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 성경 말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1. 역동적 단일신론의 위험에 빠진 성령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삼위를 지니신 한 분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에 보면 삼위 하나님의 결속된 관계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라는 성구에서 '내가'란 성자 예수님을, '아버지'란 성부 하나님을, '또 다른 보혜사'란 성령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가르침들이 교회 내에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일신론(單一神論: Monarchianism)이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은 부인하는 잘못된 이론이나 가르침을 말합니다. 단일신론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역동적 단일신론(Dynamistic Monarchianism)인데, 이것은 예수가 완전한 인성(人性)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신격화(神格化)에 이르렀다는 설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주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퍼졌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하나님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이고, 예수님에게는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을 때 이 하나님의 신성이 임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예수님이 처음부터 하나님이셨다고 하는 성경의 내용과는 대치되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이론에 빠진 영성운동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성령이다'라고 전제하면서, 구약의 성령을 유대인들은 여호와라고 불렀으며, 이 성령이 예수님 속에 들어왔을 때 예수님은 이 성령을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신자들 속에 이 성령이 들어올 때 신자들은 이를 성령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같은 이론은 완전히 역동적 단일신론의 오류에 빠진 것으로서, 진정한 삼위일체론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2. 양태론적 단일신론의 위험에 빠진 성령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단일신론의 위험은 양태론적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입니다. 이는 반대로 예수의 신성(神性)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스-로마적 배경을 가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인성(人性)이나 인간적 배경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이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신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예수님은 결코 인성을 입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성 자체를 죄악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사하시려면 필경 죄성이 없어야 하는데, 죄성이 없으려면 인간적인 육체성 자체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1-3)

이 같은 발상은 영지주의자들(Gnostics) 가운데 더욱 심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빛과 어두움, 영과 육의 대립, 선과 악의 대립 등 모든 세계와 인간 질서를 이원론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육체성이나 물질성에는 선(善)이 있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이 육체가 없다고 보았으며,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육체에 대한 근거구절들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보는 오류에 빠졌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지나친 금욕주의로 인해 자신의 영혼과 육체와 생활을 해치는 비정상적인 영성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복음적 영성생활이 금욕주의와는 크게 차이가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3. 종속적 삼위일체론의 위험에 빠진 성령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고대기독교는 지중해를 사이에 놓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전통을 각자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동방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종속적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부 하나님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성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열등한 분은 성령 하나님이라고 보는 관념입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이 어떻게 발현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from) 나와서 성자 하나님을 통해(through) 성령 하나님이 나온다고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종속적 삼위일체론에 맞서 서방교회 쪽에서는 '아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도 나오지만 또한 성자 하나님으로부터도 나오신다'고 함으로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가 평등한 것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현재 개신교에서 따르고 있는 것은 서방교회 쪽의 삼위일체 하나님 관념으로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서로가 평등하며 상호협력의 관계 속에 있음을 믿는 복음적인 삼위일체론입니다.

만일 우리가 비록 삼위일체론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위에서 말한 종속적 삼위일체론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의 신앙에는 큰 위험이 따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성령을 성부나 성자보다 열등한 신으로 간주하게 되거나 아니면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힘이나 영향력 정도로만 생각하게 되는 경향성이 생깁니다.

이러한 잘못된 신념에는 성령을 인격적인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으로 알고 교제하며 순종하는 복음적 영성의 핵심이 결여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종속적 삼위일체론의 위험을 극복하고 복음적 삼위일체론에 근거한 성령론을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 어려운 용어 풀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같은 기독교 신앙 안에서도 각각 교회가 자란 토양이 달랐습니다. 동방교회는 헬라 문화권에 의지해 사변적이고 따라서 교리 논쟁이 많았으나, 서방교회는 라틴 문화권으로서 실제적이었고 동방교회에 비해 교리 논쟁이 적었습니다. 사상적으로 볼 때 동방은 교리 중심이요 학문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면이 강한데 비해, 서방은 제도 중심이요 법률과 정치적 신학을 강조하여 전개하였습니다.

인종적인 면에서 볼 때도 동방은 슬라브인, 서방 아시아인의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동양적이며 내세적인 신앙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서방은 고트 족, 게르만 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현세적 신앙이 강했습니다. 언어적인 면에서 볼 때도, 동방교회는 헬라어를 썼으며, 서방교회는 라틴어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방교회에서는 일반 성직자들은 결혼할 수 있고 고위 성직자만 결혼을 금했는데, 서방교회에서는 모든 성직자에게 결혼을 금했습니다.

395년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가 죽자 로마제국이 동서로 양분되었고, 그러자 동로마제국의 보호를 받는 동방교회는 자연히 서방교회와 분리 의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리된 직접적인 정치적 원인은 11세기에 로마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와의 교권 싸움에서 야기되었습니다. 이 싸움의 결과 1054년 7월 16일 서방교회의 교황과 동방교회의 대주교는 서로에게 파문장을 보냈고, 마침내 동-서 교회는 영원히 분리되었습니다.

 성령사역을 위한 질문

1. 역동적 단일신론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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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태론적 단일신론의 위험성은 어떤 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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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가 종속적 삼위일체론을 따른다면 어떤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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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적용을 위한 기도

1. 우리의 영혼 속에 복음적 영성이 아닌 금욕주의적 동기가 지배하고 있는 영역이 없는지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2. 성령 하나님을 인격적인 통치자로 인정하며 생활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혹 성령과 협조하지 못한 부분이 생각나면 자백하십시다.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