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효 목사
장재효 목사(서울 성은교회)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15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본문은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실 때 땅 끝에서부터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부르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르심을 받은 자는 세상 조건이나 지식, 재산의 유무나 지위나 명분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이끄셨고 하나님이 정해 주신 땅 가나안으로 가야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믿음을 굳게 하는 목적으로 살아가게 되니 하나님은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고까지 표현하셨습니다.

상호관계의 원리: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음

상호관계라는 것은 한쪽 편에서만 상대방에게 이용가치를 기대하는 입장이 아니고, 상부상조하는 입장에서 내가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것만큼 나도 상대방에게 필요로 하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불러내셔서 자기 백성 삼으신 이유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두고 상호관계에 대한 기대와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9절에서 "너는 나의 종이라"하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이 필연적인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고 회개하여 구속의 은혜를 입음으로 성도의 반열에 서게 되고, 성령의 인 치심을 따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고 하면, 나라는 존재의 남은 생애는 내 주관적인 의지에서 살 수 없습니다. 나를 죄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 희생을 통하여 구속의 은혜를 덧입히시고, 진리와 성령으로 애써 가꾸어서 쓰시고자 소원하시는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그릇으로 쓰임 받는 목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강력히 나타내신 것이 "너는 나의 종"이라는 표현입니다. '종(Servant)'이라는 것은 남에게 얽매이어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상전을 위하여 섬기자는 목적으로만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교회들 중에서 이성 자율 주의적 경향 때문에 교회 안에서까지 사람의 생각이 우선시되고, 자기를 나타내기를 즐겨하고 이권야심을 위한 주권적 행세를 시도하려는 폐단들이 만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상호관계의 원리: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

이사야 41장 14절에서는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렁이가 무슨 의지가 있다한들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은 상호관계의 원리를 좇아서 야곱을 귀하게 여기시고 보호하시면서도 야곱의 원래 위치를 확인시키셨습니다. 이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는 잠언 16절 18의 말씀을 상기시키는 교훈입니다.

원래 우리는 땅 끝에 버려졌을 때 지렁이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이랬던 우리를 하나님은 택하시고 불러내 주셔서 자녀 삼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상호관계의 원리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본래의 처지를 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예수님을 향한 헌신의 자세가 온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시는 목적 따라, 여러 좋은 조건으로 갖춰지고 풍성해졌는데도 원래의 형편이 지금과 같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인색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고 교만이 싹트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결혼을 한 부부가 처음에는 서로에게 미안한 감정으로 주고받는 말 가운데, 서로에게 위로와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형편이 좋아지면서 서로의 생활패턴이 달라지고 집은 그저 하숙집처럼 되어 각자의 생활에 빠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의 다정다감했던 부부관계는 냉담해지면서 부부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금전적인 어려움이 없어 생활이 편리해졌을지는 몰라도 행복이라는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상호관계의 원리를 서로가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일 것입니다.

3. 상호관계의 원리: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나쁜 습관을 고침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단지 우리들이 예전의 모습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으면서 말씀으로 비춰지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말씀의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고 흠과 티를 발견하여 신속히 회개하고 결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싫어하는 나쁜 습관들을 버리려고 애쓰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이 기뻐하시고 예수님이 만족하실 성도의 인격과 자격을 갖추어가게 되는 법입니다. 이와 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구약시대 사울 왕과 같이 하나님과의 상호관계를 스스로 파기한 사람이기에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본문 10-13절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호관계를 신앙 인격적 자세로 잘 받들어 감당하는 신자, 늘 쓰임받기를 소원하여 헌신하기를 진심으로 원하며 열심히 충성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붙들고 인도하시고, 그를 해치는 원수를 대신 갚아 주시면서 결국, 그 백성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상호 협동하는 인연을 계속 더 깊이 이루어 가기를 소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예수님이 나를 필요로 하시듯 내가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는 상호관계의 원리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심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구속하시고 진리와 성령으로 가르쳐 훈련시키시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에 함께 참여해 달라는 용도사명의 기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예수님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듯이, 예수님 편에서도 뜻하신 일에 힘써 줄 수 있는 참된 성도를 애타게 찾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내가 바로 그 요긴한 몫을 감당해 드리기 위해 예수님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힘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