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지배: 대중문화 속 기술적 특이점과 초지능

TV 시리즈 <웨스트월드>는 현재까지 세 시즌이 방영됐으며, 각 시즌은 다음과 같은 서사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시즌 1은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를 창조하고서 이들을 성욕, 지배욕, 폭력성 해소 대상으로 삼는 인간의 죄된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시즌 2는 이런 인간의 죄성에 반복적으로 희생되다가 결국 인간에게 반기를 드는 인공지능 로봇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최근 종결된 시즌 3은 결국 초지능으로 진화한 인공지능에 의해 인간의 자유와 미래가 잠식되어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상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시즌 3의 주요 안타고니스트는 전 인류의 삶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그 데이터로 각 개인의 미래까지 모두 예상하고 설계하는 두 초지능 컴퓨터 솔로몬과 르호보암, 그리고 이 두 인공지능을 설계한 컴퓨터공학자 세락(뱅상 카셀 분)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두 초지능 컴퓨터의 이름이 솔로몬과 르호보암인 데는 각각 특별한 의미가 있다. 솔로몬은 가장 지혜로운 지배자의 이미지를, 르호보암은 가장 강압적인 지배자의 이미지를 갖는다.

그리고 두 왕 모두 말년에는 순전한 신앙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들었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

<웨스트월드>는 이 두 왕의 이름을 차용하여 초지능이 인류에 대해 가장 지혜롭지만, 또 가장 억압적인 지배자요 신격화된 우상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초지능에 의해 인간의 삶의 자유가 억압된다는 주제, 각 인간의 실존적 선택의 자유가 억압되리라는 예견은 이미 영화 <매트릭스>(1999)나 <아이 로봇>(2004) 등에서 심각하게 다뤄진 바 있다.

그러나 <웨스트월드>의 초지능 이야기는 기존 작품들이 담아내지 못한 지극히 세밀한 부분까지 상상해 그려냄으로써, 초지능에 의해 인류의 삶이 조율되는 시대의 생활상을 무서우리만치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국 유명 기술자이자 발명가인 레이 커즈와일이 2005년 집필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가 최근 기계학습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새로이 주목받게 된 후, 초지능 개념은 대중문화 콘텐츠 안에서는 이미 일반화된지 오래이고, 현실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웨스트월드>의 초지능 솔로몬.
<웨스트월드>의 초지능 솔로몬.

사실 기술적 특이점의 도래는 현재의 기술력 수준으로 가늠해볼 때 거의 불가능한 전망, 혹은 너무도 먼 미래에 현실화될 전망이 확실하다.

규칙이 확고하게 정해진 논리적, 수리연산적 기능은 뛰어나지만, 자연어 처리나 일상적 불확실성 대응과 같이 실제 현실을 마주해서는 처참한 수준의 성능을 보이는 현 기계학습 AI의 실상을 알고 나면, 초지능이 도래하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험난한 앞길이 펼쳐질지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커즈와일이나 닉 보스트롬 같은 기술지상주의자들은 이 불가능해 보이는 전망이 마치 근시일 내에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과 기대감을 대중에게 주입해 왔다.

이런 미래 전망이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에서 선도적으로 일어난 것은, 서구 선진국들의 컴퓨터 공학이 가장 앞서 있는 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이에 못지 않게 서구 문화의 뿌리를 구성하고 있는 기독교 세계관 때문이기도 하다.

◈AI의 우상화: 21세기형 호문쿨루스, 초지능

초지능의 도래에 대한 믿음은 결국 종말론적 미래를 향해 인류 역사를 주관하고 이끄시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앙과 충돌하게 돼 있다.

전지하신 하나님 대신 전지한 초지능이 인류에게 번영의 미래를 약속하리라는 믿음은 결국 초지능 우상화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능을 가진 인공 인격체 창조가 우상의 창조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은 일찌감치 중세 말엽과 근대 초기부터 벌어진 바 있다.

당시에는 컴퓨터 공학이 아니라 연금술이 논쟁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연금술을 통해 인간을 창조하려는 계획, 이른바 호문쿨루스(homunculus, 작은 인간) 창조 프로젝트를 놓고 많은 신학자들이 기독교적인 평가를 내렸다.

당시 신학자들 대부분의 견해는 인간이 인공적으로 인격체를 창조하는 행위가 곧 하나님만이 누릴 수 있는 창조주의 위치를 찬탈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인격체를 우상화할 위험성 또한 내포하고 있으므로 절대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계시록에 예언된 "생기를 받아 말하는 우상(계 13:15)"을 창조하는 적그리스도적 행위라는 지탄까지 받곤 했다. 스콜라 신학의 대표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중세 연금술사들이 꿈꾸던 호문쿨루스(작은 인간) 창조 계획.
중세 연금술사들이 꿈꾸던 호문쿨루스(작은 인간) 창조 계획.

그리고 20세기 들어와 인공지능이라는 개념과 이를 뒷받침할 기술들이 고안되면서, 이 오래된 신학적 논란에 다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개념의 시초인 '튜링 기계' 개념을 고안한 앨런 튜링은 인간 수준에 이르는 범용 인공지능 개발 성사의 기준으로 완벽한 자연어 처리 능력을 채택했다.

이미테이션 게임, 혹은 튜링 테스트라 불리는 이 기준은 중세 신학자들이 경고했던 '말하는 우상'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기술 문명의 이로움을 충분하게 맛본 오늘날에는 신학자들 중에도 인공지능 혹은 초지능 개발이 인공물 우상화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가진 이들이 발견된다.

컴퓨터 공학과 신학을 함께 전공한 노린 허츠펠트(Noreen Herzfeld)나 루터교 소속의 앤 포어스트(Anne Foerst) 같은 신학자들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월등히 능가하는 인공지능 개발이 오히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 관계를 보다 현실적인 유비를 통해 계시해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상당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초지능 개발이 오히려 기독교적으로, 신학적으로 권장되어야 할 일이라고까지 말한다.

허츠펠트나 포어스트 등의 주장이 결단코 기독교 신학계의 주된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계 내부에서조차 이들의 견해를 수용하고 지지하는 편의 힘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미디어 콘텐츠 업계 내부적으로는 초지능이 주도하는 미래에 대해 유토피아적 환상을 갖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의식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웨스트월드> 시즌 3를 주도하는 서사의 비판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뉘앙스는 인간의 미래를 인공 에이전트에 내맡기는 것이 매우 위험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위기감은 표면적으로 볼 때 개인의 실존적 자유를 존중하는 서구의 정치적, 철학적 반성을 반영하는 것이고,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기독교 신학자 어거스틴에 의해 완성된 서구 고유의 개별적 인격 개념을 계승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반기독교적 열망

어거스틴의 <고백록>(Confessionum)은 한 개인이 자기 외부로부터 오는 세속적이고 이단적인 사상들의 간섭을 배제하고서 끝내 하나님과의 깊은 개별적, 인격적 교제를 통해 신앙을 갖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다른 어떤 생각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고유한 의지와 인격성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갖는 것, 이 가능성에 대한 확신은 이후 서구 기독교의 신앙의 자유 개념과 함께 정치적 자유, 실존적 자유 개념을 정립하는 사상적 기원이 되었다.

커즈와일, 보스트롬, 허츠펠트, 포어스트 등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 지배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환상이 미디어 콘텐츠 업계에서는 거부되고, 기독교 신학계 내에서는 점진적으로 수긍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커다란 아이러니다.

이는 그만큼 신학계 내부에서 초지능 사상에 대한 심각하고 치밀한 반성과 예견 노력이 부족했다는 뜻일 것이다.

<웨스트월드>의 초지능 개발자 엔게러드 세락(뱅상 카셀 분). 커즈와일이나 보스트롬과 비슷한 기술지상주의 사상을 갖고 있다.
 <웨스트월드>의 초지능 개발자 엔게러드 세락(뱅상 카셀 분). 커즈와일이나 보스트롬과 비슷한 기술지상주의 사상을 갖고 있다.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 1권 11장 4절과 8절에서 시편 135편을 인용하며(열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시 135:15) 인간의 본성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신성을 갈망하나, 타락으로 인해 참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까닭에 결국 그들이 형상화한 모든 것을 어떻게든 신적인 것으로 옹립하려는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칼빈이 언급한 우상이란 나무, 돌, 금속으로 만든 신상, 특히 가톨릭 성상을 주로 염두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암시적으로 연금술사들이 창조하려 했던 호문쿨루스에게도 적용되고 있었을 것이다.

칼빈이 종교개혁을 주도하고 <기독교 강요>를 집필하던 16세기 중반은 서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금술사라 평가되는 파라켈수스(1493-1541)의 업적이 유럽 과학계 전체를 강타하고 있던 시대였다.

칼빈의 경고는 오늘날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결국 전편의 논평 내용과 연결해볼 때, 인공지능 기술 개발 열망의 근본적인 뿌리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판단해볼 때 하나님께만 허용된 창조주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열망, 그리고 그분의 전지하심을 다른 피조물에게 전이하려는 우상화, 신격화 열망으로 확인된다. 이 두 참람한 열망이 유토피아적으로 치장된 채 인류 미래의 희망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웨스트월드>의 경계심 어린 서사는 비록 아직 멀리 떨어진 미래에나 실현될지 모를 사태이기는 하지만, 분명 현재진형행에 속해 있는 피조물 우상화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을 폭로하고 있고, 이러한 측면에서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세속의 시대정신이 기독교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면밀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 기독교계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초지능 사상을 그저 먼 미래에나 고민해볼 일로 치부하는 듯하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 개발 속도는 분명 기대보다 느린 것이 사실이다. 특히 로보틱스와의 융합 측면에서는 미디어 콘텐츠에 반영된 상상력과 심한 괴리를 보일 정도로 발전 속도가 느리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을 둘러싼 반기독교적 열망은 차근차근 현실화되고 있고, 결국 어느 순간 특이점 수준의 발전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교회와 신앙인들은 이 점을 유념하고 기술 진보에 대응하는 지혜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웨스트월드>의 초지능 솔로몬과 르호보암 우상화에서 탈출하려 분투하는 시즌 3 주인공 케일럽 니콜스(아론 폴 분). 출애굽 세대 중 믿음을 지켜 가나안에 들어가는 갈렙의 이름을 본딴 등장인물이다.
<웨스트월드>의 초지능 솔로몬과 르호보암 우상화에서 탈출하려 분투하는 시즌 3 주인공 케일럽 니콜스(아론 폴 분). 출애굽 세대 중 믿음을 지켜 가나안에 들어가는 갈렙의 이름을 본딴 등장인물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