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이데올로기

토마 피케티 | 안준범 역 | 문학동네 | 1,297쪽 | 38,000원

강도 높은 지진보다, 강도 같은 사람 더 무서워
아이티가 겪어야 했던 불평등과 고통 알려줘
아이티 지진이 하나님 심판? 하나님 마음 몰라

강도 7.0의 지진보다, 강도 같은 사람이 더 무섭다.

2010년 1월 12일.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섬나라 아이티에서 강도 7.0의 지진이 일어난다. 사망자 20만 명, 부상자 25만 명, 이재민 150만 명. 180억 달러의 지진 피해액.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건강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1804년 전까지 아이티 섬은 프랑스 식민지였다. 당시 아이티 전체 인구의 90%는 아프리카 노예들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끌려와 노예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집과 가족을 잃고 이재민이 되었다. 강도 7.0 지진이 아니라 강도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재민이다. 노예로 잡혀 온 그들은 대양을 건너는 동안 배에서 5분의 1이 사망한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기 전에 또 5분의 1이 더 사망한다.

2010년 아이티 지진은 한 번 일어났지만, 200년 전부터 이 같은 일은 매년 되풀이되었다. 진짜 무서운 것은 강도 높은 지진이 아니라 강도 같은 사람이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는 당시 아이티가 겪어야 했던 불평등과 고통을 알려준다. 아이티는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경제적 속박은 계속되었다. 독립한 아이티 국민들이 프랑스 노예주들에게 노예 값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티의 독립으로 노예가 사라진 프랑스 노예주들은 그 보상을 요구했다. 결국 아이티는 1억 5000만 프랑을 갚아야 했다. 오늘날 기준으로 400억 유로 이상의 돈. 지진 피해액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아이티는 1950년이 지나서야 이 돈을 다 갚을 수 있었다.

돈을 갚는 과정에서 프랑스에게 갚아야 할 돈이 미국으로 넘어간다. 미국은 그 돈을 다 받아내기 위해 1915년부터 1934년까지 아이티를 강제 점령한다. 강도 높은 지진보다 강도 같은 사람들이 더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티 지진이 발생하자 미국의 한 목회자는 아이티의 지진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망언을 했다. 역사를 모르는 무식이요, 하나님 마음을 모르는 무지다. 목회자들이 시대와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 기점으로 발생한 경제적 불평등
신분제 이데올로기 사라진 자리, 소유주의 시작
상위 10% 부자들이 전체 소유의 90%쯤 가져
더 많은 재산 가진 이유, 귀족으로 태어나서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현 시대의 불평등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결과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특히 1부와 2부에서는 시대가 변하면서 오늘날 불평등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1부에서는 신분제 사회가 무너지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불평등은 사라졌지만, 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심해졌다. 2부에서는 노예 제도와 식민지 제도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진 점을 말해준다.

먼저 1부는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발생한 경제적 불평등을 설명한다. 1789년 8월 4일 프랑스 국민의회는 귀족의 '특권 폐지'를 결정했다. 더 이상 귀족이라 해서 특별한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권력과 소유는 별개였다. 영주들이 권리를 행사하고 있던 땅은 모두 영주의 것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농민들이 기존에 땅을 경작하고 영주에게 지불하던 대가는 임대료라는 형태로 계속 지불됐다. 특권은 시민들에게 나눠줬지만, 땅은 나누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 전에 영주를 위해 일하던 부역도 임대료 형식에 추가해 부과되됐었고, 사회 기반 시설(제분기, 다리, 포도압착기) 등을 사용하는 비용도 영주에게 지불해야 했다. 사회 기반 시설의 소유권도 영주에게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정치적 독립은 했다. 신분제 이데올로기는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소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시작되었다.

(* 소유주의: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귀족은 사라졌지만 대규모 땅과 생산시설을 가진 자본가가 생겨났다. 이들 중심으로 개인의 부(富)를 중요시 하는 이데올로기가 생겨났다. 사유재산을 절대적으로 옹호하고, 보호하는 이데올로기가 생겨났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는 이를 소유주의라고 한다. 이러한 사회를 소유자사회라고 한다.)

신분제가 폐지된 1789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있기까지 프랑스 사회는 매우 불평등했다. 상위 1%의 부자들이 전체 부의 점유율을 50%가까이 가지고 있었고, 상위 10%의 부자들이 전체 소유의 90%까지 가지고 있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100그릇의 공깃밥을 한 사람이 50그릇 가지고, 다른 9명이서 전체 40그릇을 가지고 간다. 이제 남은 공기 밥은 10그릇. 이것을 가지고 90명이 나눠 먹는 구조였다.

아이티 지진 당시 모습.
아이티 지진 당시 모습.

프랑스뿐 아니라 대부분 유럽 사회가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의 경우 1880년 기준으로 전체 영국 땅의 80%를 0.1%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 이것도 단순하게 설명하면 영국 전체에 주택이 1,000채가 있다면, 한 사람이 800채를 가지고 있는 구조다. 나머지 999명이 200채의 집에 살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들이 더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된 이유는 딱 하나. 귀족으로 태어났기 때문이고, 귀족제도가 사라져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이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노력 없이 태어나기만 한 것으로 부(富)는 유지되었다.

그러면서 사회는 교묘하게 부(富)를 포장하기 시작한다. 내가 가진 소유는 내가 노력으로 얻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개인이 더 많이 가졌다는 이유로 정부가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이 오히려 불평등이라고 생각했다.

토마 피케티가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과연 부유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100% 개인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영국, 노예제 폐지하면서 주인들에게 보상해줘
노예제도 폐지됐지만, 노예주들은 더 부자 됐다
다른 나라에 과도한 빚 안기고 이자 받으며 착취

이러한 질문은 2부에서도 이어진다. 2부는 '노예제 사회와 식민사회'가 사라지면서 생긴 구조적 불평등을 이야기한다.

1833년, 영국은 노예제를 폐지했다. 이제 노예를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노예들의 노동력을 보상해 주기로 결정한다.

그 동안 수고한 노예에게 보상해주는 것이 아니다. 노예를 데리고 있던 주인들에게 보상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노예를 풀어주라고 결정했으니, 노예 소유주들에게 그 값을 보상하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많은 노예를 가지고 있던 귀족들이었다.

그렇게 당시 노예를 가진 이들에게 총 보상한 금액은 2,000만 파운드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200억 유로의 돈을 국가가 노예주에게 보상해 주었다.

당시 노예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전체 영국 인구 중 약 4천명뿐이었다. 그들은 그동안 노예를 통해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재산을 늘려가던 사람들이다. 영국 국가는 그들에게 보상해 주기 위해 1,200억 유로의 국채를 발행했다. 1,200억만큼 빚을 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돈은 나라의 빚이기 때문에, 당연히 전 영국민들이 함께 갚아야 할 돈이다.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오히려 노예주들은 더 부자가 되었고, 서민들은 삶이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앞부분에서 섬나라 아이티도 이런 어려움을 겪었음을 이야기했다. 노예들이 독립하면서 오히려 400억 유로라는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 빚과 이자를 갚기 위해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예처럼 빚을 갚아야 했던 아이러니한 현실.

이러한 모습은 노예 식민지 나라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에 과도한 빚을 안기고 이자를 받으면서 착취를 이어가는 모습. 이것은 당시 유럽 열강들의 전형적인 착취 공식이었다.

‘자본’이 되어버린 현금은 더 이상 죽은 돈이 아니라 미래가치를 가진, 살아있는 재화가 된다.
 ‘자본’이 되어버린 현금은 더 이상 죽은 돈이 아니라 미래가치를 가진, 살아있는 재화가 된다.

18세기 유럽인들은 중국(청나라)로부터 비단, 직물, 도자기, 차, 향신료 등을 수입했다. 이러한 일방적인 교역 때문에 유럽이 계속 무역 적자를 기록한다.

이에 영국은 청나라에 아편 수출을 늘리고, 청나라는 아편 때문에 나라가 위태로워졌다. 위기를 느낀 청나라 황제는 아편 수입을 중지시키고, 밀수 아편을 불태운다. 이것을 빌미로 영국은 청나라에 군대를 파견해 공격하고, 두 번에 걸친 아편 전쟁이 발생한다.

결과는 모두 청나라의 완패. 이후 청나라는 아편을 합법화했고, 막대한 전쟁 보상금과 불태운 아편에 대한 보상금을 물어야 했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경제적 불평등을 감수하게 되었다.

과거 말하는 이유, 현재 불평등 문제제기 위해
많은 기업들, 매출을 노력해서 본 돈이라 착각
소유자 사회, 다른 사람 덕분 있었다는 것 외면

토마 피케티가 이처럼 과거의 노예 제도와 식민지 사회를 말하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불평등에 문제제기를 하려는 것이다. 현재의 불평등은 노예 제도와 식민지 건설이라는 폭력적인 착취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 불평등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사회의 불평등이 이것과 같은 맥락임을 보여주려 한다. 그는 서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빌 게이츠와 기타 테크노 억만장자들이 수십 년간 기초 연구와 육성에 투입된 수천억원의 공적자금 없이 자신들의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거래를 거의 독점하지 않고 공적 지식을 사적 특허로 가져가는 그들의 권력이 현행 법률과 조세 제도의 적극적 지원을 받지 않고 과연 가능할 수 있을까?"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매출을 '내가 노력해서 번 돈'이라고 착각한다. 과연 '나의 노력'으로만 번 돈일까? 그들의 매출은 정부의 지원과 국가의 기반 시설, 사회적 안전망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단순히 국가 시설을 잘 이용한 것이 아니다.

나라 안에서 이루어진 판매는 소비자를 독점하는 이득도 누린다. 또한 그동안 값싼 노동력을 이용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내가 번 돈'이 온전히 나의 노력만을 가지고 번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회의 도움을 받았고, 소비자와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결코 기업과 부자들 개인의 수고라고 볼 수 없다.

문제는 '소유자 사회'는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모두 내 것이라 주장하고, 모두 내 노력이라 말한다.

한 마디로 은혜를 잊었다. 다른 사람 덕분임을 외면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 나눌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 내 것을 나누어야 하는가? 은혜를 잊으니 나눔이 억울하다.

나의 모습 나의 소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
성도, 생명도 소유도 하나님 은혜임 아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이 대안이고, 말씀 원리가 답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전제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가진 재산. 내가 가진 것들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이다. 온전히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여 가난한 이들을 돌아본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베풀게 되어 있다.

반대로 은혜를 잊으면 계산이 들어간다. 내가 흘린 땀을 계산하고, 내가 흘린 눈물을 계산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100원도 아까워 진다. 작은 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나누지 못한다.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1부와 2부 내용을 통해 알게 되는 것. "내게 주어진 것들이 결국 내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거저 주어진 것이 많다. 한 마디로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은혜를 알면 계산하지 않는다. 기꺼이 베풀게 된다.

점점 나눔이 사라져 가는 대한민국. 그 대안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다. 성도는 내 생명도 내 소유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임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 것을 나누고 내 삶을 나누는 사람이다.

내 것만을 주장하는 자본주의 사회! 하나님의 사람들이 대안이고 말씀의 원리가 답이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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