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창조론 논쟁에 있어 대두되는 이슈는 고전적이고 무신론적인 진화론이기보단, 유신진화론과 같이 신앙인으로서 교회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하나의 주장이다. 유신론적 틀 안에서 설명하는 유신진화론을 신학적인 면에서 고찰해 볼 때 제기되는 문제점과 함의점은 무엇인가?

성서론적 문제

유신진화론의 문제를 성서론적 입장에서 고찰해 보면, 성경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

즉 유신진화론의 성경 해석은 문자적 해석(문자주의와는 구별됨)을 무시하는 경향과, 본질적으로 성경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성경엔 문자적 해석이 필요한 부분과 문자적이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할 부분 모두가 같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역은 특히 창조와 종말에 관한 영역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부분을 문자적으로, 어느 부분을 비문자적으로 해석할지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단순하고 명확한 구분이 언제나 쉽지 않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문자적·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진지함을 유신진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찾기는 어려워보인다.

신론의 문제

신론의 측면에서 본다면, 유신진화론이 과연 하나님의 속성을 잘 반영해 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즉 은혜로운 하나님이기보단, 진화론에서 설명하는 생존을 위해 경쟁하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이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의 속성과는 대치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계시된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개입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약자의 편에 서시고 참새 한 마리도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도록 돌보시는 분이신데, 유신진화론적 신관은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이신론적 하나님으로 귀결되기 싶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하나님의 완전성에 대한 제한이다. 진화의 단계에서 어쩌다 개입하셔야 하는 하나님 혹은 진화의 단계에서 여러 번 시도하셔야 하는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의 완전성에 제한이나 오류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인죄론의 문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은 동물과 공유하는 속성 외에 공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속성이 있다. 유신진화론은 이러한 불연속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또한 유신진화론은 죽음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즉, 아담 창조 이전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약육강식으로 인한 생존 경쟁에서 발생되는 죽음들은 인간의 죄와 상관 없는 것들인가?

이는 죄가 들어오기 전에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데, 죄와 죽음과 관련된 성경구절들(창 2:17; 창 3:19; 롬 5:12; 롬 5:14; 롬 6:23; 롬 8:22; 고전 15:21)을 볼 때, 죄로 인해 발생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복음의 핵심과 부딪히게 된다.

구원론 및 종말론의 문제

대다수의 경우 유신진화론은 역사적 아담의 실제를 부인하거나 적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로 볼 때 구원과 관련하여 성경(롬 5:12-21)에서 말하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비(analogy)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종말론에 있어서 진화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패러다임이라면, 그래서 더 좋은 쪽의 선택으로 진보하는 과정이라면, 악의 극치점과 맞닿는 성경적 종말의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성경은 자연적으로 발전해 이르게 될 유토피아를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 말해주는 종말은 극도에 달할 악으로 대표되는 적그리스도와 이에 대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임할 심판의 극대극 대결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론 및 목회적 함의점(implicit point)

지금까지 유신진화론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이슈들에 대해 신학적 측면에서 몇 가지를 고찰해 보았다.

한국 내 창조론을 다루는 입장의 스펙트럼이 이전보다는 훨씬 변모되고 다양해진 것이 사실이다. 유신진화론이 과학적 입장과 성경적 입장을 양립시켜 보려는 시도이긴 하지만, 그 어느쪽도 만족시키기 어려운 자가당착적 논리는 아닌가?

짚고 넘어가야 할 근본적인 점이 있다면, 진화냐 창조냐 하는 논쟁은 과학 대 신학, 과학 대 신앙, 과학 대 비과학(혹은 사이비과학)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이론 대 이론, 더 나아가 신앙 대 신앙의 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논쟁은 실험과 검증을 바탕으로하는 과학의 범주를 넘어가는 것이기때문이다.

창조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창조 교리가 다른 교리에도 영향을 파급하는 단초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에 관해서든 성경에 관해서든, 한계 속에 있는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러기에 학자이든 신앙인이든 해석의 여지를 둔다는 것은 기원의 문제와 같은 영역을 논하는 모든이에게 요청되어야 하는 겸허한 태도이다.

지금은 다 알 수 없어도 언젠가 밝혀지면 질수록, 두 책(성경과 자연) 사이의 모순은 극복될 것이라는 기다림의 자세도 중요하다.

창조론 논쟁에 있어 제기되는 교회적·목회적 이슈가 있다. 유신진화론의 경우처럼 이견의 차이가 기독교 신앙인과 비기독교인의 문제라기보단, 기독교 내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서로 다른 입장 차인 것이다.

문제나 공격이 외부(비기독교인)가 아니라 내부(기독교 내)에 있다는 점이다. 자칫 창조론 논쟁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서로 다른 진영(교단?)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안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연합의 문제를 제기한다.

박형진 교수
(Photo : ) 박형진 교수

어느 한 과학자는 ‘창조과학 난민’이라는 표현으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서로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치열한 논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에 있든 위에서 제시한 겸양의 태도로 서로를 이단시하거나 정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박형진 교수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학
고려대학교 (B.S., 생물학)
휫튼대학원 (M.A., 성서, 신학)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M.Div., 목회학)
프린스턴신학교(Th.M., Ph.D., 교회사, 선교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