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1.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 10:31-11:1>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라고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대답을 할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일까요? 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각각 대답이 다를수가 있을 겁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이 어떤 삶이라고 하고 있을까요?

첫째로 덕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0장 31절에서 33절까지 말씀입니다. 31절에 '그런즉'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31절 위의 내용이 원인이 되고 결과적으로 31절에서 33절까지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31절 위의 내용은 어떤 내용일까요? 구체적으로 23절부터 30절까지 말씀입니다. 그 구절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제자들에게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에 대한 문제에 대한 대답의 내용입니다. 3가지의 예를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고기는 장사하기 위해 키워서 가져온 고기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먹어도 됩니다. 두번째 고기는 그 고기가 키워서 온 고기인지 아니면 우상의 제물로 바친 고기인지 모르는 경우입니다. 그 경우에도 먹어도 된다고 합니다. 세번째 경우가 문제입니다. 그 고기가 우상의 제물이라고 알게 된 고기입니다. 그 고기는 다른 사람들의 덕을 세우기 위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고기를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제 어떤 음식을 먹어도 괜찮습니다. 구약에서 처럼 음식들을 가려서 먹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경우는 바로 다른 사람들의 덕을 세워야 할때입니다. 술과 담배를 해도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왜 하지 말아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의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행위를 보고 "아니, 믿는 사람들도 우리하고 별 다를게 없네.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살아도 되네. 그리스도인이라도 별거 없네."라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그것을 하면 안됩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말씀 32절과 33절에 나옵니다.

32절입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데 방해가 되지 말라는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구원 받는 데에 방해가 되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게 할수 있는 방법이 33절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익이 뭘까요? 그것은 구원입니다. 교회 밖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교회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믿지 못해서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시험이 드는 행동을 해서 그 구원의 역사를 방해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덕을 세우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가는 자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라 바로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어야만 합니다.

두번째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1장 1절입니다. 사도 바울이 정말 대단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고 있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교만해서 일까요? 자기 자신의 삶이 완벽해서 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의 삶의 본이 누구일까요? 네, 예수님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그 예수님이 자신의 삶의 구주가 된 후로부터 사도 바울의 삶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 예수님을 위해서만 삶을 살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서 살아가신 그 삶을 따라 살아간 것입니다. 여전히 부족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육신의 일을 하는 연약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면 안에 여전히 죄성이 가득찬 괴수 중의 괴수가 있음을 발견함에도 불구하고, 그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 갔던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겁니다. 자기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자기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의미는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탁월하고 월등히 열매를 많이 맺는 사역을 하는 모습을 본받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죄를 짓지 않고 완벽하게 거룩한 모습을 본받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인내를 잘하고 온유한 성품을 가져서 성품이 좋은 모습을 본받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어느정도 포함이 될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본받으라는 것은 바로 사도 바울이 살아갔던 삶의 방향입니다. 삶의 태도입니다. 그 삶의 방향이 어떤 방향인가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자는 바로 이렇게 본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본이 되는 사람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만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예수님만 존귀하게 드러내며 살아가는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덕.본 삶을 삽니다. 덕이 되고 본이 되는 삶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