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남가주 625 한국전쟁 70주년 예배 진행위원장)

프랑스 몽클라르 장군은 1892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초급장교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했습니다. 이어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는 전투부대 지휘관과 참모로 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이런 전쟁의 공로를 인정받아 2차 대전 후에 프랑스군 육군 중장으로 진급했습니다.

1950년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나라들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을 결정했습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었던 프랑스도 영국, 터키,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1950년 7월 22일 유엔군에 참여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한국전에 참전을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의 결정은 아쉬웠습니다. 영국과 터키가 각각 1개 여단의 전투부대 파병을 결정하는데 프랑스는 전투병이 아닌 10여 명의 사찰단 파병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국제관계를 고려하면 아주 무성의한 처사였습니다.

프랑스의 이런 무성의한 태도에 미국 정부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아울러 영국을 포함한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불만도 고조 되었습니다. 사실 국제사회의 위치나 역할을 고려하면 프랑스는 같은 상임이사국이었던 영국과 비슷한 규모의 파병을 해야 했었습니다.

한편, 구제 정세와 상관없이 프랑스 국내에서 실질적 파병론이 비등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육군참모총장 블랑장군과 제2차 세계대전 나르비크 전투의 영웅 몽클라르 중장 등이 강하게 파병을 주장했습니다. 주로 전쟁경험이 있고 공산 세력을 아는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파병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 전투부대의 파병을 강하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파병 결정권을 쥐고 있던 프랑스 국방차관 막스 르젠은 국내 전투력 유지와 다른 전쟁을 핑계 삼아 전투부대의 파병을 반대했습니다. 아울러 파병 반대론자들은 전쟁경험이 있는 부대를 파병해야하는데 전투 경험이 있는 부대 구성이 어렵다는 이유를 강하게 내세우며 전투부대의 파병을 반대했습니다. 프랑스군대의 한국전 참전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참모총장인 블랑장군은 "기존 부대와 관계가 없는 특별부대를 창설하고, 현역과 예비역에서 지원병을 받아 미군에 파견하는 보병대대 형태로 구성하여 파병하겠다!"고 제안했다. 파병 반대 논리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또 2차대전의 전쟁영웅 몽클라르 장군은 자신이 보병대대 행정대대장을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별셋의 중장이 대대장을 맡는 것은 말도 안되는 제안이었습니다. 당 부대 작전대대장은 르 미르 소령이 맡았습니다.

이로써 별 셋의 몽클라르 중장은 유엔군 프랑스 대대의 초대 행정대대장이 되었습니다. 2차대전의 전쟁영웅 몽클라르 중장은 대대장 직책에 맞게 중령 계급장을 달고 참전 했습니다. 몽클라르 장군은 당시 미8군 사령관이던 매튜 B. 리지웨이 중장과 계급과 군 경력이 비슷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중령 계급장을 달고 프랑스대대 행정대대장직을 수행하면서 UN군 상급부대장들인 미군 연대장과 미군 사단장의 지휘와 명령을 잘 따랐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임무에 충실한 멋진 군인이었습니다. 

몽클라르 장군은 6·25전쟁 당시 이미 많은 공을 세운 별 셋의 중장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만약 프랑스에 있었다면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불명예를 감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목숨을 걸고 참전했습니다. 당시 한국전은 유럽군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산악전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주 위험한 전투였습니다. 몽클라르 장군은 그 위험을 스스로 감수했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나이도 젊고 경력도 부족한 미군 지휘관들의 지시에 복종하며 임무를 완수했다고 전해집니다.

 6.25 한국전쟁의 상황에서 오늘을 보면 대한민국의 현실은 기적입니다. 공산 세력의 야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것도, 전장의 상흔에서 극복한 것도, 경제 대국으로 발전한 것도 기적입니다. 이런 기적들은 위로는 하나님의 은총, 아래로는 수많은 눈물과 땀 덕분임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귀한 나라, 귀한 집안 귀한 자제들이 피를 흘려주었습니다.

6.25 한국전쟁 70주년 행사를 준비하며 강등된 계급장으로 한반도 산하를 누볐던 몽클라르 장군을 생각해 봅니다. 장군의 계급장을 내려놓고 자유와 생명을 위해 싸워주었습니다. 군인에게 계급은 목숨과 같은 명예입니다. 그런데 몽클라르는 장군은 장군의 계급장을 버렸습니다.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한국 군대와 청와대에 몽클라르 장군 정신을 주문합니다. 명예와 욕심을 위해 아옹다옹하는 정치인들과 국회위원들에게도 몽클라르 장군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6.25를 맞아도 아무런 떨림도 감동도 없는 우리들을 향해서는 몽클라르 장군은 또 뭐라고 할까요? 전쟁도 국운도 다음 세대의 자유와 평화도 관심이 없는 무책임한 우리 세대를 향한 몽클라르 장군의 불호령이 들리는 듯한 6월의 밤이 깊어 갑니다.    

강태광 목사(남가주 625 한국전쟁 70주년 예배 진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