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 충성, 그 날의 총성': 김재규(김규평)는 유신 체제를 끝장낸 순교자인가?

이번 주 박욱주 박사님의 영화평론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설 명절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The Man Standing Next)>에 대해 살펴봅니다.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10.26 사태 전 40여일간을 돌아보는 이 영화는 이병헌(김규평), 이성민(박통), 곽도원(박용각), 이희준(곽상천), 김소진(데보라 심) 등의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우민호 감독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이병헌·조승우 주연의 <내부자들>과 흥행에 실패한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에 이어, 이번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편집자 주

10.26 사태를 바탕으로 한 팩션 영화, <남산의 부장들>.
10.26 사태를 바탕으로 한 팩션 영화, <남산의 부장들>.

독재의 빛과 그림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분기점이 된 10.26 사태를 다루고 있다. 10.26 사태는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비서실장 차지철 간의 권력투쟁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던 사건이며, 이를 계기로 유신체제가 종국에 이르게 된다.

이 사건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평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맥을 같이 한다. 그를 골수 친일파 인사이자 폭압적 독재자로 평가하는 측(오늘날 진보 계열 정치관을 가진 이들 대다수)에서는 이 사건이 한국의 참된 민주화를 준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체제에 힘입어 종신토록 장기집권할 뻔했던 사태를 막아준 사건이 바로 10.26 사태였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운 구국의 영웅, 혼란스러운 냉전 체제 가운데서도 국력을 크게 강화한 인물로 평가하는 측(오늘날 보수 계열 정치관을 가진 이들 대다수)에서는 이 사건이 한민족의 경제적-군사적 중흥 의지를 꺾어버린 비극이었다고 믿는다.

아직 민주정치를 온전히 수용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그만한 지도자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 이들의 평가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전반적으로 전자, 즉 박정희 전 대통령을 권력욕에 사로잡힌 폭압적 독재자로 보는 시선을 유지한다.

이에 따라 영화는 10.26 사태의 진정한 원인으로 보이는 두 2인자의 권력 다툼보다, 부마 민주항쟁(1979)을 비극으로 끌고 갈 뻔했던 독재자의 정치적 오판을 막아낸, 고뇌에 찬 '영웅'의 심경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 행각에 앞장선 인물이었다는 것, 종신 장기집권을 법제화한 독재자였다는 것, 그리고 말년으로 갈수록 집권 초기 보였던 정치적 혜안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갖고 있던 일본 내 정치적 인맥은 한국이 경제 중흥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 또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시 대부분의 제3세계 후진국 지도자들이 확고한 경제-군사 선진화의 비전을 실천하는 것보다, 일족의 권력과 재산을 늘리는 데만 치중했다는 점을 유념한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내 기업들과 함께 일으킨 중화학공업 발전의 드라이브는 세계에서 유사한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커다란 업적이었음에 틀림없다.

<남산의 부장들> 속 대통령 박정희, 얽히고 꼬인 국내 정치 문제로 고심하는 모습이다.
 <남산의 부장들> 속 대통령 박정희, 얽히고 꼬인 국내 정치 문제로 고심하는 모습이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경제학자들이 한국의 1960-1980년대 고도성장기를 분석할 때, 가장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혹한' 개발독재 정책이다. 이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공과 과에 대한 시각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는 인물인 것이다.

정치체제와 기독교: 공의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정치

민주정치가 그 기반을 확고히 다져가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독재'란 그 이름마저도 미워해야 할 절대악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남산의 부장들>이 김재규를 모티브 삼은 주인공 김규평(이병헌 분)을 유신체제를 끝낸 순교자로 그려내고 있는 것도,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확실히 독재정치는 궁극적으로 부패, 폭거, 그리고 비극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재정 혹은 과두적 귀족정의 윤리적 한계를 타파하고자, 18세기 미국과 유럽에서는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볼테르, 루소, 제퍼슨, 프랭클린 등 계몽주의 정치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과 윤리적 자결권에 대한 신념을 기반으로 민주정으로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렇지만 민주정치도 나름의 한계를 갖는다. 무엇보다 선동에 쉽게 휘말려, 중우(衆愚) 정치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

대표적인 예로 1932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azi)이 주요 집권세력으로 떠오른 방식은, 민주적 선거를 이용한 '선동'이었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민주정이 갖는 문제는 그 기초사상을 마련한 인물 대다수가 반기독교 성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 건국의 국부들(the Founding Fathers) 가운데 하나인 제퍼슨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바 있다. "기독교의 신은 잔인하고 복수심 많고 변덕스럽고 불공평한, 끔찍한 성격을 지닌 존재다."

2인자 권력투쟁의 두 라이벌, 차지철(작중 곽상천)과 김재규(작중 김규평).
 2인자 권력투쟁의 두 라이벌, 차지철(작중 곽상천)과 김재규(작중 김규평).

그가 이 같은 말을 남긴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정치적으로는 기독교가 기본적으로 공화정이나 민주정이 아닌 왕정을 지지한다는 데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제퍼슨의 눈으로 보기에 왕정을 지지하는 기독교는 인류 정치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하나의 커다란 장애물로 비쳐졌을 것이다.

물론 당시 계몽주의 정치사상가들 대부분이 수용했던 제퍼슨 식의 반기독교적 정치관은 하나의 심각한 오해를 안고 있다.

기독교에서 지지하는 왕정이란 사람을 왕으로 삼는 독재정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왕이 되시는 공의에 기반을 둔 정치를 말하기 때문이다. 제퍼슨이 비판한 기독교의 독재정치적 성향은 16-17세기 유럽 절대왕정 시절 성행했던 왕권신수설(Divine right of kings)의 독재적 성향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성경은 인간에 의해 주도되는 정치체제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왕정이라 해도, 인간이 왕이 되는 정치는 질타하는 것이 성경의 입장(삼상 8:1-22)이다.

하물며 인간 스스로의 이성적-윤리적 능력을 크게 신뢰하는 공화정이나 민주정 역시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탁월한 정치체제가 될 수 없다.

다만 기독교계가 전반적으로 민주정을 옹호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민주정이 인간의 신앙의 자유를 가장 많이 보장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즉 기독교적 관점으로는 정치 지도자가 독재를 하든 민주정을 옹호하든 간에, 기본적으로 공의를 따르려 하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 어떤 정치체제가 들어서든 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고뇌하는 김재규, 액자의 ‘대의멸친(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한다)’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김재규를 민주주의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영웅적 인물로 그리는 영화의 진보정치적, 사회주의적 시각을 대변한다.
고뇌하는 김재규, 액자의 ‘대의멸친(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한다)’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김재규를 민주주의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영웅적 인물로 그리는 영화의 진보정치적, 사회주의적 시각을 대변한다.

다만 영국의 역사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액턴 남작이 지적한 것처럼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공산 독재의 경우는 기독교를 박해하고 신앙의 자유를 말살한다는 점 때문에 차선책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선호할 뿐, 기독교인들이 민주정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정 역시 기독교적 가치와 윤리에 적대적인 요소들을 다분하게 담고 있기에, 때로 기독교인 입장에서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요즘처럼 진보,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소위 '민주정' 때문에 교회와 신앙인들이 여러 모로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보이는 다분히 편향된 시각, 즉 민주정을 절대선으로 보고 독재를 절대악으로 평가하는 시각에는 쉬이 동조하기 어렵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