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저는 편안함을 좋아합니다. 불편함을 싫어합니다. 편안함은 좋은 것이지만 오늘의 편안함이 우리 미래를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오늘의 불편함이 우리 미래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편안함과 불편함은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편안함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 안에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 본능을 심리학자들은 안전 본능, 또는 생존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편안함에 안주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욕구가 우리의 지속적인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코로나19가 찾아오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불편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들이 우리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편안함을 아주 즐겼습니다. 우리는 안락한 의자, 좋은 차,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 편안함과 안락함이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우리를 연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리 힘을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불편을 견디는 몸의 근육을 위축시켰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불편함과 친해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불편함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코로나19가 쉽게 끝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편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불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면 불편함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제가 묵상하는 중에 깨달은 불편함 속에 감춰진 축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불편한 환경이 새 미래를 창조하도록 도와주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새로운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창 12:1-2). 그것은 편안함을 내려놓고 불편함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안락함보다 불편함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장막에 거했습니다. 그는 안락한 정착보다 늘 이동해야 하는 불편한 장막에 거했습니다. 장막에 거했던 그는 늘 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머물 라고 명하시면 머물고, 떠나라고 명하시면 떠났습니다.

둘째, 불편한 말씀이 우리를 성장시켜 주는 축복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말씀보다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말씀을 좋아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 마음에 평강을 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가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불편한 말씀은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잘못을 보게 하고, 죄를 회개하도록 도와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불순종을 일깨워 주고 순종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말씀입니다.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입니다. 모든 말씀 속에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줍니다.

셋째, 불편한 책이 우리를 성장시켜 주는 축복입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는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성장시켜 주는 책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란 우리를 성찰하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불편함을 통해 성장합니다. 듣기 좋은 말만 들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쓴 약처럼, 쓴 나물처럼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 우리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보다 불편을 감수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넷째, 불편한 관계가 우리를 성숙시켜 주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서로 좋아하라"로 바꾸었습니다. 즉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마 5:44).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사랑하게 되면 가능합니다(롬 5:5). 불편한 사람을 사랑할 때 불편한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불편함 속에 감춰진 축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불편을 축복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우리가 누리는 풍성한 축복은 누군가의 불편한 헌신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어머니가 우리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고귀하고 불편한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은혜는 예수님의 불편한 헌신 때문에 임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불편한 장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처럼 우리의 불편함이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할 수 있습니다. 불편한 일이 생기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불편까지도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불편을 축복으로 바꾸는 능력입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