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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 “요즘 목회자들의 설교가 약한 2가지 이유…”

기독일보

입력 Jan 13, 2020 02:40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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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북뉴스 서평] 심은 대로 거둔다

서론

설교자로서 설교에 대한 책을 일년에 한 권 이상은 꼭 본다. 나의 부르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고, 강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롭게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Photo : 기독일보)

새해를 시작하면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존 스토트의 ‘설교’를 펼쳐 읽었다. 역시 설교자의 영광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지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스토트가 강조하는 성경과 현실 사이를 다리 놓으려는 그의 균형감이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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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자들의 설교관과는 다른 그만의 특징과 장점이 있다. 스토트는 세상의 문제와 아픔과 현대인의 고민을 지나치지 않고 성경적 대안을 제시한다.

설교는 선포이기도 하지만 가르침이기에, 성경적인 생각과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어쩌면 스토트와 로이드 존스가 갈라지게 된 결정적 원인은 세상을 포용하고 함께 가려는 그의 넓은 마음과, 그럼에도 복음에 더 집중하려는 로이드 존스의 마음과는 방향이 달랐던 것 같다.

스토트는 ‘성경과 세상 사이 다리놓기’를 강조하지만, 설교자의 연구와 임무를 그에 못지 않게 강조한다. 설교자는 말씀을 맡은 자이기에, 먼저 연구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선포할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다.

준비 안 된 설교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고 성도를 업신여기는 것이며, 강단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즉흥적 설교란 있을 수 없다. 충분히 준비되고 갖추어진 자만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전할 메시지를 받아야 한다

과연 교회는 설교를 신뢰하는가? 설교가 약해지고 미미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대는 설교를 연설과 선동과 강연 정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설교의 영광과 능력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 같다.

모든 권위를 부정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강단에서의 설교의 권위 또한 깎아내리고 인간 수준의 말로 생각한다. 교회가 욕을 먹고 수치를 당하는 사회 속에서, 교회의 설교는 더 이상 하늘의 음성으로 여겨지기보다 거짓말처럼 들린다.

이런 배경 속에서 본다면, 필자가 볼 때 스토트가 제일 강조하는 것은 설교자의 연구이다. 설교자는 말씀을 대신 받아 전달하는 전령이고 청지기이며 확성기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가득해야 하고, 하나님이 이 시대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전할 말씀을 먼저 받아야 한다. 설교가 힘이 없는 것은, 전할 메시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설교자에게 자신의 교회와 양들을 위해 분명히 메시지를 주신다. 그러나 그것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강단에 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선포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냥 여러 자료를 참고하고, 좋은 자료를 기억해 두었다가 추가하는 것으로는 설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메시지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한다는 권위를 가지고 선포해야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여기고 선포를 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냥 순서가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올라서서, 벌거벗은 채 힘없이 내려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나님은 분명히 자신의 양들을 위하 양식을 준비하셨지만, 그것을 제대로 받지 못한 설교자의 잘못이 크다. 오늘 우리는 내가 전하기 전에 하나님이 전하게 하시려는 말씀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강단은 바로 그 말씀을 대신 전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본문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또 하나는 본문을 연구하고 깊이 체험하고 변화된 흔적 없이 설교하기 때문에 설교가 약한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기록된 계시를 가지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그래서 설교자는 성경과 세상과의 가교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그러니 설교자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본문 연구, 설교 작성과 준비를 위해 얼마나 시간을 들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나를 죽이고 변화시킨 설교가 능력이 있고 생명이 있는 법인데, 그런 준비도 없고 변화도 없다면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다.

한 편의 설교 준비는 은혜롭고 기쁘고 즐거운 것이다. 그러나 바쁜 일정과 비본질적 교회 사역으로 인해 이것을 놓치고 있다면, 교회의 방향과 사역은 재조정되어야 한다.

깊이 있는 말씀 연구와 나를 찔러 쪼개는 변화 없이 강단에 서고 있다면, 많은 일을 멈추고 다시 사역과 설교를 점검해야 한다. 여러 사역을 하고 바쁘게 움직이다가, 어쩌다 한 번 은혜주시는 것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말씀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모든 사역의 원리는 성경 중심인데, 설교를 통해 회심과 변화와 회복이 일어나지 않고 형식적인 시스템으로만 움직이고 있다면 교회는 무능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교회는 교회의 방향과 운영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고, 은혜로운 설교가 선포될 수 있도록 모든 배려와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될 것이다.

설교자 또한 먼저 말씀을 통과하고 체험한 흔적이 있어야 한다. 강단에 서기 전에 충분히 준비한 시간과 감격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종이 될 것이다.
배우고 연구하지 않는 설교자는 가르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서재에서 눈물을 뿌린 만큼, 강단에서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있다. 우리에게는 설교를 한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설교할 수 있는 말씀과 체험이 준비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설교를 신뢰하는가?

이 책의 원 제목은 ‘나는 설교를 믿습니다(The Challenge of Preaching)’이다. 오늘날 설교를 믿는 성도는 얼마나 될까? 목회자마저 설교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교회에는 재앙이 아닐까….

물론 사람이 다른 것으로 감동받고 변화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령의 변화와 영혼의 거듭남과 회심은,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의 역사로 나타나는 것이다. 복음의 능력은 설교를 통해 극대화되고 실현되어 하나님의 영광으로 올려진다.

스토트는 설교의 능력과 역할을 확신했다. 물론 설교가 물건처럼 소비되고 우상처럼 여겨지는 현상은 거부하고 조심해야 한다.

교회가 설교 지상주의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설교자의 인기로 교회가 모여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설교를 믿지 못하고 설교가 거짓말처럼 들리며 무능하게 내리막길로 치닫는 시대이므로, 설교는 회복돼야 할 것이다.

‘설교는 사람의 말인가 하나님의 말인가?’라는 질문에, 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성경에는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지 깊이 상고하면서, 주님의 말씀으로 받은 교회들이 있다.

설교는 초대교회부터 교회를 세우고 풍성하게 하는 주님의 도구였다. 그렇다면 설교는 사람의 말이라고 수치를 당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고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여전히 설교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길 소망한다.

방영민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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