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홍 (미드웨스턴 객원교수/예일대 에드워즈센터 상임연구원)
(Photo : 기독일보) 정부홍 박사 (미드웨스턴 객원교수/예일대 에드워즈센터 상임연구원)

오늘의 세계적 이슈는 COVID-19다. 특정 국가나 지역을 넘어 전 세계에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로 인해 현재의 상황뿐만 아니라 미래의 어떤 삶을 열어가게 될 지에 대한 많은 생각과 염려 속에 우리는 오늘의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시기에 기독교인들, 특별히 목회자들은 현 상황을 어떤 이해와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초유의 전염병으로 하루에도 몇 천명이 죽어가는 이 상황에서 목회자들은 어떤 이해를 가지고 설교와 목회적 상담을 할 것인지, 그리고 닥쳐 올 코로나 이후의 삶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전염병은 전염병이 창궐했던 당대에 다양한 정치적, 종교적, 역사적 흔적을 남겼음을 역사의 기록을 통해 볼 수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전염병의 사례를 살펴보면, 우선 모세가 출애굽 당시에 이집트 지역에 내린 재앙 중 다섯 번째 재앙으로 가축들에 대한 "죽음의 돌림병"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출애굽기 9장 1-7절). 또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이스라엘에게 발병했던 전염병의 기록(민수기 16장)과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던 인구 조사를 단행한 다윗으로 인해 7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전염병으로 희생된 기록(사무엘상 24장)도 성경에 나온다. 이 외에도 전염병에 대한 예언과 성취에 대한 기록 및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재앙의 중심에는 역시 전염병이 있다.

카일 하퍼라는 학자는 로마제국은 안토니우스 역병(AD 165-180)을 시작으로 키르프스 역병(AD 249-262),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 역병(541-542)의 높은 사망률로 세계 제국의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전염병은 중세 14세기에 유행한 흑사병으로 유럽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였고, 이로 인해 구교의 몰락과 신교의 도래라는 변혁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되었다. 기록에 보면, 종교개혁시대인 16세기에도 루터와 칼빈, 츠빙글리도 흑사병과의 사투를 벌였다.

조선시대에서도 전염병의 기록은 빈번하게 보인다. 한 예를 보자면, "목민심서" "역서일기" "실록" 등에 기록된 1821년에 창궐한 콜레라가 그 예다. 당시 콜레라의 발발로 수십만 명이 죽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콜레라가 쥐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 믿었던 백성들은 불안과 공포를 잊고자 고양이 부적을 집집마다 붙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콜레라가 창궐하던 이 시기에도 종교적인 격변이 일어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귀의한 것과 최재우를 중심으로 동학이 창시되어 전통의 유교 사회에 변화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 대표적이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500천만명이 사망했는데, 조선총독부 통계연감에 따르면 총 인구 1670만명 중 44%인 742만명이 감염되었고 14만명이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더욱 흉흉해진 민심이 이듬해 3월 1일 독립운동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전염병의 역사적 기록을 통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전염병이 인류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역사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시카고대 교수인 윌리암 하디 맥닐이 1976년에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란 책에서 주장한 소위 '전염병 사관'이다. 그는 전염병이 역사적으로 전쟁에서 살육의 도구로 사용된 실례가 많을 뿐만 아니라 로마가 기독교를 수용하고, 인도에 불교 문화가 일어나고, 중세 구교의 몰락과 함께 신교가 등장하는 등의 종교적 변혁을 촉진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필자가 연구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을 면밀히 살펴보면 전염병과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를 볼 수 있다. 먼저 1729년, 에드워즈와 그의 여동생 제루샤, 그리고 아버지가 전염병 디프데리아를 앓게 된다. 기적적으로 에드워즈와 아버지는 살아 남았으나 안타깝게도 그 해 말에 제루샤는 이 병으로 사망한다. 가족을 넘어 에드워즈와 전염병과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유난했다. 현대 선교의 원조라 불리우는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1747년에 에드워즈의 사택에서 유행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브레이너드가 사후에 남긴 일기를 에드워즈가 편집, 발행하였고 이것이 브레이너드의 유작이자 현대 선교의 고전이 되었다. 1757년 9월에는 에드워즈의 사위이자 프린스톤 대학 학장이었던 아론 버러가 천연두로 사망하였고, 에드워즈 자신도 이듬해인 1758년 1월에 이 병에 감염되어 두 달 뒤인 3월 22일 사망한다. 에드워즈 사망 2주 후에는 그의 딸 에스더도 사망한다. 이처럼 에드워즈 가문은 전염병으로 인한 극심한 위기를 겪었다. 그만큼 전염병은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일상에게 흔하게 접할 수 있었던 공포였으리라.

에드워즈는 주치의였던 윌리엄 십펜을 통해 아내 사라에게 유언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는 가족들과 잠시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제 잠시 후 내가 너(딸 루시)를 두고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 내 아내에게 나의 가장 친근한 사랑을 전해다오." 에드워즈의 아내 사라는 딸 에스더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검은 구름으로 덮으셨구나....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행하셨다, 그분이 나로 하여금 자신의 선하심을 찬양하게 하셨다."고 하였고 안타깝게도 딸 에스더의 사망으로 이 편지는 전해지지 못했다. 이처럼 에드워즈 부부는 전염병으로 인해 본인 자신과 가족의 상실을 경험하는 고난 가운데서도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이다" "주님께서 그(선한) 일을 행하셨다"고 하는 공통된 신앙의 고백을 남겼다.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생사를 넘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고백하고 찬양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믿음으로 미래의 굳건한 소망을 바라보는 신앙을 보여주었다.

에드워즈는 전염병에 걸린 아비가일 허친슨이라는 자매의 이야기를 기록에 남긴 적이 있다. 그녀는 전염병에 감염되어 서서히 임종의 순간을 준비하는 중에도 자신을 방문하는 방문객들 중 아직 회심치 않은 사람이 있으면, 그 영혼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자신이 당하는 고통조차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임종의 순간까지 "고요히 평안을 누리며 주님 만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고백하였고 그녀의 고백을 듣는 이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고 비록 그녀는 죽었지만 그녀의 간증이 전파되어 뉴잉글랜드 대부흥, 대각성의 단초가 되었다고 기록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최근 코로나로 고통을 겪는 이탈리아에서도 일어났다. 줄리안 우르반이라는 젊은 무신론 의사는 코로나 확진자인 자신의 환자들 중 한 목사님의 죽음을 통해 경험한 본인의 간증을 나누었다. 비록 자신도 코로나 환자였지만 다른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성경을 읽어주다가 조용히 숨을 거둔 이 목사님의 모습에 감동한 우르반은 부모님의 신앙을 조롱했던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이 목사님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들을 돌보겠노라고 결단했다.

성경은 전염병 역시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고 말한다 (신29:22; 대상21:12;대하7:13; 시106:29). 코로나로 인하여 사람의 귀한 생명이 사그라드는 안타까운 상황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발생하는 공포스런 요즘, 기독교인들은 이 사태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회(요21:19)로 삼고 선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한다. 모든 만물의 제일 원인자이신 전능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영광을 위해, 자기 뜻을 위해, 그리고 그의 나라를 위해 우리 시대 속에서 그 분의 완전하신 뜻과 구원을 성취하여 가신다는 사실을 이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 가운데 바라봐야 한다. 즉 말세에 세상의 야욕과 죄로 물든 성도는 회개(마4:17)와 인내, 그리고 믿음과 지혜(계13장)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시대적 위기는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믿음의 선배들은 각자가 당면한 위기를 믿음으로 견디며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소망 가운데 극복했다. 코로나라는 시대적 위기 속에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믿음의 선배와 그의 가족들이 고백한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진리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한다. 

정부홍 박사 (미드웨스턴 객원교수/예일대 에드워즈센터 상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