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효기 목사 (SBS 선교회 사무총장)
(Photo : 기독일보) 채효기 목사 (SBS 선교회 사무총장)

이 세상에 고난에서 제외된 인생은 없다. 누구나가 똑같은 느낌의 불행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이 똑같은 고난을 대처하는 마음의 태도에 따라 우리는 실패하기도 하고 승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화단을 쉽게 망쳐버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꽃밭에 불을 지르거나 잠기도록 물을 퍼부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하지 않고도 쉽게 망칠 수 있는 길이 있다. 화단을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잡초가 무성해 지고 저절로 망쳐진다. 어떻게 하면 친구간의 우정을 망쳐 버릴 수 있을까? 돌아다니면서 그 친구를 마구 헐뜯고 다니거나, 그 친구의 우정을 크게 배반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할 것까지도 없다. 그 친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내버려두고 무관심하면 그 우정은 금새 시들어 버릴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을 망쳐버릴 수 있을까? 방탕하고 법을 어기고 타락해 버리고 건강을 마구 상하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대로 나를 그냥 편하게 두면서 되는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면 나는 저절로 망하게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광물질은 다이아몬드이고 그것의 원소기호는 'C' 즉 탄소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숯이나 흑연 등도 역시 같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 다이아몬드와 숯이 만들어지는 조건의 차이가 무엇인가? 바로 열과 압력이다. 같은 탄소라도 땅속 깊은 곳에서 엄청난 열과 압력을 받으면 다이아몬드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숯이 되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리라. 우리 인생은 흘러가듯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실로써 내용을 이루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러스킨). 불을 통과한 금이 순금이 되듯 우리는 고난의 학교를 통해 새롭고 성숙한 인생으로 거듭나게 된다.

자연주의 학자 알프레드 웰레스의 일화가 있다. 한번은 그가 누에 나방애벌레가 고치속에서 나방이 되기 위해 좁은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장면을 보고 너무나 애처로운 나머지 그 끝을 조금 찢어주어 쉽게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쉽게 나온 나방은 비틀거리다가 결국 날개한번 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새끼 나방이 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안타깝게 발버둥치는 그 과정이 바로 날개에 힘을 주고 몸에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주는 과정이었음을 그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거짓된 동정이 그 나방의 일생을 망쳐놓았다. 나방은 나 때문에 고난과의 투쟁을 면제받았지만 동시에 생명의 은총도 면제받고 말았다."

말트비 밥콕은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밭이 날카로운 쟁기로 파헤쳐지는 것을 보면서 인생의 큰 진리를 배웠다. 삶도 마찬가지이리라. 어디서 황금빛 곡식이 자라는가? 믿음, 사랑, 자비의 마음은 어디서 자라는가? 아프게 파헤쳐진 밭고랑에서...' 그리고 또 이런 말도 있다. '캄캄한 밤은 아름답다. 우리에게 별을 보여주기 때문에. 시련은 아름답다. 우리에게 창조주의 위로를 보여주기 때문에...' 고난은 우리를 단련하고 일상적으로 얻을 수 없는 초능력을 공급해 준다.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은 알통이지만 먹기만 해서 생긴 살은 물통밖에 되지 못한다.

온전한 목적을 가진 사람은 현재의 일시적인 고통으로 나약하게 시들어 버리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연단을 겪었던 이들이다.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도 그랬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는 것, 몇 개의 전투에서 패했다고 전쟁에 지는 것은 아니다. 유능한 항해자는 바람이 올 때 돛을 올린다는 말이 있다. 바람은 그를 더 빨리 목적지까지 인도해 줄 것이다.

'너희 고통은 너희 깨달음의 껍질을 깨뜨리는 과정이니라'(칼릴지브란). 진주조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몸 안으로 들어 온 작은 모래알갱이를 생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오랜 시간 체액으로 감싸고 또 감싸서 드디어는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영롱한 빛을 지닌 진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님의 율례를 배웠습니다"(시1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