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 묵상 어떻게 설교 연결시킬지 고민
창조적 성경묵상, '요약-개념화-질문-답변' 순
목회자들에 가장 힘든 것 적용, 인문학 독서로

설교자와 묵상

김도인 | CLC | 200쪽

"설교는 묵상으로 시작해서 묵상으로 마친다. 설교할 본문이 정해지면 설교자가 맨 처음 하는 일이 묵상이다. 설교를 삶에 스며들게 하는 마지막 일도 묵상이다. 결국 설교는 묵상이 중심에 있다. 묵상이 중요하다. '묵상을 어떻게 하는가'가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설교와 즉각 연결될 수 있는 묵상을 해야 한다."

비대면·비접촉 시대를 부른 코로나19 사태는 교회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두 달간의 온라인 예배는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 워십 등에 가려진 '설교'를 재발견하게 했다.

아트설교연구원 설립 후 10년 이상 전국을 다니며 목회자들에게 설교 글 쓰기와 구성, 인문학 독서, 책 쓰기 등을 가르친 김도인 목사는 '들리는 설교'를 위해 글쓰기와 인문학 독서를 강조해 왔다. 그리고 이번에 설교를 위한 '창조적 성경묵상법'을 담은 <설교자와 묵상>을 펴냈다. 다음은 그가 말하는 '창조적 성경묵상법'과 오늘날의 설교 이야기.

-독서와 글쓰기 운동을 하다 묵상 도서를 내게 되신 이유는.

"묵상이 안 되면, 독서도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글쓰기 책부터 낸 것은, 글쓰기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아트설교연구원 사역을 하면서 계속 느끼지만, 많은 설교자들이 자신이 설교를 잘 하는 줄 압니다(웃음). 하지만 그건 자기 생각이지요.

설교 글쓰기가 잘 되어있지 못하면, 설교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최근 여러 교회 설교들을 들어보면, 글쓰기가 안 돼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본인은 은혜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괴롭습니다. 이는 청중을 무시하고, 세상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이러다간 기독교가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막힐 수 있습니다.

옥한흠·이찬수·유기성 목사의 설교를 분석한 <설교를 통해 배운다>를 이후에 썼는데, 설교 글쓰기에 있어 설명 중심보다는 논증 중심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글쓰기를 하고 난 뒤에는, 구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교는 인문학이다>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일까요. 묵상이란 목사의 기본적 자질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설교자와 묵상>을 내놓은 것입니다. 일련의 순서가 하나의 전략이었습니다. 더 급하고 중요한 글쓰기부터 시작해, 묵상으로 방점을 찍고 싶었습니다.

묵상은 설교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커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묵상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문제는 큐티나 평신도를 위한 묵상이 아니라, '설교자'의 묵상이 어떠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설교를 위한 묵상, 그리고 묵상을 어떻게 설교로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읽고 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와서 배워야 합니다. 책에 묵상법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설교에는 신학과 인문학의 융합이 필요합니다. 인문학이 받쳐주지 못하면, 설교가 먹히지 않는 시대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성경 이야기만 들려줘도 좋아했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성도들 머리가 커진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학에도 인문학이 결합해야 합니다. 아이폰이 공학과 인문학의 결합이듯, 신학도 인문학과의 결합이 있어야 합니다.

삶은 힘들어지고 비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 인간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학문의 근간, 인문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도전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목요일 밤마다 10명을 모아 '설교와 묵상'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반응이 좋습니다. 젊은 전도사들이 찾아와서 희망적입니다. 그들의 고민도 묵상을 어떻게 설교로 연결지을까에 있습니다. 자신들의 큐티가 설교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름의 답을 제시하고 있는데, 수강생들의 반응이 좋아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묵상이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설교자에게 묵상은 기본입니다. 큐티를 하면 하나님 음성을 느낀다고 합니다. 설교자의 묵상이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기본이고, 설교자의 성숙을 이끄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이 '질문'입니다. 유대인의 교육법 하브루타도 다 질문으로 이뤄져 있지 않습니까.

제가 만든 질문법은 신학보다는 인문학적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다'라고 했을 때, '왜 사랑이신가?'라고 묻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질문이지만, 이런 질문만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화두는 '다름'입니다. 그래서 '낯설게 하기'가 필요합니다. 낯설지 않으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요즘은 워낙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다르게 풀어내야 관심을 갖습니다. 이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본능을 만족시켜 주면서, 성경에 낯설고 새롭게 접근시켜 주는 것입니다.

수강생 한 명이 말했습니다. 가장 큰 과제가 '어떻게 남과 다르게 접근해서 갈 수 있느냐'라고요. 이를 제공하기 위해 의미화와 뜻 찾기 등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설교 가장 큰 약점 '일방적 선포'
묵상은 시간과의 싸움이자 본문과의 싸움
설교 본문 최소 20회, 최대 100회 읽어야

-책에서 말하는 '창조적 성경묵상법'이란 무엇인가요.

"일단 성경 본문을 요약하고, 이를 의미화·개념화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고 말하고 싶다면, 먼저 사랑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 개념화한 답을 가지고 질문을 합니다. 네 번째로 A4지 1/2 정도에 답을 쓰는 것입니다. '요약-개념화-질문-답변' 순입니다.

이를 통해 나온 묵상은 어떤 주석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주석은 내가 묵상해서 만든 주석 아니겠습니까. 남의 설교도 중요하겠지만, 자신이 묵상을 통해 알아가고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한다면, 유명 주석과 버금갈 만한 '나만의 주석 쓰기'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제 질문법의 핵심입니다. 질문하지 않으면 추측하게 됩니다.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하지만 질문을 하면, 결과가 정확합니다.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창조적 성경묵상법은 설교를 위한 묵상법인 동시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묵상법이기도 합니다.

묵상이란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변화와 성장과 성숙으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30분간 큐티한다고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5시간 동안 묵상하라고 합니다.

묵상은 시간과의 싸움이고, 본문과의 싸움입니다. 오랫동안 지속돼야 합니다. 깊이 있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설교자 자신이 묵상을 통해 먼저 변화돼야 합니다. 그러면 설교도 반응이 좋고, 청중들과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김도인 목사는
김도인 목사는 "묵상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통로로서, 설교를 깊고 넓게 한다"며 "묵상이 설교로 이어지려면 청중에게 들리도록 설명해야 하고, 본문의 의미는 물론 등장인물들의 마음 읽기를 통해 본문의 이면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 설교의 가장 큰 약점은 '일방적 선포'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성도들은 답답합니다. 저도 설교를 들으면서, 가끔 앉아있는 것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설교자 자신만 중요시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자신이 아니라, 청중을 중시해야 합니다.

학문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내가 이전에 배운 것이 다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문은 3년이면 폐기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폐기처분됐어야 할 학문으로 설교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묵상은 영적·지적으로 '업글 인간(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새로운 자기개발 형태로,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올해의 10대 키워드로 선정했다 -편집자 주)'을 만드는 좋은 과정입니다. 묵상과 질문은 연결돼 있습니다.

'창조적 성경묵상법'에는 신학과 인문학이 융합돼 있습니다. 하나님과 성경 속 등장 인물의 마음을 읽는 것도 중요한데, 인문학이 이를 돕습니다. 등장인물의 갈등과 심리 변화, 결단 등을 이야기할 때 인문학이 도움을 줍니다.

목회자들이 가장 많이 연구해야 하는 분야 중 하나가 심리학입니다. 사람들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 우리가 설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와 '지금'을 연결하는 것이 그 다음입니다.

제목도 중요합니다. 문장화된 제목을 써야 합니다. 단어나 구절은 기억하기 힘들지만, 문장은 기억에 남습니다. '사랑합시다'라고 하면 다음 주에 기억나지 않지만, '믿으면 산다'라고 했을 때는 4-5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제목만 이야기해도 들었던 설교의 윤곽이 대충 그려지도록 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 나와 있습니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중요하겠습니다.

"설교의 핵심이 예전에는 '선포'였다면, 지금은 '전달'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잘 소통되고 전달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설교는 이해가 안 됩니다. 청중과 소통할 수 있는 질문, 목회자도 동의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책에 그런 질문법을 만드는 방법을 써 놓았습니다. 유치원생, 초등학생들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설교를 평가하지 않고, 설교를 듣게 하는 것이 올바른 질문법일 것입니다.

질문하기 위해 성경을 최소 20회 정도 읽으면 좋습니다. 밥도 한 번 씹을 때와 두세 번 씹을 때의 맛이 다르지 않습니까? 다섯 번, 열 번 읽으면 느낌이 다릅니다.

사실 창조적 성경묵상법을 따라 묵상을 하면, 본문을 100회 정도 읽게 된다. 몇 회 읽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100회 읽으면 내 것이 됩니다. 경험상 100회 읽으면, 1주일간은 거기 들어가 있습니다. 한 번 읽으면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20회 읽으면 80% 정도는 기억에 남습니다. 가르칠 때 20회 읽고 그대로 써 보라고 하는데, 20회 읽으면 본문을 다 쓸 수 있었습니다.

본문을 다섯 번 읽고 설교를 준비하면, 본문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스무 번을 읽으면, 성경을 펼치지 않아도 본문이 떠오릅니다. 목사들은 설교할 때 청중을 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본문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웬만한 사람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100회 읽기가 힘들다는 것이지요."

성도들, 설교가 자신의 삶에 적용되길 바라
당위형·명령형 적용에서 메시지형 적용으로
본문에 집착 말고 오늘날 언어로 전달해야

-질문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적용입니다. 설교에 대해 성도들이 하는 이야기는 '오늘 설교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입니다. 청중의 고민을 풀어줘야 합니다. 설명 위주의 설교는 귀에서 왱왱거릴 뿐, 뭔가를 끄집어낼 수 없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부딪치고 적용하라고 설교하지만, 청중들이 적용할 수 있도록 설교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적용을 할 때도 '메시지 만들기'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단 문제를 설교할 때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면 너무 뻔하고,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속이 문제다. 소속을 분명히 하자. 내 소속이 어디인가. 하나님인데 소속이 왔다갔다해서야 되겠는가. 총무과 사람이 자재과에 가 있으면 되겠나. 내 소속이 분명하면 절대 이단에 발 딛지 않을 것' 식의 적용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설교에는 너무 당위형·명령형의 적용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1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늘 듣던 것이라 와 닿지도 않고, 실천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김도인 목사의 이전 저서들. <설교는 글쓰기다>, <설교를 통해 배운다>, <설교는 인문학이다> 순으로 발간됐다. 설교 제목에서 강조한 것처럼, 책 제목이 모두 문장으로 돼 있다. ⓒ이대웅 기자
김도인 목사의 이전 저서들. <설교는 글쓰기다>, <설교를 통해 배운다>, <설교는 인문학이다> 순으로 발간됐다. 설교 제목에서 강조한 것처럼, 책 제목이 모두 문장으로 돼 있다. ⓒ이대웅 기자

-오늘날 목회자들이 설교를 준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본문에만 집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문만으로 설교하셨나요? 일상생활 속에, 그 시대의 말로 풀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본문 단어로만 설교하니, 와 닿지 않는 것입니다.

철학보다 더 어려운 것이 성경입니다.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특히 새신자들에게는 본문이 외국어 같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많이 하지만, 설교는 전도처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일 설교는 기존 신자와 새신자들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요즘은 주일 한 번만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으로 설교만 듣고 있습니다. 새신자들은 주일 대예배 한 번만 교회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들어도 좋고 새신자가 들어도 좋은 설교를 하셨습니다. 일상 언어, 시장의 언어로 풀어내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 언어는 2천년 전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입니다. 그 단어들로 설교하니, 이해가 안 되지요. 예수님께서 '구원'을 뭐라고 표현하셨나요? '좁은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해할 수 있는 말씀이지만, 너무 성경에 얽매여선 안 됩니다. 성경에 묶이지 말고, 성경을 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설교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언약'이라는 말은 스포츠의 '어시스트'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시스트는 도와주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구원을 도와주신다'고 설명하면 새신자들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예수님이 구원자'라고만 하면, 새신자들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만 듣다 오니 시간이 아까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보다 예수님이 좋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막말로, 요즘 설교가 드라마보다 재미있습니까?

설교자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과소평가도 문제이지만, 과대평가는 더 큰 문제입니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설교 준비에 대한 관심이 적습니다.

설교를 통해 심장이 뛰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설렘과 감동이 없고, 공감도 안 됩니다. 교회 내에서는 공감될지 모르나, 세상과 공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 신천지의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세상과의 공감 능력이 없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요. 하나님과의 공감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설교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청중입니다. 신학 교수들의 가르침이 현장에서 잘 먹히지 않습니다.

설교 잘 하는 사람들은 적용이 좋습니다. 그리고 실용적입니다. 설교는 이론과 실천이 결합돼야 합니다. 설명과 이론 위주의 설교보다, 논증과 적용 위주의 설교여야 합니다.

평신도들은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며 고민하고 있는데, 설교에 '올인(All-in)'하는 목사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찬수 목사 같은 사람들은 본문에 근거해 설교를 준비하고, 청중에 맞게 또 한 번 준비합니다. 그런데 보통 설교자들은 한 번만 하다 보니 이론에 치우칩니다.

목회자들에게 가장 힘든 것이 적용입니다. 그래서 인문학 도서를 많이 읽으라는 것입니다. 인문학은 적용에 대한 책입니다. 특히 소설과 역사책을 많이 읽으십시오. 예화도 했던 걸 또 하면 싫어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리더라면, 다 아는 것을 다르게 풀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팩트(fact)'를 '임팩트(impact)' 있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설교에서 성경이라는 '팩트'를 잘 가공하지 않으면, 성도들이 금방 질립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느낀 것은, 큰 교회 설교자인데도 인터넷 조회 수가 성도 수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뜬구름 잡는 식의 설교가 많습니다.

저희 아트설교연구원 회원들은 요즘 코로나19로 '집콕'을 하다 보니 하루 한 권씩 책을 읽습니다. 8대 2 비율로 인문학과 신학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용이 좋고, '설교 잘 한다'는 말을 듣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