눈 형제와 자매들은 서로를 위하여 재물을 버리는 사랑, 더 나아가서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 생활에서 재물을 희생하는 사랑은 어느 정도 경험하고 있지만, 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은 찾아 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만일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진리, 내 옆의 형제와 자매가 생물학적인 피를 나눈 내 살붙이 형제와 자매보다도 사실상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진리를 깨닫는다면 우리의 교회생활은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영적 가족이라는 진리는 교회의 속성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것은 교회의 통일성 (unity of the church)이라는 진리다. 어떤 가족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배경, 재능, 취향, 관심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배경, 재능, 취향, 관심이 다양하더라도 그 가족이 진정한 의미의 가족으로 존재하고 기능하려면, 그 가족은 한 마음과 한 뜻을 품어야 한다.

마찬가지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적인 가족인 교회가 진정한 의미의 영적 가족으로 존재하고 기능하려면, 각각의 구성원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을 품어야 한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됨" "연합됨"으로 표현하고 있고, 전통적인 조직신학의 교회론에서는 "통일성"이라는 속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떤 말로 그것을 표현하든지 간에 영적인 가족으로서 교회는 하나됨을 열정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4:1-6) 라고 선포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적 가족이라는 진리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가르침은 교회를 구성하는 일원들의 삶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기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우리 나라 역사 속에서 명품가문을 이루는데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공로나 선행이 어떤 가문에는 영광을 가져다 주지만, 어떤 사람의 실패나 추문은 그가 속한 가문에 수치와 치욕을 가져다 주었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안동 권씨 가문이나 전주 이씨 가문 등은 권세와 명망이 있는 가문으로 오랫동안 존경을 받아왔다.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문 또는 '하씨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취하는 삶의 태도와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의 가문에 영광과 명예를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허물과 실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가문에 수치와 치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한국교회는 허물과 실패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스럽다. 우리의 태도와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가문을 수치스럽게 할 수 도 있고, 하나님의 가문에 영광이 돌아가게 할 수도 있음을 진정으로 깨닫고 이해한다면 우리 각자의 삶과 교회공동체의 삶은 더 신중하고, 경건한 삶으로 변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 혁명적인 변화가 우리 한국교회와 이민교회 안에서 속히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