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후무한 참화, 어디에서도 기념하지 않아
공산당, 일제 시대부터 일제 아닌 교회 핍박
6.25 중 거물 목회자 납북 앞장선 것도 목사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최이우 목사) 6월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가 ‘6.25 70주년 회고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제로 12일 오전 서울 수표로 영락교회(담임 김운성 목사)에서 개최됐다.
월례회에서는 민경배 박사(백석대 석좌교수)가 ‘6.25 70주년 회고: 그 실록의 변증학’, 이덕주 박사(감신대 은퇴교수)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전쟁의 과거에서 평화를 내다보기’를 각각 발표했다.

먼저 민경배 교수는 “우리 역사 반만년에 이런 참화는 없었다. 전무후무하다. 그리고 거기 따른 역사적 의의 역시 획기적이다. 그 의미는 거대 민족사의 중추를 이룬다”며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어디에도 6.25 기념비가 없다. 기념일도 행사도 드물다. 그 실록이 희미하다. 새에덴교회의 6.25 기념행사가 전부”라고 개탄했다.

민경배 박사는 “대한민국은 국군·민간인·납북자 피해가 159만 8,929명인데, 사망·학살·부상·납치·행방불명 등 민간인 피해자가 99만 968명이었다. 북한 피해자도 252만여명으로, 남북의 인적 손실만 411만 8,929명이었다”며 “거기에 미군 전사·실종이 10만 1,111명, UN군 전사·실종·부상이 1만 6,183명, 합계가 11만 7,294명이고, 중공군은 전사·부상·실종이 39만 900명이다. 일부는 90만여명으로 추정한다. 행방불명, 고아, 피난민, 이산가족을 합치면 총 인명 피해가 840만여명”이라고 설명했다.

민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사상자가 6백만 정도였다. 6.25에 중국·러시아까지 간여하였다면, 세계대전을 방불한다”며 “그런 세계사적 거대 사건에 ‘북진설’이 들린다. 6.25는 휴전이어서 승전·항복이 없고, 전범도 없다. 하지만 남북 대면에서 6.25에 대한 언급은 어떤 형태로든 꼭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교회의 피해는 교역자만 358명 순교로, 일제 36년간 순교자 수의 8배가 넘는다. 파괴된 교회가 890여곳이었다. 전남 영광교회 목사 김방호 가족 8인 중 7인이 순교했고, 옥구 원당교회는 교인 78명 중 76명이 학살당했다”며 “일제 치하에서도 공산당은 이상하게 일제가 아닌 교회를 적대시하고 핍박했다. 1930년대 만주 지역에서의 교회 공격과 학살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 그 생생한 기록들이 당시 장로회 총회록에 통곡으로 기록돼 있다”고 전했다.

민경배 박사는 “그러나 1918년 러시아 땅에서 조선사회당을 조직한 것은 전도사 이동휘,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 피압박 민족대회에 한국 대표로 간 것도 기독교인 여운형·김규식이었다”며 “더구나 해방 이후 남한에서 일어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은 목사 이재복이 주관했다. 그는 국군 내 공산당원 명부를 6.25 얼마 전 특무대에 넘겨줘 남침과 함께 일어날 뻔한 군 반란과 남침 인민군과의 연계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6.25 중 많은 거물 기독교 목사들과 교인들을 납북해 간 인물인 최문식도 목사였다. 민족 대표 33인 중 하나였던 김창준 목사는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과 서기장을 지냈다”며 “김일성의 친부 김형직은 장로교 배민수·감리교 손정도 목사와 막역한 친구였다. 김형직의 아들 김일성과 손정도의 아들 손원일도 일제 하 심양에서 친우였다. 기독교와 공산당의 친원 관계는 희곡 수준”이라고 했다.

민 박사는 “한국은 그런 6.25의 대참극을 이겨내고 세계 글로벌 국가로 등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남북 문제에서 갖은 시도를 다했으나, 아직 한 발자국도 전진이 없다”며 “문제 하나는 6.25 사변 대참사의 책임 소재 문제인데, 아직 휴전 상태여서 판단을 유보한다”고 했다.

그는 “다음은 미국과의 진정한 맹우관계이다. 우리는 1882년과 1950년, 그 이후 한미동맹으로 미국의 진정과 헌신을 경험하고 있다”며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자들 문제로, 그들은 교회와 미제를 적대시한다. 이제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38선에 대한 고도의 지정학적 원근법 경륜”이라고 했다.

이어 이덕주 박사는 “기독교 역사는 증언의 역사이다. 기독교 역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예언됐고(행 1:8), 오순절 성령이 임함으로 사도들이 능력을 얻고 입을 열어 ‘예수를 증언’하는 것으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됐다”며 “사도들은 그렇게 예수를 증언하다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옥에 갇히고 돌을 맞고 칼에 찔려 죽임을 당했다. 증언이 순교로 연결됐다. 성경에서 ‘증인’과 ‘순교’를 의미하는 단어(martus)가 같은 연유”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그렇게 복음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가 됐다. 초대교회 첫 순교자 스데반으로 시작해 야고보와 베드로, 바울, 안드레, 바돌로매, 도마 등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하나 같이 복음의 적대자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며 “이후 2천년 기독교 역사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다 죽음을 당한 순교자들의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교회사도 마찬가지다. 주기철과 손양원, 김영학, 문준경…, 수백 명 순교자들의 피가 일제강점기와 전쟁 시기 이 땅을 적셨다”며 “철원 땅에서 만난 순교자들의 이야기도 그 한 대목이다. 60-70대 노인 목사들이 남긴 유언은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증언할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답을 요구한다. 그들은 죽었으나 지금도 말한다”고 했다.

이덕주 박사는 “남북 분단 75년, 전쟁 7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남북으로 나뉘어 갈등과 불신, 증오와 대결의 높은 장벽을 쌓고 있는 한반도 현실에서, 그 대립과 분쟁의 최첨단 철원 땅에서 접하는 순교자들의 죽음은 전쟁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증언’을 요구한다”며 “보복과 응징으로 불신과 증오의 벽을 계속 쌓을 것인가? 아니면 회개와 용서를 통한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갈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5-18).”

이 박사는 위 에베소서 말씀을 언급한 뒤 “오늘 우리는 바울이 ‘이 둘’을 남과 북으로 읽어, 십자가의 근본 가치인 화평과 화목을 통한 한 몸의 평안, 그 평화가 한반도에서 구현되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할 뿐”이라며 “생각과 노선이 다르면 무조건 반대하고 배척했던 이기적 편당심을 회개하자. 그것이 70년 전에 일어났던 전쟁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의 전망”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가 설교했다. 기도회에서는 ‘한국교회를 위하여’ 김운성 목사, ‘6.25 70주년을 맞은 우리나라를 위하여’ 배철희 목사(충신교회)가 각각 기도했으며, 회장 최이우 목사의 인사 후 명예회장 김명혁 목사가 축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