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성

시몬느 드 보부아르 | 이희영 역 | 동서문화사 | 1,056쪽

보부아르(1908-1986)는 사르트르와 함께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 운동의 선두에 섰던 여류 작가요, 평론가다. <제2의 성>은 보부아르의 대표적 저작으로 혁명적인 여성론이다.

보부아르는 1908년 1월 9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이고, 어머니는 유복한 은행가의 딸로서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다. 아버지는 언변에 능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연극에 대해 대단한 정열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상류사회를 꿈꿨지만, 재산과 가문 때문에 평범한 지위밖에 얻지 못했다.

유년 시절의 보부아르는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가족의 관심과 애정을 한 몸에 받는 매우 쾌활한 여자아이였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할아버지가 사는 시골에 내려가서 자연의 은총을 만끽했다. 3살 때 상류계급 자녀들이 들어가는 사립학교에 입학했다.

그녀는 후일 소르본 대학에 입학했으나 강의에 만족하지 못했다. 공부에 열중하고 문학을 천착하는 데서 그나마 마음의 위로를 찾았지만, 실제로는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의 심한 고독과 따분함에 시달렸다.

1929년 6월, 철학 부문 대학교수 자격시험 준비를 하던 때 사르트르와 만났다. 사르트르와 그의 동료들은 고등사범학교 학생 가운데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부르주아적 규율과 모든 이상주의를 비웃고 있었다. 출구를 찾고 있던 보부아르는 그들과 만남으로써 단숨에 해방을 얻었다. 그녀에겐 행운과 같았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르트르는 내 10대 때의 소원에 딱 들어맞았다. 그는 또 하나의 나이고, 나의 모든 열정을 극단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그와는 언제나 무엇이건 뜻이 맞았다. 8월 초 여름방학에 그와 헤어졌을 때, 나는 그가 다시는 내 인생에서 절대 떠나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에게 완전한 신뢰를 보냈다.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결혼은 그들의 주의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독신은 그들에게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두 가지 이유에서 아이를 바라지 않았다. 하나는 작가가 되는 것과 모성이 양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점, 다른 하나는 처녀 시절의 고통에서 비롯된다.

"나는 부모에게서 아주 사소한 공통점 밖에는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를 갖기도 전에 아들이나 딸이란 것이 생판 남처럼 느껴졌다."

보부아르는 일관되게 소설가를 지망했다. 스스로를 철학자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녀에게 철학은 질리지 않는 신선한 만족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를 철학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꿈을 실현하는 데 무려 10년이라는 기나긴 수련기를 보냈다. 보부아르는 작가란 세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자세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제2의 성>은 그녀가 가장 아끼던 저작이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로서 그녀는 "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내가 여성이라는 조건을 써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쓰고 있다.

그녀 자신은 여성의 시대적 한계를 한참 초월하여 살아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전체 여성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자각에 기초하여 이 책을 썼다.

<제2의 성>은 여성이 왜 열등한 성의 입장에 처해졌는지를 역사의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밝혀내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만들어져 온 것임을 해명하려는 의도로 쓰인 책이다. 즉 남과 여의 차이가 자연적이 아니라 문화적 차원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제2의 성>은 첫 번째 부분에서 여자라는 존재가 유아기 때부터 어떻게 만들어져 가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보부아르에 의하면, 여자아이에게 수동성이 장려된 데 반해, 그들의 능동성은 금지당했다. 곧 격렬하게 근육을 사용하기, 위험한 모험에 도전하기, 높은 곳에 오르기, 타인과 경쟁하거나 맞붙어 싸우기라든가 나서거나 참견하기 등이 금지됐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들에는 싸잡아서 '말괄량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자아이의 양육방식 속에, 여성의 인격이 자라는 모든 싹을 막는 요인이 있다.

그러므로 이 능동성을 빼앗긴 여성은 평생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자기동일성을 고집하는 존재가 된다. 타인의 노예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의 본능의 노예로서 여성은 '영원한 어린이'에 머물 기초를 닦는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
시몬느 드 보부아르.

보부아르에 의하면, 여자의 적은 어머니다. 여자아이의 생활습관을 낳은 것은 분명 남성중심 사회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가르침을 여자아이에 대해 행하는 것이 다름 아닌 어머니, 곧 여성이란 점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미국 아동발달연구센터 한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소녀가 지적인 인간이 되려면 어떤 성장 과정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를 "가장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어릴 때 말괄량이여야 하겠지요"라고 했다.

여성은 청년기의 결정적 인생의 기로에서 끝없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자기 결정을 피하고,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떠다닌다. 왜냐하면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가 엉거주춤하기 때문이다.

비록 전력투구를 한다 해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헛일로 끝날 가능성이 남자에 비해 훨씬 많다. 애초부터 승산이 없는 경쟁에 나서느니 보다 유리한 특권을 지닌, 곧 승산이 있는 남성의 비호를 받는 편이 무난하다는 식의 분별이 여성의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여성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대처할 수 있도록 여러 준비를 하게 된다. 유리한 직장이 있으면 그곳으로 옮기고, 유리한 혼처가 있으면 그쪽으로 돌아서는, 요컨대 상황에 따라 자세를 바꾸는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제 2의 성> 두 번째 부분은 이상과 같이 여성으로 만들어진, 성인 여성의 훗날의 삶에 대해 쓰고 있다. 결혼생활의 내용과 모성의 내용을 검토한다.

오랫동안 결혼과 가정만이 여성의 인생으로 여겨져 왔던 것이다. 여성은 자주적 주체로서의 성숙을 이루지 못한 채, 결혼이라는 형태로 부모의 부양에서 남편의 부양 아래로 인계되어 왔다.

결혼이란 본디 남자와 여자라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사람들끼리, 서로의 자유로운 교섭 속에서 인격의 성숙을 이록해 나가려는 목표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자유가 보다 적은 사회에서의 결혼은 그러한 목표로부터 한참 동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결혼이 결정되는 것은 사랑에 의해서가 아니다. 평생 계속되는 남자의 보호를 확보하려면, 개인적인 사랑은 단념해야 한다. 여성은 남성을 대등한 입장에서 사랑할만한 개인으로서의 실력도, 사회인으로서의 실력도 없는 채 결혼이라는 틀 속에 짜여 들어간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어머니가 된 여성은 자녀가 성장한 뒤에도 맹목적으로 복종하기를 바란다. 자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려 하고, 자기 이외의 것으로부터 완전히 떼어놓는다. 버릇을 기른다는 이름 아래 어떤 엄마는 히스테릭하고 변덕스럽게 자녀를 때린다.

어떤 어머니들은 자기 마음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또는 분명하게 자각하지 못하는 적의에서 자신을 벌하기 위해 자식의 노예가 된다. 끝없이 병적인 걱정을 키우고, 자녀가 곁을 떠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녀들은 모든 쾌락과 개인적 생활을 단념한다.

<제2의 성>에서 세 번째로 다루는 것은 여성의 존재를 생물학·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인간뿐 아니라 동물이 출산으로써 종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 자체에는 새로운 가치창조가 있을 수 없다.

인간이란 존재는 생명이라는 가치 위에 계속해서 생명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는 이유'를 택하고, '살아가는 이유'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린다. 인간에게 '살아가는 이유'란 경우에 따라서 목숨보다 중요하다.

이 책은 이제까지 여성에 대해 쓰인 모든 방면의 자료와 기록 그리고 증언을 구사해 역사적·신화적·철학적·사회적·성적 측면을 포함하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여성의 모습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다방면에 걸친 철저한 분석과 예증을 통해 '여자다움'의 가면 뒤에 있는 실체를 밝힌다.

이 책은 발표 직후 말할 수 없는 스캔들을 불러일으켰으나, 책 자체에 담긴 내용이 높이 평가되면서,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새로운 여성해방 운동에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다.

송광택 목사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