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확실한 '메타버스'의 도래

메타버스 시대를 본격화하려는 포부를 담은 페이스북의 커뮤니티 VR 서비스, <페이스북 호라이즌>.
메타버스 시대를 본격화하려는 포부를 담은 페이스북의 커뮤니티 VR 서비스, <페이스북 호라이즌>.

◈메타버스와 코로나: 코로나 국면에서 재조명된 메타버스의 가능성

코로나19 사태는 현재 서서히 진정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에서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진척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완전한 치료제 개발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임상의학계의 중론이지만, 이런저런 노력 덕분에 코로나에 대응할 대안들을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격변을 겪은 일상생활 패턴도 점차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회복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는 여러 방면에서 온라인-모바일 통신 기술에 의존하는 소통이 사람 대 사람의 물리적 접촉을 상당 부분 대체할 가능성을 입증해준 시간이기도 했다.

기업들은 지금까지 시행해보지 못한 전사적 재택근무를 시도했고, 학교들은 전면 비대면 강의를 진행했다. 구매 활동 대부분은 온라인-모바일로 이루어졌고, 많은 교회들이 온라인-모바일 예배를 도입해야 했다.

이로써 우리는 약 두 달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타인과 마주하지 않고 어디까지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과 한계를 체감할 수 있었다.

우선 물리적인 업무(제조, 생산, 건축, 물리적 서비스 등)를 제외한 일상생활 대부분이 비대면 방식으로 충분히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미디어 업계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수 대중의 물리적 대면이 이루어지는 공연장이나 영화관은 거의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가고 있지만,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모바일 기반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은 전례가 없는 대성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렇듯 코로나 사태는 현재 우리 인류에게 온라인-모바일 기술이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리적 협력이나 접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부 업무 영역 및 서비스 영역이 아니라면, 혹은 그 물리력을 대체해줄 수 있는 서비스 수단이 존재한다면, 우리 삶의 상당한 영역이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만남 없이도 가능해지게 되었음을 몸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미디어 콘텐츠 업계에서는 한동안 사장되다시피 했던 '메타버스(metaverse)' 개념이 되살아나고 있다. 메타버스란 '-너머, -위'라는 의미를 갖는 접두어 '메타(meta)'와 '세계, 우주'라는 의미를 갖는 단어 '유니버스(universe)'가 합쳐져 나온 신조어이다.

이 단어는 인기 SF 소설가였던 닐 스티븐슨이 1992년에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라는 작품에서 처음 선보였다.

인터넷 기반 3차원 가상현실을 지칭하는 이 용어는 이후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스타트업과 게임업체들이 반드시 구현해내고자 하는 하나의 이상과 같은 개념이 되었다.

2018년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이 메타버스가 제대로 구현된 미래 상황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스토리나 캐릭터, 그리고 사고의 깊이 측면에서는 큰 호평을 받지 못한, 그저 볼거리가 화려한 오락영화 정도로 평가되고 있지만, 사람을 마주하지 않는 미래 생활상을 치밀하게 전망했다는 점에서 사회과학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초라하고 비루한 현실'은 도피하고, '화려하고 능력을 갖춘 세계'에만 몰입해 살아가는 미래 인류의 생활상을 적절히 예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메타버스가 제대로 현실화된 시대상을 그린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메타버스가 제대로 현실화된 시대상을 그린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메타버스와 SNS: 메타버스로 집중되는 미래의 사회적 관계망

하지만 미디어 콘텐츠 업계는 메타버스 구현 시도와 관련해 그동안 여러 차례 좌절을 맛봐야 했다. 무엇보다 VR, AR 업계가 인간의 현실 시각을 대체할 만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SNS나 일부 온라인 게임 플랫폼이 초보적인 수준의 메타버스 개념에 접근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코로나 사태가 한창 진행중인 2020년 5월 현재, 미디어 콘텐츠 업계는 다시 이 메타버스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달(4월) 24일, 미국 최대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에서는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 게임 내 콘서트를 개최했고, 1,230만명의 관객이 '게임 내부에서' 이를 관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 공연은 래퍼가 자신과 거의 동일한 외형을 가진 아바타 캐릭터로 공연을 진행하고, 다른 아바타 관객들이 이를 관람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일부 게임 플랫폼이 가진 이 메타버스 실현 가능성은 기업들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포트나이트> 속에서 아바타 캐릭터로 공연을 진행한 미국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
 <포트나이트> 속에서 아바타 캐릭터로 공연을 진행한 미국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

나이키 같은 업체는 게임 속 아바타 캐릭터를 통해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게임 내 패션 아이템과 현실 제품을 동시에 판매하는 전략을 택해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온라인-모바일 미디어 콘텐츠 업계의 선두주자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2019년 1월 한 인터뷰에서 "넷플릭스의 최대 경쟁자는 디즈니가 아니라 포트나이트"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만큼 그는 메타버스 개념의 현실화에 깊은 관심과 우려를 동시에 내보이고 있다.

이는 서구의 일반 대중, 특히 젊은 세대가 잘 짜여진 가상 현실의 도래에 큰 기대감을 갖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VR, AR 기술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느리지만 착실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메타버스 분야에서 선두를 차지하려는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페이스북, 구글, 삼성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페이스북은 2014년에 미국 내 VR 기술 선두기업 오큘러스 VR(Oculus VR)을 인수했고, 이 오큘러스의 기술을 활용해 올해 자사의 메타버스 개념을 현실화하는 VR 커뮤니티 '페이스북 호라이즌(Facebook Horizon)' 서비스를 개시한다.

'페이스북 호라이즌'은 무한정한 자유도를 가진 3D 가상현실 커뮤니티로서, 그동안 텍스트와 이미지 위주로 제공되어 왔던 페이스북의 정적 커뮤니티 서비스를 대체하는 동적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로써 페이스북은 단순히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업무, 물품거래, 아이디어 교환, 창조적 예술활동, 그리고 엔터테인먼트까지 일상생활 대부분을 가상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메타버스를 창조하는 업체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등이 점유하고 있는 사업 영역 전체를 자신들이 현실화한 메타버스 내로 옮겨 놓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페이스북을 비롯해 메타버스 창조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기업들에게 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코로나 국면은 해당 기업들에게 업무, 학업, 경제생활, 문화생활 전체를 온라인-모바일 세상에서 영위할 가능성을 입증해준 거대한 사회적 실험 현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중의 인식도 코로나 사태를 통해 큰 변화를 맞이한 만큼, 향후 인류의 일상은 갈수록 더 빠르게 온라인-모바일 네트워크 속에 자리잡은 가상현실에 함몰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페이스북 호라이즌>의 홍보영상 장면. 페이스북의 가상현실은 단순히 게임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업무, 대인관계, 경제생활, 아이디어 교환, 문화생활과 엔터테인먼트 전체를 가상현실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페이스북 호라이즌>의 홍보영상 장면. 페이스북의 가상현실은 단순히 게임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업무, 대인관계, 경제생활, 아이디어 교환, 문화생활과 엔터테인먼트 전체를 가상현실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렇게 기술이 만들어낸 이념적 세계에 빠져들어가는 인류의 모습은 교회들에게 점차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만 보더라도 이 점은 분명해진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모바일 예배에 집중된 교계의 관심과 우려는 기술 문명이 우리 신앙생활에 초래하는 변화에 대해 숙고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분명하게 확인시켜주었다.

정보통신-미디어 기술은 기독교 신앙생활의 우군인가 적인가? 어디까지 수용 가능하고 어디까지 경계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은 자로 재듯 단순하게 판단해서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미래 정보통신 기술의 각 요소들이 우리 신앙의 어느 영역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세심하게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그 순기능과 악영향을 파악해 순기능은 적극 활용하고 악영향은 차단하는 대안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