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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본철 칼럼] 발성을 통한 성령의 나타남의 차원: 방언 통역

기독일보

입력 Jan 17, 2020 10:17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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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본철 교수의 성령론(79)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방언 통역이란 우리가 외국어를 배워서 하는 그런 통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휘의 뜻을 알아내거나 말의 해석을 통해서 통역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감을 통해 전달되는 초이성적인 은사이다. 방언들 통역함은 소리로써 표현된 성령의 메시지인 방언이 마음에도 열매 맺도록, 즉 현재의식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해석되는 성령의 나타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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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14:5)

방언 통역은 방언하는 자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방언하는 자에게 따라서 나타날 수 있는 성령의 은사이다. 교회의 덕을 세운다는 말은 내가 말하는 성령의 은사가 나에게서만 그치지 않고 교회 공동체에 유익을 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14:3)

방언하는 자가 통역하기를 위해 기도할 이유는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통역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통역을 하기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14:14)

방언의 기도는 우리의 영의 기도이지만 통역을 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도 그 뜻이 깨달아지므로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열매가 주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14:15)

현실적으로 방언 통역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기도하거나 찬송할 때 방언에 대한 감동이 일 때는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라. 그러면 우리의 영으로 기도하며 찬송하게 된다. 그리고 마음에 기도와 찬송의 감동이 생길 때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라.

이런 마음의 기도와 찬송은 당연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의 기도와 마음의 기도를 번갈아 가면서 하다 보면, 전에는 마음에 아무런 의미가 깨달아지지 않던 방언의 기도를 할 때 동시에 마음에 깨달음이 주어지게 되곤 한다. 물론 찬송도 마찬가지이다. 이럴 때 그 감동이 우리의 발성 기관을 통해 표현될 때 그것을 방언 통역이라 한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14:26)

이 말씀은 모여서 예배하거나 기도할 때 덕을 세우기 위해 질서를 잘 따라 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내게 감동이 생겼다고 해서 나의 발성 기관을 통해 사람들 앞에 방언하고 통역한다면 교회의 질서가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아무 때나 함부로 방언을 말하는 것은 교회에 별 유익이 없다.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이 볼 때 "미쳤다"(고전 12:23) 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예배 가운데 방언 통역의 은사는 설교자를 통해 나타나곤 한다. 기도회라고 하면 기도회 인도자에게 영적인 질서의 비중이 실리곤 한다. 물론 기도회에 따라서 이런 은사들이 여러 사람들에게서 표현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령의 발성의 나타남인 방언, 방언 통역 그리고 예언은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질서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아니면 모임이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말함으로 어지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설교를 위해 준비하는 동안 방언으로 기도할 때 통역이 주어지면, 그는 방언 통역을 통해 주어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잘 기억하거나 메모하여 설교문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14:27)

모임 가운데서 누군가가 성령의 감동으로 방언을 말하게 되면 옆 사람들은 잠시 기다렸다가 그 사람의 방언이 끝나고 난 후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 방언을 말하는 것이 교회의 영적 질서에 맞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통역의 감동이 있으면 통역하면 된다.

그리고 방언이 길다고 해서 반드시 통역도 길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방언이 짧게 나왔다고 해서 통역도 반드시 짧은 것은 아니다. 방언의 어구나 음절 그리고 단어의 뜻을 해석해서 통역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방언의 표현이 길든 짧든 그것에 관계없이, 통역은 자기나 또는 남이 방언하는 동안 나름대로 자기 마음에 깨달음을 주시는 성령의 감동을 입으로 표현한 것이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14:28)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예배 때나 기도회 가운데 말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교회당에서는 절대 방언하지 말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교회당에서도 자기와 하나님께 말하기 위해 방언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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