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 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왕하 18:4>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히스기야는 "놋뱀"을 "느후스단"(놋조각)이라고 부수어 버립니다

"놋뱀 사건"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게 물려 죽어갈 때에 모세가 장대에 매단 놋뱀을 보게 만들어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을 살린 사건입니다 (민 21:4-9) 이 사건은 신약의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구약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 "놋뱀"은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상징일수가 있습니다. 정치와 신앙이 하나였던 그 시대에는 분명 이 "놋뱀"은 국보급 보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 막 왕이 된 히스가야는 그 "놋뱀"을 놋조각에 불구하다고 부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다른 세력들에게 공격을 받아 지금 시작한 왕의 자리가 흔들릴 수도 있는데도 말입니다. 히스기야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치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많은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그러한 행동을 그것도 이제 막 왕이 된 시점에서 말입니다. 그 이유는 그 놋뱀이 가장 은밀하고 위험한 "우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순간부터 "놋뱀" 자체가 예배의 대상이 된겁니다. 섬김의 대상이 된겁니다. 자랑의 대상이 된겁니다. "놋뱀"을 통과해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데 "놋뱀"에 멈춰서 "우상" 되어 버린 겁니다. 지금도 그 놋뱀 우상들이 우리의 삶 속에 은밀하게 숨어 있습니다.

"예배 모임"을 통과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우상"이 됩니다. "기도"를 통과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우상"이 됩니다. "말씀"을 통과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우상"이 됩니다. "봉사"를 통과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우상"이 됩니다. 그 자체를 자랑합니다. 그 자체를 신앙이라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무서운 "우상" 입니다.

누구나 아는 "아세라", "목상" 우상들-보기에도 알 수 있는 우상들-은 없애기 쉽습니다. 그것보다 힘든 "산당" 우상들-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도록 하는 우상-은 힘들지만, 노력하면 없앨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놋뱀 우상들은 절대 없애기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이 놋뱀 우상을 신앙으로 착각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저 같은 목사들도 그것을 신앙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우상들을 없애버리라고 하면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이 무너져 버리기 때문에 포기합니다. 목사들은 자신의 목회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에 포기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 "놋뱀" 우상은 무너져 버려야만 합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예배모임, 기도, 말씀, 봉사등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그것을 그저 습관적으로 타성적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자신의 의"가 된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는 모든 행위들은 은밀하고 무서운 "놋뱀" 우상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담아야 합니다. 우리의 참된 고백을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걸 신앙이라고 인정하거나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신앙하는 동기와 마음을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만 합니다. 그걸 신앙이라고 착각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건 하나님 앞에서 가장 무서운 "놋뱀우상" 이기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신앙적인 행위들이 우상이 아닌 참된 예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요!!!

멈추면 "우상" 통과하면 "예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