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 오토 지길준 집사의 일과는 새벽 3시 기도로 시작된다. 밤사이 추위와 싸웠던 노숙자들의 몸을 따뜻하게 덥힐 식사 준비를 마치면 5시다. 식사 후 뒷 정리를 마치면 오전 7시, 사업장 문을 열 시간이라고 했다.
(Photo : 기독일보) 시온 오토 지길준 집사의 일과는 새벽 3시 기도로 시작된다. 밤사이 추위와 싸웠던 노숙자들의 몸을 따뜻하게 덥힐 식사 준비를 마치면 5시다. 식사 후 뒷 정리를 마치면 오전 7시, 사업장 문을 열 시간이라고 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기계음 속에서 지길준 집사(나성 순복음교회)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처음 만난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악수를 건네며 맞잡은 그의 기름때 묻은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조용한 장소를 찾아 들어간 반평 남짓한 그의 작은 사장실은 정비소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허름한 책상 위에 펼쳐진 족히 10년은 넘어 보이는 그의 낡은 성경책. 환한 햇살에 비춰 그가 읽고 있던 요한복음 1장이 더욱 빛나 보였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그동안 마음속에만 담아 왔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놨다. 교회에 덕이 안될 것 같았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는 성경말씀을 수없이 되뇌었다. 그만큼 교회를 비판하는 일에는 조심을 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꼭 전해야 할 것 같았다는 그의 말속에는 마지막 유언을 내뱉는 듯한 진실함이 담겨있었다. 

그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믿음의 삶과 멀어졌다는 지적이었다. 지길준 집사는 특별히 노숙자를 대하는 교회의 자세를 꼬집어 말했다. 

지길준 집사는 "정말 어렵고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이 교회 문을 열어 달라고 간절히 두드리고 있는데, 교회는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재산을 지키고 늘리는데만 집착하고 있다"며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 시대의 외식적인 종교인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회가 LA의 모든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에요. 교회 앞마다 노숙자 텐트가 많아요. 그들이 왜 거기에 텐트를 쳤겠습니까? 문을 열어달라는 두두림이 아닙니까? 각 교회가 그들만이라도 돌보면 좋겠습니다. 겉모습이 깨끗하고 사람들 눈에 좋게 보이는 이들만 선별해서 교회 문을 열어주지 말고, 예수님처럼 세리와 창기, 더럽고 멸시받던 이들을 향해 교회가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LA 지역 교회가 운영되도록 들어오는 대부분의 헌금과 물질은 LA 지역에서 온 것인데, 대다수의 교회가 모양새 좋은 해외 선교에만 눈을 돌리고, 정작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은 모른 채 하고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할 때는 흡사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자의 목소리와 같았다. 

나이 50이 다 돼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늦깎이' 예수쟁이 지길준 집사는 진리를 찾아 헤매다 예수님 말씀에 두 손 들고 꽉 막혔던 마음의 문을 열었다. 신앙은 늦었지만 하루하루 진리의 말씀에 심취해 교회를 섬기는 데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러다 이제 60을 넘어 70을 바라보면서 기독교 진리는 간직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의 끝자락을 향한 마지막 경주에서 교회 안에만 갇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이웃들이 보였다. 

"노숙자 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정부 정책이 그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정책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이것은 돈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문제로 보이겠지만, 이것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변화되고 새롭게 될 수 있도록 LA에 주신 하나님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곳 저곳에서 LA의 부흥을 소망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려온다. 그 역시 LA 부흥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단서를 붙였다. 부흥은 말로 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갖고 말씀을 실천하는 삶 가운데 일어난다고 했다.

불신의 시대다. 안타깝게도 교회 성도들과 사회에서 존경받고 신뢰받아야 할 교회 지도자들을 향한 불신이 너무 크다. 교회를 향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강단에서 전해지는 설교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데서 오는 괴리감 때문일 것이다. 

설교의 홍수라고 할 만큼 클릭 한 번으로도 언제 어디서나 수많은 명설교를 들을 수 있다. 홍수가 나면 오히려 먹을 물이 없다고 했던가? 오늘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감동적이고 빛나는 명설교가 아니라, 말씀을 실천하는 목회자와 교회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동안 성도들이 설교 강단 위로부터 들려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다면, 이제는 교회 지도자들도 강단 아래에서, 생활의 터전에서 말씀대로 살기로 도전하며 몸부림치는 성도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