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보수 정권이라 맹목적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선한 영향력 정책에 반영시킬 소지 보이기 때문
허락된 범위 안에서 권세자들 평가하는 절제된 지혜를

미국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 ⓒ유튜브
미국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 ⓒ유튜브

◈교회와 대통령: 한국 개신교계의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인식

미국 대선 투표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로 지난 14일부터 2주 넘게 사전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현지 언론에서는 박빙의 차이로 승부가 갈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 대선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대통령 당선자의 동북아 정책이 우리 삶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군사, 외교, 경제 정책 전반을 입안하고 결정해야 하는 한국 정부에게 있어, 그리고 그 정책에 우리의 생존을 내맡기고 있는 한국 국민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한국의 주권과 국익을 덜 침해하는 후보자가 당선되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어떨까? 한국 기독교인들이야 당연히 기독교 신앙과 윤리를 조금이라도 더 존중하는 대통령이 등장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일 것이다.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만 아니라 문화에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행정수반과 내각이 기독교적 가치를 존중한다면, 미국으로부터 우리 일상에 전해지는 막강한 문화적 영향력 역시 기독교적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성을 띠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대선에서 한국 개신교계는 전반적으로 트럼프 현 대통령의 재선 성공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계속되는 허언들과 도덕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국 바이블벨트의 압도적인 지지를 힘입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기독교 윤리와 가치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한국 개신교계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러닝메이트인 펜스 부통령의 확고한 기독교 윤리관 역시 이런 추세에 힘을 더하고 있다.

트럼프 펜스
▲한국 개신교계의 전반적인 지지를 받는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 ⓒ마이크 펜스 페이스북

그러다 보니 커다란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미국의 보수정권에 대한 한국 기독교계의 응원과 지지가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이라는 진영 논리가 끼어드는 것이다.

사실 이런 오해는 한동안 한국 기독교계 내에 지배적이었던 민족주의 성향, 반공주의 성향에 일정 부분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성향을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만 매도할 수는 없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국 기독교회는 만주, 간도, 북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신앙의 터전을 완전히 상실했을 뿐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들이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잔혹한 고문과 학살로 희생된 기억을 갖고 있다.

휴전협정 직후 서울,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 개척된 교회 다수는 이 비극적인 체험을 간직한 피난 성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영락교회가 대표적이다.

이 교회들을 개척한 목회자들이 설교단에서 민족 통일과 반공 사상을 강조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고 또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풍토가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자 철두철미한 반공주의자였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의도적인 장려와 지원이 한몫하고 있었다.

이런 정황 속에서 한국 기독교계 내에 하나의 폐단이 싹트게 된다. 바로 정교분리 원칙을 무시하는 정서가 목회자들 사이에 고착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교회와 권세자: 성경적 절제가 필요한 기독교인의 권세자 판단

이런 폐단이 한국교회에 쉽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로는 한국 복음주의 교회들의 개혁주의 신학 편향을 들 수 있다.

독일 루터교 신학이나 웨슬리의 감리교 신학과 달리 칼빈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와 권세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소 모순적이라 할 수 있는 입장을 견지한다. 칼빈 신학은 기본적으로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우지만, 칼빈 본인의 제네바 목회는 정교일치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기독교 강요> 안에서 여실하게 확인된다. 문제가 되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4권 20장 1절에서 철저한 정교분리 원칙을 선포한 뒤, 20장 3절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나는 하나님의 율법에 포함된 진정한 종교에 노골적이고 공개적인 모독을 가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줘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정부를 시인한다."

파렐 칼빈 베자 녹스
▲제네바 바스티옹 공원에 세워진 종교개혁자 석상. 왼쪽부터 파렐, 칼빈, 베자, 녹스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이 진술을 잘못 이해하면 기독교의 정교분리 원칙이 크게 침해될 수 있다. 칼빈 본인은 제네바 시 수석 목회자로서 제네바 시의회 의원들을 좌우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이것은 칼빈 본인이 밝힌 정교분리 원칙에 사실상 어긋나는 것이다.

물론 칼빈은 그 정도의 영향력 없이 종교개혁을 지속하기 어려웠던 당대의 현실을 감안해 불가피하게 권세자 역할을 맡았던 것이지만,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친 기독교회의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점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정부가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기 위해 강제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칼빈의 주장, 그리고 제네바 시에서 칼빈의 실제 목회 방식은 기독교 세계가 확립되어 있는, 이제 막 중세를 벗어난 서유럽의 특수한 사정을 십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이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한 모범적 목회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문제적 목회 행태를 답습할 수 있는 환경이 휴전 직후 이승만 정권 하에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방적 기독교 옹호 행태는 한국의 기독교화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지만, 한국 목회자들에게 정교분리 원칙을 묵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런 폐단이 오늘날까지 고착되어 문제시된 대표적인 사례로 전광훈 목사의 여론몰이를 들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인들이 정사와 권세에 소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온당하고 바람직하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앙 양심을 바탕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계에 뛰어들어 사회변혁을 꾀할 수 있다. 19-20세기, 인종차별 철폐와 노예 해방, 여성인권 신장에 앞장섰던 많은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모범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기독교회를 지원했던 그의 행적은 훗날 한국교회에 정교분리 원칙을 무시하게 만드는 폐단을 낳았다.

이승만
▲이승만 초대 대통령 취임과 광복절 기념 행사(1948.8.15). 한국 기독교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정치지도자 이승만 전 대통령.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기독교회를 지원했던 그의 행적은 훗날 한국교회에 정교분리 원칙을 무시하게 만드는 폐단을 낳았다. ⓒ대통령기록관

그러나 여기에는 엄격한 제한이 있다. 주의 말씀을 맡은 목회자가, 그것도 자기 교회 회중을 선동해 정치세력으로 변질시킨 전광훈 목사의 행각은 정교분리 원칙에 전적으로 어긋난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무모하게 집회를 강행해 한국교회 전체의 코로나19 방역 노력을 헛되게 만들어버린 우매함과 그의 비성경적인 허언들은 철저하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전광훈 목사의 투쟁 활동을 비기독교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회자는 설교단에서 정사와 권세에 대한 판단과 비판을 감행할 수 있는 성경적인 권한을 갖지만(고전 6:2) 직접 정치적 행동에 나서지는 않는다. 이는 목회에 헌신해야 하는 직임의 한도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기독교인이 신앙의 양심에 따라 정치활동을 하려 한다면, 평신도로서 사회적인 책임감을 갖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임명 혹은 선출) 정계에 진출해 활동하는 것이 온당하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나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이 모범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진행 상황과 그에 대한 한국 개신교계의 전반적인 정서와 반응을 바라보면서, 개인적으로는 한국교회 안팎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오해를 해소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트럼프 정권이 단지 보수 정권이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선한 영향력을 일정 부분 정책에 반영시켜줄 소지를 보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지지하고 기대하는 정서와 행태가 성경에 정해진 정교분리의 원칙적 기준을 넘어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절대 거부한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역사적 사례들을 감안한다면 경제적으로 별다른 실책이 없고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각종 경제 지표들을 양호하게 지켜낸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현지 언론의 분위기로는 바이든 후보의 압승 가능성도 엿보인다고 한다.

누가 당선되는지도 중요하겠지만, 기독교인들이 허락된 범위 안에서 권세자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절제된 지혜를 갖추는 일이 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8.15 국민대회
▲8.15 국민대회에서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