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싫었던 '공부'의 잔소리, 지금은 듣기 싫도록 한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하신 말 중 가장 듣기 힘든 말이 있었다. "공부하라"다. 이 말로부터 졸업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뒤도 아니었다. 스스로 독서하기 시작한 뒤였다.

부모님 마음에 들게끔 공부를 하지 못하다 보니, 중학교 3년 동안 밤마다 아버지의 지나친 관심(?)을 받았다. 아버지께서 밤 10시까지 함께 필자의 방에 계셨다.

그때 필자는 책장을 넘기고 있었지만, 머릿속에 책의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감시받는 아들이라는 불만과 탈출구를 생각해내는 잡생각만 가득했다. 어려서 그랬는지, 아버지의 행동을 '사랑'이 아니라 '감시'로 받아들였다.

그때는 대학만 졸업하면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신학교에 입학하자, 또 다시 입시 지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공부를 해야 했다.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면, 더 이상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이는 착각이었다. 필자의 설교를 들은 뒤, 아내의 '공부하라'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그때도 아내의 잔소리를 '사랑의 잔소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자의 목회에 대한 참견으로 받아들였다. 아내의 잔소리는 공부 대신 영적 활동에 몰입하게 했다. 틈만 나면 성경 읽기와 기도, 그리고 심방 등에 전념했다.

아내의 공부에 대한 잔소리는 끝날 줄 몰랐다. 듣기 싫은 말을 또 들어야 하니 무척 괴로웠다. 결국 두 손과 두 발 다 들고,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게 된 진짜 이유는 저의 목회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교인들이 설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을 이제 아트설교연구원 회원 설교자들에게 한다.

'자신의 지적 능력을 성장시키십시오.' '설교자는 공부와 함께 해야 합니다.' '설교를 잘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독서광들입니다.' 하지만 소수만 공부를 하며 목회를 한다.

공부, 가장 힘든 일 중 하나

필자를 비롯한 설교자들이 왜 공부를 하지 않는가? 공부는 가장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공부는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결과가 더디게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설교가 목회에 전부는 아니지 않나?"

그 말은, 공부가 목회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아주 적다는 말이다. 설교가 목회의 전부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청중에게는 설교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기도 한다.

청중들을 만나면 매 번 듣는 말이 있다. "은혜가 넘치는 설교를 듣고 싶다." "말이 되는 설교였으면 좋겠다."

출석 교회 설교자의 설교에 만족하지 못하니, 청중들은 시간만 나면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 방송을 틀어놓고 듣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은혜가 되는 말씀을 들어야, 세상을 힘 있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어떤 분의 차를 탔더니 한 유명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물어보니 은혜가 되는 설교를 듣지 않으면, 영적 갈증으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이런 말을 하면, 설교자들은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마음밭' 상태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이 말도 맞다. 그렇다고 설교자가 설교를 잘 전해야 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청중들은 설교에 목을 매다시피 한다. 작금의 상황이 이러니, 설교자들은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설교자는 교회 지도자이므로, 마땅히 공부해야 한다. 문제는 설교자들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공부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어떤 설교자들은 극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공부를 많이 하면, 목회는 언제 하느냐고.

목회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목회를 하면서 공부하라는 것이다. 필자는 설교자에게 '공부만' 하라고 하지 않는다. '공부를' 하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 공부를 안 해도, 너무 안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하나다. 공부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맛있는 밥 먹고, 좋은 사람들과 카페에서 대화하고,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혼자 청승맞게(?) 공부하는 것은 어렵다. 싫다.

공부하기 어려울지라도, 해야 한다. 성경을 알려면, 역시 공부해야 한다. 성경을 딱 맞게 설명하려 해도 공부해야 한다. 새벽 예배 설교를 하려면 공부해야 한다. 주일 예배 설교를 하려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세상의 리더들은 공부하는데...

세상의 리더들은 어떤가? 공부와 평생 함께한다. 세상과 교회에서 유명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공부하지 않고 리더가 된 사람이 없다.

소크라테스, 어거스틴, 칼빈, 루터,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세종 대왕, 율곡 이이, 마틴 로이드 존스, 찰스 스펄전, 유진 피터슨, 옥한흠, 팀 켈러 등은 평생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들에게 백성들을 위해 공부하자고 했다.

이지성 작가는 "부자들은 인문학 공부를 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설교를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은 인문학과 신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야 한다.

오늘도 아트설교연구원 한 회원의 전화를 받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에 치중하면, 설교자가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덜 하게 된다. 하지 않아도 되는 행동보다, 해야 될 행동을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설교자는 어떤가?

설교자들은 어떤가? 필자가 10년간 설교자들을 가르친 경험으로 볼 때, 많은 설교자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아도 목회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나라 목회 문화와 설교자들의 그러한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목회가 행정, 심방, 정치, 관계 등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회'만으로도, 너무 바쁘다. 그러니 공부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공부하는 설교자들은 우선순위를 공부로 둔다.

설교자가 공부하지 않으면, 교인들도 잘 안다. 주위에서 '우리 교회 담임목사는 공부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를 종종 듣는다.

공부하지 않아도, 어차피 하루 24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나 공부하면, 자신의 목회에 있어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목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

책 《완벽한 공부법》에서, 공저자 공영성과 신영준은 공부에 대해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 "공부는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그들은 덧붙여서 말한다. "돈은 나누면 반이 된다. 공부는 나누면 2배가 된다. 돈에는 로또가 있지만 지식에는 로또가 없다."

제임스 클리어 그의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습관은 복리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저는 공부도 복리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공부가 가져다주는 힘은 엄청나다.

필자가 회원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설교자들이 공부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대박을 칠 수 있다."

아마 이 말이 듣기 불편한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만큼 공부가 주는 효과가 크고, 많은 설교자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설교자라면 공부해야 한다. 공부는 설교자를 엄청나게 성장시킨다. 설교를 탁월하게 하도록 만들어준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그의 책 《트렌드코리아 2020》에서, 2020년 트렌드 중 하나를 '특화생존'이라고 말한다. 즉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면, 특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젠 보편적으로 괜찮은 것보다, 선택된 소수에게 확실한 만족을 줄 수 있도록 특화시켜야 하는 시대다.

목회 현장도 마찬가지다.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설교에 있어 특화돼야 한다. 즉 특출난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의 시인·극작가·정치가·과학자.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중요한 일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공부가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설교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설교로 증명해 보이는 사람이다.

목회의 다른 영역도 중요하다. 하지만 설교자에게 설교를 성장시키는 공부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설교자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자신이 설교를 잘 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로서 날마다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자에게 공부는 중요하다. 그러므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침해당하도록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특출난 설교가로서 목회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회, 자신이 만족하는 목회를 할 수 있는 문을 열게 된다.

▲김도인 목사.  ▲김도인 목사.

김도인 목사/ 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