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저의 대학생활의 대부분은 선교단체 생활이었습니다. 제가 속해 있던 선교단체에서는 여름마다 전국에 있는 선교단체 대학생들이 모여 수양회를 가집니다. 이 수양회를 마치고 나서 가을 학기에 다시금 학교생활이 시작되면 여기저기에서 이 수양회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는지를 간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은밀한 간증을 하게 됩니다. 그 간증은 형제들 만이 함께 지내던 공동생활집에서 이루어집니다. 대학생 형제들이 이러한 여름 수양회를 가는 이유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형제들의 목적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교제할 자매들을 또한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갔습니다. 한창 혈기왕성한 형제라면 아마 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한학기 동안 유심히 봐왔던 자매들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 수양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열린 틈에 자기를 자연스럽게 집어넣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마음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으로 참석했던 형제들이 대부분은 하나님만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오게 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자매의 민낯을 보고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학기동안 뛰어난 화장기술과 패션감각으로 잘 변신해 왔던 자매들의 모습이 수양회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어떨 때는 정말 못 알아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그룹에서 모임을 하는 데도 같은 학교의 누나를 잠깐 못 알아보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그것을 알고 처음에는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변신을 시도하던 자매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들어 포기하고 내려놓게 됩니다. 에어컨이 잘 되지 않는 강당에서 1000여명이 2시간동안 뛰면서 찬양을 하다 보면 땀에 씻겨 민낯이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신앙 하나로만 승부를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나이때는 아무래도 신앙 하나로 승부하기에는 힘든 나이가 되기 때문에 그런 민낯으로는 이성적인 만남을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가끔씩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반했다고 고백하는 녀석들이 있긴 했지만 알고보면 그냥 아름다워서 반한 것일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변신 때문에 당황하는 건 비단 이러한 형제들 뿐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형제 한분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변화되지 않고 그저 변신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당황하십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만나게 되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변화의 정도와 속도가 사람마다 틀릴 수 있지만 반드시 변화된 삶을 살아 갈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사건은 내가 주인 되던 삶의 방향에서 하나님이 주인 되는 삶의 방향으로 삶의 방향자체가 완전히 바뀐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의미는 삶의 목적과 의미가 바뀌었다는 것인데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지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처음부터 변화되지 않고 변신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또한 변화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변화되는 삶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변신술을 배워서 변신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변화는 "되는 것"입니다.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입니다. 변화는 나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능동적인 수동태"입니다. 가만히 있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날마다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를 해야 합니다. 모든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진심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과 함께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을 배워가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말씀을 바르게 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노력 가운데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반면 변신은 "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능동태"입니다. 열심으로 모든 신앙의 자리에 나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삶에 없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그 삶에 없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그 삶에 없습니다. 어느 순간 그것이 일상이 되어 버립니다. 타성에 젖어 그냥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가장한 종교생활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더 자신을 가리며 변신하는 악순환이 반복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진정 변화되셨습니까? 아니면 변신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