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다니엘 3장 13-18절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바람이 불면 나무들이 그 바람에 의해 온통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만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도 생각지 못한 바람이 불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삶을 흔드는 바람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바람이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문제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지금은 코로나19라는 바람이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바람이 어떤 것이든, 누구도 흔들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바람에 의한 흔들림은 사람의 인생에 가운데 다양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 흔들림으로 인해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이 통째로 뽑혀져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흔들림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양이면 흔들림을 통해서 더 단단하고 견고해지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흔들림을 통해 견고해지려면 지켜야 한다

흔들림을 통해 단단해지고 견고해지려면 잘 지켜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고 있는 이 때,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잘 지켜야 합니다.

먼저는 코로나19 예방수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외출하고 돌아온 후에는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을 씻어야 합니다. 기침을 할 때는 옷소매로 가리고 해야 합니다. 마스크를 잘 착용해야 합니다.

또한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의료진들은 의료진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자가 격리자들은 답답하지만 이탈함 없이 그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국민들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지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

동양 리더십의 고전으로 꼽히는 '정관정요'에 보면, '창업과 수성'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우는 것과 지키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요? 당나라 초기 공신인 위징은 수성, 곧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창업할 때는 매사에 긴장하고 겸손합니다. 성심성의껏 아랫사람을 대합니다. 하지만 천하를 얻게 되면 교만해집니다. 처음 다짐한 그 뜻이 속절없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뜻은 누구나 세울 수 있지만 아무나 지켜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스터피자 창업자인 정우현 회장이 쓴 <나는 꾼이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꽃이 피기까지 긴 겨울이 필요하다. 겨울의 찬바람과 눈보라를 모두 이겨내고 나서야 마침내 꽃을 활짝 핀다. 그러나 꽃은 피는 순간부터 지기 시작한다. 자연의 꽃은 순리에 따라 지지만, 인생에 있어서의 꽃은 초심을 잃기 때문에 진다. 자신감이 오만으로 변질될 때 위기가 찾아온다."

정 회장은 자신이 이렇게 말해놓고도 결국 초심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갑질과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작년 12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것은 믿음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이 위기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3주째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힘든 상황을 맞이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겠구나. 어쩌면 이 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겠구나.

지금은 영상을 통해서라도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이것까지 못할 수 있는 상황도 펼쳐질 수도 있겠구나. 만일 이런 최악의 상황이 우리에게 닥쳐온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스스로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합니다.

마귀는 도둑이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마귀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도둑이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멸망시키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흔듭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미혹합니다. 이 미혹과 흔들림을 이기기 위해,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이 삶의 무게 중심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놉니다. 저희 큰 아이도 어렸을 때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큰 아이가 아주 심각하게 인상을 쓰면서 가지고 논 장난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뚜기 장난감이었습니다.

큰 아이가 오뚜기 장난감을 한 대 때립니다. 그러면 이 장난감이 넘어가야 하는데, 넘어갈 듯 흔들거리다가 또 일어섭니다. 어린 마음에 화가 납니다. 화가 나서 인상을 쓰면서 오뚜기 인형을 계속 때립니다. 그래도 오뚜기 인형은 아랑곳 하지 않고 흔들리다가 다시 제자리에 섭니다.

오뚜기가 그렇게 맞고 흔들리면서도 제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래쪽에 무게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도 믿음이라는 무게중심이 있으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흔들리다가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괴롭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믿음을 선택한 다니엘의 세 친구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두라 평지에 30m나 되는 금신상을 만들어놓고 모든 관리들로 하여금 절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만일 왕의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 가운데 던져버리겠다고 엄포했습니다.

이런 명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야벳느고는 왕의 금신상 앞에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그래도 이들을 아끼는 마음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이렇게 왕에게 대답을 합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다니엘의 세 친구는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풀무불 가운데 들어가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 고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고백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비록 하나님께서 풀무불 가운데서 건져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금 신상에 절하지도 않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끊어지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진 것, 누리고 있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려움 가운데 지켜주십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거두어 가실 수도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나라가 우리가 돌아갈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배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성도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우리가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예배를 못 드려서야 되겠습니까? 목숨 걸고 예배드려야 되는 것 아닙니까?

영남신학대학교 김동건 교수님이 코로나19로 인해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일부 개신교와 가톨릭교회가 대중예배와 집회를 일시적으로 폐하는 이유가 코로나19에 의해 사람이 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일반 시민과 공공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다.

또한 대중예배를 피하면서, 가정에서 혹은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므로 예배를 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독교 초기 박해 시대 혹은 기독교 탄압으로 행해지던 교회 폐쇄와 다르다. 만약 공권력에 의해 주일예배가 금해진다면, 당연히 목회자와 성도들은 결연히 이에 맞서야 할 것이다."

저는 김 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주일예배가 공권력에 의해 금해진다면 우리는 목숨 걸고 예배를 사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라면, 생명을 살리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다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후, 자신을 고발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막 3:4)".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든,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나마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신앙생활을 할 때는 믿음을 지키기가 낫습니다. 위로도 받고 도전도 받고, 시너지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들만 예배를 드리면, 때로 혼자서 예배를 드리면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라

그래서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일본 메이지대 문학부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는 "지금의 시대는 마음이 '뚝'하고 부러지는 시대(부러지지 않는 마음)"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부러지는 시대'란 다르게 표현하면 '마음이 무너지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에 비추어 본다면, 마음이 무너지면 우리의 인생도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무너지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믿음도 무너집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이 계속 증가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너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불안해집니다. 평안이 없어집니다. 두려워집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예수 믿은 우리는 마음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면 육신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하늘색이면 모든 것이 하늘색으로 보입니다. 내 마음이 검은색이면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 보입니다.

내 마음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면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내 마음이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느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서도 마음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의 생명의 뿌리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말씀합니다.

마음은 호수다

마음은 호수와 같습니다. 호수는 생명을 살리는 곳입니다. 식물과 동물과 물고기와 사람의 생명까지 살립니다. 호수가 공급해 주는 물이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마음도 생명을 살리는 곳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살겠다고 마음먹으면 살아냅니다. 살아집니다.

하지만 호수는 생명을 죽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호수가 오염되면 생명을 죽입니다. 호수의 물이 차고 넘치면 홍수가 되어 생명을 죽입니다.

마음도 생명을 죽이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병이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입니다. 겉은 멀쩡해도 마음의 병이 들면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며 사는데도 마음의 병이 들면 사람을 죽게 만듭니다.

이처럼 마음이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만큼 중요하다면, 우리는 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물리치라

전문가들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하루에 17%만 긍정적 생각을 하고 83%는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이 훨씬 더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면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이 거의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물리치고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일 다니엘의 세친구가 생명의 위협 앞에서 마음이 약해졌다면, 그들은 왕의 금신상 앞에 절했을 것입니다. 믿음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혹 코로나19로 마음이 약해지신 분이 계십니까? 다시 마음을 다 잡으십시오. 또한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이 가득한 분이계십니까? 그 생각과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고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라

둘째,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아웃포커싱 & 팬포커싱

사진을 찍는 기술에는 아웃포커싱과 팬포커싱이 있습니다. 아웃포커싱은 내가 찍고자 하는 대상만을 선명하게 하고 나머지는 희미하게 처리하는 기술입니다. 이에 반해 팬포커싱은 전체를 다 선명하게 찍는 사진 기술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팬포커싱 기술로 찍습니다. 하지만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그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아웃포커싱 기술로 사진을 찍습니다. 아웃포커싱 기술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예수님이 배경처리 당하면 안 된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집중하게 되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곧 집중하는 대상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배경처리가 되는 것입니다.

가끔씩 운전을 하다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야 할 길을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대화에 집중하다보니,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그냥 지나치는 것입니다.

또한 어느 하나에 집중하고 있으면 어떤 사람이 불러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집중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집중하면 사람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환경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배경처리가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집중하지 않고 사람이나 환경에 집중하면 예수님이 배경처리를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예수님이 희미하게 보이고 배경처리를 당하면 우리의 믿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집중하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코로나19 특집방송만 계속 보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느냐를 알기 위해 봐야겠지만, 계속 그것만 보고 있으시면 안 됩니다.

코로나19에만 집중하면, 확진자 증가에만 집중하면, 어려운 상황만 집중하면 그것이 너무 크게 보입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됩니다. 반면 예수님은 작아 보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배경처리를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집중해야 믿음을 지킬 수 있다

예수님께서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걸어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로 가셨습니다. 베드로는 유령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용감하게 자신도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요청을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발을 내 딛었고 정말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베드로는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베드로의 시선이 주님이 아니라 바람을 향하였을 때 베드로는 물속에 빠지게 됩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집중하지 않고 바람에 집중했을 때 그는 더 이상을 물 위를 걸을 수 없었고, 물속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물속에 빠진 베드로의 손을 잡아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다니엘의 세 친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느부갓네살왕과 풀무불을 바라보았다면, 믿음을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이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기에, 그것을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영적 환경을 만들라

셋째, 영적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은 다 그런 것이 아니지만, 대부분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떤 환경 가운데 살아가느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영적으로 살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삶의 43%가 습관에 의해 움직인다고 말을 합니다. 이는 우리 삶의 43%가 의식이 아니라 비 의식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습관을 만드는데 중요한 것은 상황이다

그런데 습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물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간 행동 연구 전문가이자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웬디 우드는 'Habit'이라는 책에서 습관을 형성하는 핵심요소는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의지력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의지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황은 환경과 같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의지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심했다고 다이어트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조절해야하고 운동도 해야 합니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이어트 한다고 하면서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워 놓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방송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미국 특수전 사령부 사령관이었던 윌리엄 맥 래이먼은, 군인들을 향해 '세상에서 큰일을 하고 싶으면 침대 정돈부터 똑바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때, 그 자리를 나와 도망쳐 버렸습니다. 요셉은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유혹에 넘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환경을 믿음을 지킬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영적 환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마저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보다 더 힘든 상황이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각자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우리의 환경을 영적 환경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재영 목사
이재영 목사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