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 최종철 역 | 민음사 | 222쪽

처음 어색하던 일, 자꾸 하면 익숙해져
복수 위해 살던 삶은 복수 때문에 죽어
내가 살던 이유가 내가 죽는 이유 됐다

'길은 다녀서 만들어진다(道行之而成)'. 동양 고전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처음하면 어색하던 일도 자주 하면 익숙해진다. 행동에 길이 난다.

가룟 유다는 돈 때문에 무너졌다.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돈을 훔치며 양심을 팔았던 그는, 은 30의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다. 죄에 길이 났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명대사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막상 <햄릿>을 읽어보면, 죽음과 삶이 큰 차이가 없다. 복수를 위해 살던 햄릿은 복수 때문에 죽고, 욕심에 매여 살던 클로디어스는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해 죽는다. 복수를 걸어가던 삶은 복수 때문에 죽고, 욕심으로 걸어가던 삶은 욕심 때문에 죽는다. 내가 살던 이유가 내가 죽는 이유가 되었다.

덴마크 왕자 햄릿의 복수극, <햄릿>
사고사로 알려진 아버지, 독살당해
이후 복수극 등장인물 대부분 죽어

<햄릿>은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1601년경 작품이다.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덴마크 왕이 갑자기 죽고,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가 왕이 된다. 게다가 왕이 죽은 지 두 달도 지나기 전에 왕비 거트루드는 새로운 왕 클로디어스와 재혼을 한다. 햄릿 왕자는 갑작스런 부왕의 죽음과 재혼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 속에 괴로워한다.

그때 밤에 보초를 서는 병사에게서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선왕의 모습을 한 유령이 밤마다 나타난다는 것이다.

햄릿은 그 말을 듣고 밤에 유령을 만났다. 유령은 자신이 햄릿의 아버지이자, 덴마크의 왕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동생 클로디어스에게 독살(毒殺)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전까지 왕의 죽음은 독뱀에게 물린 사고사(事故死)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클로디어스가 자고 있는 왕의 귀에 독을 부어서 살해한 것이다.

햄릿은 유령의 말을 다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왕궁을 찾아온 극단에게 한 가지 연극을 부탁하고, 왕과 왕비를 초대한다. 연극은 동생이 형의 귀에 독을 부어 죽이는 내용이다.

그 장면을 본 왕은 연극을 중단시키고 나가 버린다. 유령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 햄릿은 복수를 계획하던 중, 재상(宰相) 폴로니어스를 칼로 찔러 죽이게 된다. 이 사건을 빌미로 왕은 햄릿을 영국으로 보낸다.

영국으로 가던 배는 해적을 만나고, 햄릿은 다시 덴마크로 돌아온다. 그때, 죽은 재상 플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즈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왕궁으로 온다.

햄릿 베네딕트 컴버배치
▲2015년 영국에서 상연된 <햄릿>에서 햄릿 역으로 열연중인 베네딕트 컴버배치. ⓒ네이버

왕은 레어티즈의 복수심을 이용해 햄릿을 죽이려 한다. 레어티스에게 햄릿과 펜싱 시합을 주선할테니, 그 기회를 타서 햄릿을 죽이라고 부추긴다. 레어티즈는 펜싱 칼 끝에 독을 묻혀 복수를 준비하고, 왕은 독이 든 포도주를 준비해 햄릿을 죽이려 한다.

시작된 펜싱 경기. 왕은 독이 든 포도주를 햄릿에게 권하지만 햄릿은 경기가 끝나면 마시겠다고 말한다. 지켜보던 왕비가 햄릿의 승리를 기원하며 포도주를 마셔버린다. 독이 든 포도주다.

그러던 사이 햄릿은 레어티즈의 칼에 찔린다. 그리고 둘은 난투를 벌이다 칼이 바뀌고 만다. 바뀐 칼로 햄릿도 레어티즈를 찌르고, 그때 왕비는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독이 묻은 자신의 칼에 찔린 레어티즈. 그는 이 모든 것이 왕의 계략임을 깨닫고, 햄릿에게 사실을 말해준다.

햄릿은 독이 묻은 그 칼로 왕을 찌른다. 결국 왕과 왕비, 햄릿과 레어티즈 모두 죽고 만다.

욕심에 이끌린 자는 욕심 때문에 죽고
아버지 복수하던 자는 그 복수로 죽어
햄릿, 삼촌에게 복수하려다 결국 죽음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줄거리는 복수다. 그 줄거리 안에 있는 모습은 삶과 죽음이다.

왕이 되고 싶은 욕심에 형을 죽인 클로디어스. 그는 욕심에 이끌려 살았다. 햄릿이 준비한 연극을 보고 이렇게 기도한다.

"내 죄 썩은 냄새가 하늘까지 나는구나. 나는 형제를 죽인 저주를 받았다. 기도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내 왕관과, 내 야망과, 내 왕비를 놓을 수가 없다.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지만, 결국 돌이키지는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햄릿을 독살하려 한다. 욕심을 버리지 못한 클로디어스. 그 욕심 때문에 죽는다.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준비하던 레어티즈는 복수 때문에 죽는다. 햄릿 역시 삼촌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죽는다.

욕심을 위해 살다가 욕심 때문에 죽은 왕. 복수를 위해 살다가 복수 때문에 죽은 왕자. 결국 삶과 죽음은 하나였다.

그러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죽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예수님, 사랑 때문에 오셔서 죽으셨다
바울도 예수님 만나 복음 때문에 살아
사명 선택하면 사명, 사랑 선택시 사랑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 때문에 죽으셨다.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복음 때문에 살다가 복음 때문에 기뻐하고 복음 때문에 죽었다.

길은 다녀서 만들어진다. 하루하루 삶이 일생을 결정하고 죽음을 결정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는 있지만, 한 가지 자유는 빼앗아갈 수 없다. 바로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삶에 대한 태도만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오늘 사명을 선택하면 사명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오늘 사랑을 선택하면 사랑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삶은 "무엇을 위해 죽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성도는 사명을 위해 살고 사명을 감당하다 하나님 품으로 가는 사람이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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