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처치리더스닷컴은 최근 '사단은 당신이 이것을 하길 원한다'는 제목의 칼럼을 소개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사단이 '당신이 계속해서 하길 바라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은가? 때로 우리는 싫어하는 행동을 한다. 이로 인해 혼돈에 빠지고 자학을 하게 된다.

빛 가운데 걸어가면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일과 그 죄가 우리를 결정짓고 정의하는 것 사이에는 다른 세계가 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우는 것은 적절하지만, 우리 스스로 미워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후회와 부끄러움의 순간, 우리는 자학이 옳고 선하고 성경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결국,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을 훼방했고,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절대 우리 스스로를 미워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요 3:16, 요일 4:10). 그리고 사단은 당신이 자학하는 것을 좋아한다. 당신의 자학을 좋아하는 존재는 오직 사단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나 스스로를 혐오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언 17장 5절은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야고보서 3장 8~10절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내가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대해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내가 다른 이들을 비하하든 나 자신을 비하하든 사실이다. 자기혐오조차 나를 지으신 창조주를 모욕하는 것이다. 난 그분의 이미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2. 자기 혐오는 기쁨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신학적 논쟁의 한복판에서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목소리에서 기쁨을 읽을 수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복음이 '하나님의 아들이 날 사랑하셨고, 나를 위해 자신을 바치셨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나는 사랑받기보다 미움을 받을 만한 존재라고 기억되고, 복음 자체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3. 자기 혐오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가린다

자신을 경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나를 재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내가 지은 죄로서 나를 정의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서 은혜 밖에서 지은 죄로 자신을 바라보는 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한때는 그러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내 죄가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화해가 나를 규정한다.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은 사단에게 기쁨을 준다. 사단은 여러분이 스스로 자학하는 것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