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박사의 '조직신학 에세이'를 게재합니다. 정성욱 박사는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M.Div.)를, 영국 옥스퍼드 대학 신학부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 지도 하에 조직신학 박사학위(D.Phil.)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30여권의 저서, 편저, 역서를 출간했으며, 수백여편의 학술/비학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신학대학원(Denver Seminary) 조직신학 교수이자 아시아 사역처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덴버신학대학원 정성욱 교수
(Photo : 기독일보) 덴버신학대학원 정성욱 교수

지난 호에는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격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는 몸이라는 이미지에 대해서 묵상하였다. 이번 호에는 교회가 성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여보, 당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신부요 아내라는 이미지를 탐구하려고 한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증거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남편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아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영적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이며, 남편이시다. 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아내이다. 이 말은 교회를 구성하는 개개인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아내라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교회공동체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아내라는 의미이다. 물론 여기서 "신부"라는 말은 육체적, 생물학적, 지상적 의미의 "신부"가 아니라, 영적, 천상적 의미의 "신부"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영적 신랑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동일한 진리를 선포한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바울은 32절에서 "이 비밀이 크도다" 라고 선언한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영적인 신랑과 신부의 관계라는 진리가 바로 큰 비밀, 위대한 미스테리라는 것이다. 이 진리를 구약으로 밀고 간다면 처음 창조된 아담과 하와의 부부관계는 장차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맺게 될 영적 부부관계에 대한 예표요 그림자였다. 이 진리를 영원의 차원으로 끌고 간다면 창세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실 때, 성부는 교회를 당신의 아들의 신부와 아내로 선택하셨다는 의미인 것이다. 정말 놀라운 신비, 신적인 비밀이 아닐 수 없다.

이 진리를 삼위일체론적으로 총체적으로 정리한다면 창세전에 성부가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고 예정하신 사건 (엡 1:3-6)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히 2:10) 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아들을 위하여 거룩하고 순결한 신부를 준비하시는 경륜이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인 결혼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계획이 성취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영적 사건이 담고 있는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이미지는 교회의 무한한 영광과 특권을 표현하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한다. 영원한 왕이시며, 우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고 있는 모든 영광을 함께 누리는 특권을 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부요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한이 없는 지혜,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거룩과 의로우심,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권능,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과 주권,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고 계신 만유에 대한 소유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어지시는 끝없는 성령의 충만 등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가 누릴 수 있는 영광이요 특권이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교회가 이런 특권과 영광을 그리스도 안에서 부여 받았음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 알더라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도리어 다른 부차적인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영광과 특권에 대해서 진정한 의미에서 눈을 뜬 교회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쩨쩨하거나, 궁색하거나, 주눅이 들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놀라운 자존감과 담대함과 용기와 지혜를 보여줄 수 있는 힘있는 공동체가 될 수 밖에 없다. 세상적으로, 인간적으로 볼 때 내세울 수 있다고 여겨지는 대단한 건물과 많은 성도의 숫자 그리고 튼튼한 재정 등이 없다 하더라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부요함 속에서 날마다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도리어 가난과 궁핍가운데에서도 넘치는 긍휼과 나눔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이미지는 교회의 놀라운 영광과 특권을 표현할 뿐 아니라, 교회가 가진 무한한 책임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신랑되신 그리스도 앞에서 거룩하고 정결한 신부로 자신을 단장해야 한다. 신부가 거룩과 정결을 떠나서 더러움과 불결함과 음란함 가운데 있다면 그 신부는 심각하게 타락한 신부일 수 밖에 없다. 무한히 거룩하신 신랑 앞에 선 신부로서 교회는 모든 면에서 거룩과 정결을 추구해야 한다.

이 말은 세상의 가치관이라는 더러운 탁류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교회 안에서는 세상의 지위와 배경이 있는 사람을 후대하고, 세상에서 별볼일 없는 사람을 차별하고 천대하는 세속적인 작태가 자리 잡아서는 안 된다. 도리어 세상에서 천대받던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될 때 그리고 그들이 성령이 주신 은사를 따라 교회를 세우는 일에 공헌할 수 있을 때 바로 그 교회는 거룩한 신랑을 닮은 거룩한 신부의 공동체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또한 교회 안에서 헌금을 모금하고 그 재정을 사용함에 있어서 철저히 투명성과 책임성을 견지해야 한다. 세상에서 횡행하는 투기, 배임, 횡령, 불투명한 재정집행 등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교회가 거룩하고 투명한 행정과 경영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많은 실패를 경험해왔다. 과거의 잘못과 오류를 회개하고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마음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래서 진정 거룩하고 정결한 신부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 때에야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교회의 본질에 충실한 참된 교회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셋째, 교회의 신랑되신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셨다는 진리는 성도들이 부부관계에서 실천해야 할 영적 교훈을 담고 있다. 그것은 남편들이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함을 그리고 심지어 아내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사랑해야 함을 가르친다.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모습은 아내가 남편에게 어떻게 복종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부부관계는 성도들의 부부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모델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이 놀라운 진리들을 구체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그냥 머리로 아는 지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리고 이 지식이 손과 발로 내려와 실천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참된 빛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