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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사상, 어떻게 한국에 전파됐을까?

기독일보

입력 Feb 10, 2020 01:45 P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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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목사의 한국교회사] 공산주의와 교회

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1917년 러시아에서는 브라드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를 처형하고 공산당 혁명을 성공시켰다. 이때부터 공산주의 사상이 들불처럼 각처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이 사상은 무산대중과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호소하여 급속도로 전파되었을 뿐만 아니라 레닌은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을 선언했기 때문에 뜻있는 한국 지사들과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복음으로 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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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운동 후 일제가 문화 정책을 표방하고 나서자, 각종 새로운 사상과 지식이 한국에 밀려들어왔고, 이에 편승하여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사상이 한국에도 소개되고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이 사상은 주로 북으로 이주해 간 이주민들의 내왕과 유학생들에 의해 유입되었다.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10여 년을 착취당하고, 더욱이 3·1 독립운동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을 때, 이 사상은 적지 않은 지성인들과 뜻있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메시지가 되었다. 기독교가 주축이 되었던 독립운동에 대해 미국이 소극적 입장을 보였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고 그들의 눈길을 새로운 세력으로 다가오는 공산주의와 소련이라는 신흥대국으로 돌리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사상이 한국에 처음 들어올 때는 과격한 모습으로 나오지 않았고 민족의 염원인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가왔다. 따라서 이들은 이 궁극적 목적을 위해 민족주의자들과 손잡고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상은 처음부터 무신론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이 사상의 파급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교회는 이 땅에 민족교회로서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위기는 외부로부터 오는 위기가 아니고 우리 민족 자체에서 온 위기요, 사상적, 이데올로기적 위기였다. 공사주의는 지금까지 기독교가 겨냥했던 일반 대중과 하류층에 파고드는 무서운 사상적 적대 세력이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가 파고들어가 전도해야 할 대상을 공산주의가 대신 침투하여 그 사상을 불어넣고 기독교에 등을 돌리게 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게 함으로써 기독교 전도에 커다란 거침돌이 되었으며, 또한 무서운 적대 세력으로 나타났다.

사회주의 사상이 한국인들 사이에 퍼져 나가면서 연해주(러시아 영)의 이동휘, 김립, 박진순 등이 중심이 되어 1918년 6월 10일 '한인사회당'을 결성하였다. 이것이 조선인이 만든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다. 한인사회당을 이끌었던 이동휘가 후에 상해의 임시 정부에 참여하면서, 이들의 근거지가 상해로 옮겨졌고, 이와 더불어 사회주의 비밀결사인 사회혁명당의 김철수, 이봉수, 장덕수 등이 함께 1920년 5월에 '고려공산당'을 결성하였는데 이들을 일컬어 '상해파 고려공산당'이라 부른다.

한편 러시아령 바이칼 호 근처의 한인을 기반으로 한명세, 김철훈, 김하석 등이 1919년 1월 '이르크츠크 한인공산당지부'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1919년에 창설된 국제 공산당인 코민테른 지원 아래 같은 해 9월 '전러시아 한인공산당'을 결성하여 시베리아 일대의 한인공산당 운동을 이끌었다. 후에 상해의 여운형, 안병찬을 포함하여 '통일고려공산당'을 결성하였는데 이들을 일컬어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이라 부른다. 후에 김단야, 박헌영, 조봉암 등이 이르쿠츠크 파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국내에 이 운동이 유입된 것은 일본으로부터였다. 일본에 유학했던 변희용, 조봉암 등이 그곳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접하면서 국내에 본격적으로 유입시켰다. 이들에 의해 '북풍회,' '화요회,' '토요회' 등의 사회주의 단체가 서서히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당면 목표를 민족독립에 두고 일제의 자본주의를 박멸하기 위해서는 전 민족이 유, 무산을 가릴 것 없이 똘똘 뭉쳐야 된다는 공산주의 사상을 유포시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25년 4월 17일 아사원에서 김재봉, 조봉암, 박헌영 등이 주동이 되어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였다.

공산주의 사상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기독교 신앙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과 기독교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가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민족의 독립을 위해 나서지 않는다고 판단한 지도자들 중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함경도에서 순회 전도사로 일했던 이동휘였다. 그는 1904년 기독교에 입교할 때 "기독교야말로 쓰러져 가는 나라와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했으나, 후에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1918년 6월 러시아 땅 하바로브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창당하였고, 이듬해 4월에 블라디보스톡에서 '고려공산당'을 창당하였다. 김 구 선생이 쓴 「백범일지」에 보면 이동휘는 민족주의자라기보다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고, 상해 임시 정부에도 지울 수 없는 큰 손실을 끼친 인물이었다.

한인공산당도 여러 갈래가 있었는데, 이동휘를 수령으로 하는 상해파, 안병찬, 여운형을 두목으로 하는 이르쿠츠크 파, 그리고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일본인 복본화부의 지도를 받는 김준연 중심 엠엘(ML:Marx-Lenin) 당파 등이었다. 그 외에도 이을규, 이정규 형제와, 유자명 등이 중심한 무정부주의파(아나키스트), 심지어 공산주의에 충실하여 자본주의 사상에 찌든 자기 아비를 죽이는 살부회(殺父會)가 이상룡의 아들에 의해 조직된 사실을 김구 선행이 그의 [백범일기]에 기록했다. 이들은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자기 아비를 자기가 죽이지는 못하고 서로 상대방의 아비를 죽이자고 결의하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서 공산주의의 실체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공산주의가 기독교와 같이 일하려는 모습을 보인 때도 있었다. 그 한 예로 새문안교회 장로였던 김규식이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공부했고, 중국 남경 금능대학 영문학부에서도 공부한 서울 승동교회 전도사 여운형과 같이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차 극동 피압박 민족대회'에 '기독교도 동맹' 이름으로 참석했다. 이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잘 몰랐거나, 공산주의가 의도적으로 가면을 쓰고 기독교 속에 침투해 왔거나 둘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출발부터 그 이념이 다르다는 점을 이광수는 1931년 「청년」지에 잘 묘사하고 있다. 1. 기독교는 너를 미워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부르주아들'에 대해 증오하라고 요구한다. 2. 기독교 혁명은 계급 권력과 적대감이 사랑으로 만나는 곳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자기를 죽이는 고통에서 발견된다.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은 적대계급에 대한 폭력적 파괴를 의미한다.

3. 기독교는 십자가로 그 군대를 결속시키나, 마르크스-레닌은 총으로 결속시킨다. 4. 기독교 혁명가들의 눈은 사랑과 용서의 눈물로 가득 차 있으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의 눈은 증오와 복수의 불길로 가득 차 있다. 이광수의 이 분석은 교회와 공산주의 사이에는 결코 합할 수 없는 이념적 간격의 골이 너무 깊고 넓은 사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그들이 희생시킨 자들의 피로 강을 이루게 한 반면에, 기독교인들은 그들 자신의 피로 강을 이뤄야 하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한 대목에서 극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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