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자가 강자다

윤태호 작가의 '만화 속 세상' 웹툰 작품 중 드라마로 방영된 것이 <미생>이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통해 두 가지를 공감했다. 하나는 '나는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했다. 또 다른 하나는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로 위로를 받았다.

이 드라마에는 직장인들이 200% 공감하는 대사가 있다. 바로 갓 입사한 2년 계약직 사원인 장그래에게 직속상사인 오상식 과장이 건네는 조언이다.

"앞으로 무조건 버텨, 버티는 것이 이기는 거다."

이 드라마에서 오상식 과장과 장그래 사원의 대화를 자세히 풀면 아래와 같다.

"이왕 들어왔으니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넌 잘 모르겠지만 바둑에 이런 말이 있다.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직장생활은 의미 찾기라기보다는 버티는 것이라고 삶의 치열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버티는 것이 이기는 거다'라는 말보다 더 와닿는 말이 있다. 바로, '존버'다.

이 말은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그 뜻은 "존나게 버티라"다. 인내로 끝까지 기다리면 내려갔던 주식이나 비트코인 가격 등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버티라는 말이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보다 더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직장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 미국, 한국 등 직장인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직장을 잃고 있다. 특히, 항공업이나 여행업, 소상공인은 직격탄을 맞았다.

변화에 적응해야 버틸 수 있다

세상은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강자와 약자다. 약자로 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왕이면 강자로 살고 싶다.

강자란 누구인가? 버티는 자다. 즉 강자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자가 강자가 된다. 버티는 자 즉 살아남는 자는 강자가 되고, 승자가 된다. 못 버틴 자는 결과적으로 약자가 된다. 그 결과 퇴출된다.

코로나19 사태에서의 강자도 버티는 자가 아니라, 버티는 자가 강자가 된다는 말이 더욱 실감난다. 이 말은 사회뿐 아니라 교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실적으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보다 교회가 더욱 치명타를 받고 있다. 교회는 코로나 진원지인 대구 신천지 때문에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조금만 문제가 발생해도 교회는 크게 이슈화되고 있다. 다른 말로 교회는 버티는 강자로 존재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교회는 무조건 버티려고만 하면 안 된다.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 변화는 혁신적이어야 한다. 기존의 생각과 목회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 한 말을 가슴에 새길 필요성이 농후해졌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해서 살아남는 놈이 강자다."

이 말은 생명체의 종은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아서 결국 강한 것이 된다는 의미다.

교회는 변화의 전환점에 와 있다. 기존의 틀이 아닌 새로운 틀로 목회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교회는 존재하기 힘들어진다. 큰 교회도 숫자가 확 줄어든다.

코로나19 이후, 교회도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오프라인 예배뿐 아니라 온라인 예배도 정식 예배가 되었다. 오프라인 설교만이 아니라 온라인 설교도 정식 설교로 인정받는다. 더 나아가 온라인 교회도 정식 교회라 할 수 있다.

교인에 대한 정의도 달라졌다. 온라인 교인도 정식 교인으로 인정한다. 이젠 오프라인과 온라인 경계선이 없다. 교인도 내 교인 네 교인 구분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변화를 꾀한 사람만이 버틸 수 있다. 즉 강자가 될 수 있다.

변화된 시대에 버틸 수 있는 무기를 가져야 한다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버텨서 살아남아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버티겠다고 해서 버텨지지 않는다. 살아남겠다고 해서 살아남지 못한다. 이유는 외부 상황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확진자가 발생하면 2주간은 영업이 정지된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지역사회에 활성화되면, 삶이 강제로(?) 제약을 받는다. 더 심해지면 일상이 정지된다.

이 때 버틸 수 있으려면, 버틸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남들도 갖고 있는 무기가 아니라, 남들이 갖지 않음 무기를 가여야 한다. 남들과 차별화된 무기를 가졌을 때 버틸 수 있다. 강자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교회 사역은 '설교'로 국한되었다. 대학교는 2020년 1학기에 오프라인 모임을 전혀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교회는 거리두기를 통해 제한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 모임의 숫자는 반 이상으로 줄었다. 전에는 오프라인 모임이 대세였다면, 지금은 온라인 모임이 대세다. 결국 온라인으로 차별화하는 변화와 대안을 가져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설교, 온라인 설교가 핵심이 되었다. 그 말은 남다른 설교가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전에는 교회 교인이라면 설교를 들어주었다. 이제는 교회 교인이 반드시 들어주는 설교가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교회 교인이 된다.

설교가 남달라야 한다.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작은 교회라면 버틸 수 없다. 생존 여력이 점차 없어진다.

지금 작은 교회들은 재정 압박이 심각하다. 재정 압박의 강도가 더 강해지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로 무기를 삼아야 한다. 설교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도록 남다르게 설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젠 서울에서 교회 개척 자체가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한다. 그 말이 일맥상통하는지, 최근에는 주위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또 달라진 것이 있다. 설교가 목회 중심이 되면, 공간이 중요하지 않다. 사람만 중요하다. 그것도 설교자가 누구냐가 중요하다.

전에는 교회를 개척하려면 반드시 공간이 있어야 했다. 하다 못해 카페에서라도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했다. 이젠 개척을 할 때 공간이 필요치 않다. 온라인으로 설교를 들을 수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설교를 듣는 사람만 있으면, 한 교회가 된다. 공간이 있는 개척에서, 공간 없는 개척이 현실화되었다.

전에는 공간에 참여하는 사람들만 교인이라고 했다. 이젠 온라인 상으로 연결된 사람도 교인이다. 이젠 교회에서 공간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오로지 연결되어 있는가 여부만 중요해졌다.

바이러스의 역습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한다. 이뿐 아니다. 환경 문제는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만아질수록 교회는 온라인화가 된다. 온라인을 소통하는 설교만 남는다.

설교 중에서도 남다른 설교하는 설교자만 버틸 수 있다. 이를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버틸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한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버틸 수 있는 무기는 설교다. 즉 남다른 콘텐츠로 무장된 설교를 할 수 있는 설교자다. 사람들이 애정을 갖고 접속해 주는 설교만이 생존과 성장의 무기다. 이 무기를 장착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와 같이 생존을 위해 버티고, 성장의 동력이 되는 무기를 가지려면 가장 먼저 할 것이 삶이 단순해야 한다.

온라인 채플, 성경통독 라이브 방송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CCC. (본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한국대학생선교회 제공
온라인 채플, 성경통독 라이브 방송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CCC. (본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한국대학생선교회 제공

점점 더 소수에게 편중되고 있다

필자가 독서를 시작한 2010년 즈음은 80대 20이라는 파레토 법칙이 막바지쯤이었던 것 같다. 그후 회자된 말이 95%대 5%였다. 5% 안에 들어야 버티거나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고등학교 수능 1등급(4%) 학생들 비율이 대학 졸업 후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직장인 대기업, 공기업, 교사 등에 들어가는 인원과 일치한다고 한다.

95%대 5%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99%대 1%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말이 무색하게도, 전 세계 상위 1%가 세계 부(富)의 절반을 차지한다. 지구에 100명이 산다면, 단 1명이 약 50명의 부(富) 소유한다는 말이다.

한국도 세계 10위의 슈퍼리치(super-rich)를 보유한 나라다. 한국의 슈퍼리치는 2,300명이다. 슈퍼리치란 10억 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부자들을 일컫는 말로, 부채를 빼고 순자산 10억 원을 말한다. 다른 말로 이 2,300명은 5,000만 달러 이상 초고액 자산가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비율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들 것이라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지성은 <에이트>에서 앞으로 70년 뒤에 한국인의 99.997%는 인공지능 때문에 난민 수준의 사회적·경제적 삶을 살게 된다는 게 유기윤 교수팀의 예측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2045년부터는 전문직의 80-90%가 인공지능에게 대체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이 말은 세월이 흐를수록 기회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에게만 주어진다는 말이다. 이미 시작된 인공지능 시대에는 노예가 아닌 인공지능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늘구멍과 같은 소수의 부류에 들어가야 한다.

이런 상황과 시대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살기 힘들어지는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답은 극도로 단순한 삶에서 찾아야 한다. 삶이 단순하지 않으면, 무기 하나를 장착한 목회가 불가능해진다.

극도로 단순해야 한다

진리는 단순하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단순히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진리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책을 쓰려면 단순해야 한다. 더 뺄 것이 없는 글이 완벽한 글이 되므로, 복잡한 글이 아니라 단순한 글로 써야 한다.

프랑스의 소설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가 이런 말을 했다. "더 더할 게 없을 때가 아니라 더 뺄 것이 없을 때 완벽해진다."

단순함으로 완벽함을 추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인이자 한국학연구소 소장인 신광철은 <극단의 한국인, 극단의 창조성>에서 종묘는 단순함을 위엄으로 완성한 건축물이라고 말한다.

"종묘에는 다른 건축물과 달리 두 가지가 없다. 왕가의 건축물임에도 단천이 없고, 건축물의 이름이 없다. 정숙해야 할 공간이기 때문이다.

종묘의 주변은 완만한 구릉에 의해 아늑한 기운이 들도록 했다. 그곳은 한국인의 기질과 정서를 재현한 공간이다. 종묘는 절대적으로 횡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형태로 지어졌다는 말이다. 단순함이 가장 깊은 멋과 분위기를 만든다."

건축도 단순함이 맛과 멋을 만들어낸다. 그뿐 아니다. 단순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신광철은 단순함을 드러내는 단순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이 단순미라고 했다.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은 단순미다. 더욱이 자연미와 단순미가 만나면 미의 절정을 이룬다."

건축도 복잡함이 아니라 단순해야 한다. 자연과 같이 단순미를 갖춰야 한다. 이 뿐 아니다. 남다른 삶을 산 사람들도 한결같이 단순함의 대가들이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단-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을 지은 이지훈 세종대 교수는 단순함을 세 가지로 이야기 한다.

"최고의 실력은 단순함으로 발휘됩니다. 우선 세 가지로 단순함을 정의하자면, 불필요한 것을 모조리 제거하고 오직 핵심만 남겨놓은 상태, 즉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궁극의 경지, 다음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맞서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 마지막이 남의 기준이나 가치를 걷어내고 나만의 가치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는 복잡한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더욱 더 단순해져야 한다고 한다.

21세기 지성을 대표하는 책 <총, 균, 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연구실에 컴퓨터가 없다. 컴퓨터 대신 구식 녹음기와 빈 테이프만 놓여 있다. 이런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함에 있다.

그가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구식 녹음기에 녹음을 하면, 비서가 테이프를 들으면서 타이핑을 해서 원고로 만드는 단순한 과정 덕분이다. 그 결과 인터넷을 하는 동안 불필요한 광고를 보지 않아도 된다. 이메일 등에 일일이 답장을 해줄 필요도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요한 내용은 비서가 걸러서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다윗이 이스라엘 군인들이 상대하지 못하고 조롱만 당했던 골리앗을 무너뜨린 것은, 단순하게 매일 던졌던 물맷돌 때문이었다.

설교자는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려면 삶이 단순해야 한다. 버릴 것 버려야 한다. 시간 도둑을 잡아내야 한다. 한앵대학교 교수인 유영만은 <공부는 망치다>에서 공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공부하게 된 것은 치열함의 결과다. 반대로 단순하지 않은 이유는 애매함은 나태함의 선물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정리하며 표현하는 능력은 오랜 기간 문제의 핵심을 붙잡고 애간장을 태운 결과다."

공부하려면 단순해야 한다. 치열하게 단순하면 공부할 수 있다. 설교자도 설교에 치열함으로 달려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독서에 단순하게 치열하게 해야 한다.

설교자는 설교를 위한 독서로 단순화시켜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목회는 단순화를 강요당하고 있다. 목회가 설교로 단순화된 상황에서, 설교자가 할 일은 독서로 단순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서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설교자는 독서를 해야 한다. 그러나 설교자도 독서를 별로 잘 하지 않는다.

UN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민 평균 독서량이 세계 166위다. 16위가 아니라, 맨 뒤에 속한 166위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서를 하지 않을지라도, 설교자들은 독서를 해야 한다.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예능인들이 독서를 강조하는 것을 본다.

브라운관에서 보여지는 '바보'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의외로' 독서를 많이 할 것 같은 예능인 1위에 김종민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는 예능인도 독서하지 않으면 롱런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매일 설교해야 하는 설교자들은 치열한 독서가여야 한다. 현실은 설교자들이 독서에 그리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트설교연구원을 10년 정도 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코로나19 이후는 이제 코로나와 '함께(With)'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 이럴 때 변화된 시대에 맞는 버틸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해야 한다. 그 무기는 엄청난 독서다. 남들만큼 하는 독서가 아니라 남들과 비교불가 한 독서다.

목회는 코로나19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교인들의 설교 쏠림은 심화될 것이다. 젊은이들은 오프라인 예배보다는 온라인 예배를 선호한다. 온라인 예배를 선호하는 교인들은 자기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는 설교자를 택해 예배를 드릴 것이 뻔하다.

또한 설교를 잘 하는 설교자로의 설교 쏠림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럴 때 설교자들은 비록 내 설교가 쏠림의 대상은 되지 않더라도, 기존 교인들과 함께 목회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 그러려면 삶이 독서로 단순해져야 한다.

수필가인 도미니크 로로(Dominique Loreau)는 <심플하게 산다>에서, 심플하게 살려면 바꿔야 하는 여섯 가지를 이야기한다. 맨 마지막이 명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고 한다.

기독교인들도 말씀을 묵상하고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는데 초집중해야 한다. 그녀는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읽고 쓰는 것은 자신을 돌보는 행위다. 글쓰기는 자신과 관계 맺는 일이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화가 날 때도 글쓰기는 도움이 된다. 글을 쓰면 상황을 한발 물러서서 볼 수 있다. 마음을 글로 비워내고 나면 편안하고 평화로워진다."

"버티는 자가 강자다."

아니다. "버티는 무기를 가진 자가 강자다."

그 무기는 설교다. 설교가 무기가 되려면, 설교가는 반드시 독서가여야 한다. 남들처럼 하는 독서가가 아니라, 치열함으로 독서에 푹 빠져 단순하게 살아가는 독사가여야 한다. 이런 설교자에게 코로나19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줄 것이 확실하다.

▲김도인 목사.
▲김도인 목사.

김도인 목사
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독서'꽝'에서 독서'광'으로/목양》,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