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진료소 코로나 첫 확진

어제 선별진료소에서 내가 진료한 60대 환자가 코로나 양성으로 판정됐다. 감염관리실에서 환자 상세정보를 알려주니 그제야 진료했던 기억이 난다.

이틀간 38도 이상의 발열이 있었던 당뇨 환자라 내심 코로나가 아니길 바라며 점액을 채취했었는데, 덜컥 양성이 나온 것이다.

다행히 나는 유리판으로 막혀있는 맞은편 방에서 글로브월 검사를 진행했던 터라 그나마 안전하지만, 음압검사실로 안내한 원무과 직원과 간호조무사는 가까이에서 접촉했을 텐데 더 걱정이 된다.

물론 N95 마스크와 안면 가림막, 그리고 방호복을 입었지만 그래도 행여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까 염려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진료와 채취검사가 끝나면 음압실 내로 들어와 소독을 담당하는 소독전문업체 직원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총 7명의 선별진료소 의료진이 접촉라인에 있게 된 셈이다.

감염관리실에서는 상세한 보고서를 만들어 보건소와 방역대책본부에 보내고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한 결과 방역원칙을 준수하였기에 격리할 필요는 없고 대신 능동감시를 하는 수준에서 정리가 됐다.

코로나19 검사로 알게 된 '환자 경험'의 중요성

병원 감염관리위원회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7명의 확진자 접촉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결정하였고, 첫 검사를 내가 받게 되었다.

그동안 유리차단벽 너머로 마이크로 얘기하던 음압검사실 안으로 내가 들어가 검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음압실은 의외로 시원하고 조용했다.

유리차단막 너머로 진료할 의사의 모습이 보이는 맞은편 공간에서 마이크를 통해 의사의 진료를 받고 점액 채취검사를 받게 됐다.

첫 번째는 입안의 구강 점막에서 점액을 채취하는데 편도선 가까이까지 면봉막대가 들어와 점막을 여러 번 비비면서 검사가 이루어졌다.

두 번째는 콧구멍 안으로 긴 면봉 막대를 넣어 안쪽 점막에서 점액을 채취하는 과정인데 생각보다 더 깊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재채기를 참으며 검사를 마치니 코안이 얼얼했다.

그동안 환자들이 꽤 힘들었겠다고 생각하며 최근 의료계에서 자성하고 있는 '환자 경험'이 정말 꼭 필요하리라 여겨졌다.

의사가 환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제 매사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죄인을 의인 삼아주시는 하나님 은혜

지난 4개월 가까이 주 2회 선별진료소에서 진료와 검사를 담당하면서 심한 발열과 인후통, 그리고 기침, 가래까지 꼭 코로나19라 생각했던 환자들은 모두 음성으로 나오고 단지 이틀 미열이 났던 사람에게서 양성판정이 나오니 정말 겉으로 드러난 증상으로는 알 길이 없는가 보다.

임상 증상은 우리에게 의심할 징표이지 결코 최종적인 진단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유전자 증폭을 통해 근본적으로 바이러스를 검출해 내어 진단하는 첨단의학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얼마나 외모로 사람을 판단했던가?

하나님께도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평가할 수 없는 하나님만의 진단키트가 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보혈이다.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 보좌에 나아가는 긴 두 행렬이 있을 것이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좌편에는 첫 번째 아담을 앞세우고 오는 행렬인데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며 권력과 부귀를 누리고 또 명예로운 훈장과 수상경력이 있는 위인들로 가득 찬 행렬이다.

반면 우편에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을 앞세우고 오는 행렬인데 겉으로 보기에도 볼품없고 초라하며 사회적으로 알려진 인물들도 거의 없는 미미한 사람들의 행렬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단키트는 가장 앞에선 사람을 통해 행렬을 바라보게 된다.

첫 번째 아담의 행렬은 아담을 통해 바라보기에 그들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원죄를 가진 죄의 후손들일 수밖에 없지만,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을 앞세우고 오는 행렬은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시기에 예수의 옷을 덧입고 아버지께 나아오는 의인으로 간주해 주시는 것이다.

나를 심판하실 때 나의 죄악과 실패를 그대로 정죄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흰옷으로 덮어 바라봐주시니 그 은혜가 너무도 고맙고 감사함을 새삼 깨닫는다.

코로나 확산으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과 피로감이 엄습해 오지만 오늘도 샘물같이 흘러넘치는 주님의 보혈에 의지해 담대히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