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0장에 등장하는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이야기는 익히 들어본 유명한 이야기이다. 참고로 "떡"으로 번역된 단어는 한국식 "떡"을 의미하지 않고, 이집트식 "빵"을 의미한다. 그리고 "술 맡은 자[משׁקה]"는 바로의 컵에 포도주를 따라주는 업무는 물론 술(포도주, 맥주)을 만드는 과정까지 아우르는 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기억하며 창 40:1-3을 읽어보자.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창 40:1-3)

본 구절에 따르면 술 맡은 자와 빵 굽는 자가 동시에 범죄하여 함께 옥에 갇히게 된다. 왜 두 종류의 다른 직업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한데 묶인 것일까?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이집트의 고고학적 및 문서적 자료에 따르면 빵 굽는 장소와 술 빚는 장소는 같은 장소에 위치하거나 혹은 아주 가까운 위치에 붙어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떡과 술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들([엠머]밀, 보리)이 거의 같고, 게다가 만드는 과정까지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집트 학자 Bob Brier는 "이집트에서 발굴을 하다가 술 만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그 주변에 반드시 떡 만드는 장소가 있다고 믿어도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래의 사진들은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메케트레 무덤에서 발견된 미니어쳐들을 담고 있다. 보다시피 같은 작업장의 한 켠에서는 빵을 반죽하고 있고, 다른 한 켠에서는 술을 빚고 있다.

(Photo : )
(Photo : 기독일보)

아래 역시 근접한 거리에서 빵과 술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집트의 고고학적 자료들이다.

이런 배경지식으로 미뤄보아 창세기 40장에 나오는 술 맡은 자와 빵 굽는 자는 같은 혹은 근접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친밀해 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함께 애굽 왕의 식단을 관리하다가 관련 사건/사고로 인해 그의 노여움을 샀을지도 모른다. (e.g., 빵과 맥주는 바로를 포함한 이집트인들의 식탁에 빈번하게 오르는 주식/주음료였다. 그러므로 행여나 빵과 맥주를 섭취한 바로가 아프게 됐다면 사용 재료와 만드는 과정이 비슷한 둘 중에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가리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혹시 그 기간동안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를 함께 가둬 둔 것 일까?) 물론 바로의 노여움을 사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성경이 침묵하는지라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고고학적 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창세기 40장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함께 옥에 갇히는 이야기는 이집트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일 수 있다고 Brier는 말한다.

일전에 이집트 학자 Donald Redford, John Van Seters, T. Eric Peet 등은 구약성경을 쓴 히브리 저자에 대해 '이집트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특히 요셉의 이야기는 '성경이 제시하는 시대보다 한참 이후에 쓰여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요셉 이야기를 쓴 저자는 연대기적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른 이집트 학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예컨대 James K. Hoffmeier, Bob Brier, Kenneth A. Kitchen 등은 구약 성경이 전제 및 기술하는 이집트에 관련 내용들은 이집트의 역사를 잘 알아야지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본 글이 소개한 '술을 빚는 장소와 빵을 만드는 장소의 근접성'처럼 말이다.

물론 본글에 있는 한 가지의 간접적 예가 Redford, Seters, Peet의 주장을 뒤엎고, Hoffmeier, Kitchen, Brier의 주장에 힘을 준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단지, 우리가 평소에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쉽게 넘어가는 구절들 속에 어쩌면 성경의 역사성에 대해 검증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들이 들어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구절들이 성령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성경을 사랑하는 자들은 열린 마음으로 한 구절, 한 구절을 뜯어보며 씨름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믿음의 농도가 짙어질 수도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출처:이상환 목사 홈페이지 https://sanghwan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