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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세적 삶과 원세적 삶 조화 이뤄야
진리 문제는 방세, 나머지는 원세로
세상과 소통하고, 교회 담 허물어야

원세 vs 방세

정순훈 | 쌤앤파커스 | 304쪽

사람은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성공을 꿈꾸기에, 어느 시대나 지도층에 대해 관심이 많다. 왕정시대든 민주주의 시대든 마찬가지다.

서양에서는 인간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3가지를 꼽는다. 3가지는 재능과 열정과 노력이다. 그들은 이처럼 개인의 능력을 중시한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서양과 달리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그리고 인화(人和)를 꼽는다.

지리는 요즘 말로 하면 주변 여건이라고 할 수 있고 인화는 사람들과의 화합, 그리고 천시는 일을 이룰 때를 말한다. 맹자는 이 3가지 중에서도 인화가 제일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신의 재능과 열정, 노력만으로는 성공이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기본 조건이고, 궁극적 요소는 일이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적절한 시기, 즉 '때'다. 때를 만나기 전에는 아무리 노력하고 여건이 좋아도 일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역경>에서는 현명한 사람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그 능력이 활용되지 못하고 물거품이 된다고 했다. 능력은 있지만 때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방외지사(方外之士)' 라 한다. 누구나 방외지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외지사가 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존경과 인정을 받으며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 바로 <원세 vs 방세>다.

이 책의 저자인 정순훈 씨는 건국대 행정학과와 고려대 정책대학원을 졸업했다. 젊은 시절부터 15년 이상 국회에서 지냈다. 전 국회의원이었던 하순봉 씨 보좌관도 했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전 대표의 연설문 보좌역을 지냈다.

저자는 이런 경험과 역사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힘을 '원세'와 '방세'로 보았다. 특히 정치라는 무대에서 인간의 수많은 흥망성쇠를 보면서, 원세와 방세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

원세(原世)는 무엇이고, 방세(方世)는 무엇인가? 원세는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 원만하게 사는 것이고, 방세는 소신을 펼치며 원칙을 지키기 위해 모난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원세와 방세라는 말은 <역경>에 나오는 '원이신(圓而神)'과 '방이지(方以知)'에서 유래했다. 원만하고 둥글게 사는 길인 '원이신'을 '원세'라고도 하고, 모나지만 원칙을 지키며 사는 '방이지'는 다른 말로 '방세'라고 했다.

저자는 방세의 대표적인 인물로 명나라 방효유를 들고 있다. 명나라 연왕(후의 영락제)은 반란에 성공하자 당시 지식인의 표상이었던 방효유에게 황제 즉위조서를 쓸 것을 명했지만, 그는 통곡하며 붓을 내던지고 조서를 쓰지 않아 귀밑까지 찢어지고 대꼬챙이로 혀가 뽑히는 죽음을 당했다.

황제는 설득에 실패하자 방효유의 9족인 부계 4대, 모계 3대, 처계 3대와 함께 친구, 제자를 10족으로 간주해 방효유의 눈앞에서 먼저 죽였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10족이 멸하는 참극을 당한 것이다.

방효유의 저서는 읽는 것도 소지도 금지되었다. 이름도 금지어가 됐다. 그의 신원은 오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회복되었다. 방효유는 소신을 갖고 선비처럼 살다가 죽은 방세의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는 현대 우리나라 대통령 가운데 방세의 인물로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꼽고 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이에 반해 저자는 원세의 대표적인 인물로 명제상 황희를 꼽는다. 그는 소신을 지키면서도 주변과 원만하게 사는 것, 그 오묘한 이치를 나이 들어서야 비로소 행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황희는 새로운 나라 조선에 출사하지 않는 고려왕조의 많은 선비들과 함께 두문동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새 나라에 참여해야 백성들이 더 불행해지지 않는다는 권유로 결국 출사한다.

그러나 강직한 성품으로 자기주장을 펴며 소신을 지키려다 주변과 수없이 부딪쳤다. 그는 왕권은 장남이어야 문제가 생가지 않는다며 세종의 왕위계승을 반대하다가 귀양까지 갔다.

그가 세종과 일하게 된 것은 나이 예순이 넘어서였다. 젊은 시절 귀양지를 전전하며 인생의 쓴맛을 본 그는 나이 들면서 비로소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었다.

그는 젊은 세종을 이해시키며 신하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임금의 개혁안을 때로는 양보시켜 신하들과 타협을 보았고, 반대로 신하들이 궁궐 내의 불당을 없애라는 요구를 하거나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할 때는 인내로 설득해 한 시대를 태평성대로 만들었다.

황희 정승도 젊어서는 방세를 추구했지만, 나이 들면서 원세의 처세를 택한 것이다. 저자는 현대에서 원세의 대표적인 인물로 김종필 총재와 최규하·노태우 대통령, 고건 전 총리를 꼽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적인 인물뿐 아니라 정치 무대에 있었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예를 들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정치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이 접하게 된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시기 문화가 넘치는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원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시기 문화'가 넘치는 곳이다. 좁은 국토와 치열한 경쟁 때문일 것이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게를 잡아서 양동이에 놓아두면 뚜껑을 열어놓아도 한 마리도 도망가지 못한다. 조금 올라가면 다른 게들이 자기가 올라가려고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당신이 체질상 아부하기가 어렵다면, 아부는 못하더라도 시기는 받지 않도록 주변과 잘 지내야 한다.

아무리 능력 없는 자라도 벌침은 갖고 있다. 괜히 벌침을 맞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긴 간혹 이유 없이 벌침을 놓는 괴상한 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기에 내가 그토록 '원세(原世)'와 '화광동진(和光同塵)'을 강조하는 것이다."

주변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원세로 살 것인가, 힘들어도 원칙을 지키며 소신대로 살아가는 방세로 살 것인가? 이것은 누구나 인생길에서 계속 부딪치고 고민하게 되는 문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원세로 살아가야 할까, 방세로 살아가야 할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물론 여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보면 원세와 방세의 삶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다. 채찍을 드시고 성전에서 돈을 바꾸고 짐승을 파는 사람들을 몰아내셨다.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그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으셨기 때문이다.

또한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7가지 화를 선포하셨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방세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예수님은 방세적인 모습만 보여준 것이 아니라 원세적인 모습도 많이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린아이를 가까이 오는 것을 막는 것을 보고 가만히 두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어린아이들을 축복해주셨다. 간음한다고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공감해주셨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원세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때로는 방세적 삶과 원세적 삶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진리 문제에서만큼은 방세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이 진리는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양보하고 조화를 이루어가야 한다.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 교회의 담을 허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방세와 원세의 조화로운 삶을 살 때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감사인생(공저)'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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