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약초중고등학교 교장 제이슨 송
(Photo : ) 새언약초중고등학교 교장 제이슨 송

코리 텐 붐은 네덜란드인으로서 제 2차 세계 대전 중 다수의 유대인을 비밀리 자기 집에 숨겨주었다. 하지만 배신당해 독일군에게 붙잡힌 뒤 악명 높은 레이븐브룩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안타깝게도 그 곳에서 아버지와 누이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잃지 않았다. 오랜 수감생활 뒤 수용소 사무직원의 실수로 풀려 났는데, 레이븐브룩 수용소에 감금된 모든 여성이 사살당하기 바로 몇 주 전이었다. 그녀는 하나님이 각별한 은혜를 베풀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아빠로부터 하나님을 신뢰하는 요령을 배웠는데 한번은 코리가 한 아기의 죽음을 목격하고 연약한 삶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놀란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아빠에게 달려갔다. 죽는게 무서웠고 아마 아빠의 신앙과 유대인을 숨겨주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짐작한 것 같다. 부모의 죽음과 또 자신이 언젠가 죽을 것을 깨달은 어린이가 두려움과 억압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울며 달려온 딸을 따뜻이 맞아준 아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코리야, 우리가 기차를 타고 앰스테를담에 갈 때 아빠가 언제 너에게 탑승권을 주지? 한 3주 전에 주니?" 코리는, "아니요, 기차를 타기 바로 전에 주시죠"라고 대답했다. 코리의 아빠는 "맞다. 현명하고 자상한 하나님도 우리가 언제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계시단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힘이 필요한 때를 잘 알고 계시다. 그러니, 그 분보다 앞서 갈 필요 없다. 너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 때 공급하실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코리는 그 날 평생 간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진리를 배웠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에 적용할 은혜를 먼저 주시지 않는다. 은혜는 저장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은혜란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급하신 만나와 같다. 만료일이 있는데 유통 기한은 하루다 (출애굽기 16).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의 은혜로 오늘의 문제와 어려움을 극복하려 해서는 안 된다. 물론, 과거에 체험한 하나님의 신실함을 통해 담대함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은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정식의 한 부분이다. 나머지는 은혜가 필요할 때에 보좌 앞에 담대히,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히브리서 4:16).

만약 코리가 기차여행 몇 주 전부터 발을 동동거리며 "티켓이 있어야 하는데...... 아빠가 티켓을 구했을까? 아빠에게 티켓 구할 돈이 있을까? 티켓을 못 구하면 어쩌지? 제때 출발하는 기차 탑승권을 마련해야 하는데"하며 걱정했다면 그것은 분명 "오버"이고 아빠를 불신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거에 티켓을 마련해 준 아빠가 이번 여행에도 그렇게 할 것임을 믿고, 또 그렇게 해 주신 것을 체험한 것이 믿음과 은혜의 관계를 잘 가르쳐주는 좋은 예(example)라 하겠다.

이제 곧 대학을 졸업할 아들과 딸이 있다. 녀석들이 어렸을 땐 냉장고에 음식이 없다고 걱정한 적이 없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달라고 졸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어가며 아빠 엄마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대학 등록비는 마련해 놓았는지, 차를 구입할 몫 돈은 있는지, 여행 할 때 필요한 여비는 있는지 궁금해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런 걱정을 할 때 부모에겐 희비가 오간다. 성숙해져 가기에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좀 더 순진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아이로 남아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신앙인의 여정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필요를 채워주실까? 이번엔 너무 많은 것, 큰 것, 엄청난 것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와 같은 의심과 걱정이 앞선다.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또 담대히 보좌 앞에 나아가 지금 필요한 은혜를 구해야 함을 머리론 알고 있지만 괜히 하나님을 성가시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이젠 혼자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

또, "내 믿음이 이 정도 밖에 안되나"란 생각에 낙심도 된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 해 죄책감도 느낀다. 하지만 수 십 년 신앙생활을 했다고 두려움이 전혀 없는가? 난관이 저절로 사라지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믿음을 더 견고케 하는 문제와 시험이 꾸준히 다가온다. 신앙의 경륜이란 과거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지금까지 신실하게 동행해 주신 그 분께 다시 나아가 지금 필요한 은혜와 힘과 인내를 구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은혜를 기억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코리 텐 붐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걱정과 두려움에 눌릴 때가 종종 있다. 2020년은 그런 "해"였다. 오늘과 미래에 대한 불확신으로 인해 불안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놓쳐선 안 된다. 그 분은 매일 힘과 지혜와 은혜를 공급하시기로 약속하셨다. 2020년이란 역경의 시간을 거쳐온 우리는 신년에도 하나님의 충분하고 놀라운 은혜를 순간마다 구하고 누려야겠다. 꼭 필요할 때 적절히 임할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