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폴로 | 채희순 역 | 동서문화사 | 488쪽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세상 바라보는 눈도 달라진다
아시아인들에게 평범한 일상,
서양인에게는 독특한 삶 모습

서 있는 곳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 금강산도 산 아래에서 보는 풍경과, 산허리에서 보는 풍경, 정상인 비로봉에서 보는 풍경이 다르다.

삶도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코넬 대학교에서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사와 교직원을 대상으로 질문을 했다. 아동들이 겪을 수 있는 위험 요소가 5년 전에 비하여 늘어났는지 줄어들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 후 응답자들에게 신상 정보를 물었다. 신상정보를 묻는 질문에는 첫 아이가 태어난 년도도 있었다.

최근 5년 사이에 아이를 낳은 응답자와 그렇지 않은 응답자의 대답은 차이가 있었다. 5년 안에 부모가 된 사람들은 아이가 없는 이들보다 훨씬 더 세상이 위험해졌다고 대답했다.

부모가 되면 위험요소가 더 잘 보인다. 부모의 입장에 서서 보는 세상은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 점에 대해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오스틴은 이렇게 지적한다.

"부모가 되고 나면 영화, 케이블 TV, 음악 그리고 자녀가 없는 친구들의 대화 중에 등장하는 비속어에 민감해진다." 내가 서 있는 곳에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진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중세 시대를 사는 서양인이 본 동양이다. 그가 본 아시아는 놀라움이고 새로움이었다. 아시아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서양인에게는 독특한 삶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는 중국에 있는 불교 사원을 보고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상 숭배자들의 사원은 아주 많았고, 거기에는 여느 때처럼 수많은 우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들 우상 중에는 10페이스(15미터)나 되는 거대한 것이 있고, 그 우상들의 소재도 나무나 점토, 암석등 다양하며, 도금되어 세공도 뛰어나다. 거상은 대개 옆으로 누운 자세를 취하고 그 주위에는 공손하게 이를 모시고 있는 다시의 작은 상이 둘러싸고 있다."

중세 기독교인의 관점에 서서 본 불교 사원은 우상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또한 불상의 규모에 대해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26년간 아시아 여행한 기록
당시 더 넓은 세상 대한 호기심 가진
지식인들, <동방견문록> 필수 독서

<동방견문록>은 1270년부터 1295년까지 26년간 아시아를 여행한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마르코 폴로는 15세인 1270년 아버지 니콜로 폴로와 큰 아버지 마페오 폴로를 따라 아시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후 원나라의 황제 쿠발라이 칸의 눈에 들어 중국 원나라의 관리가 되었고, 황제의 명으로 아시아 곳곳을 다니게 되었다. 이후 1295년에 고향인 베네치아로 다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공화국과 제노아공화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 지휘관으로 참전하였다가 포로로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된다.

약 3년간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그곳에서 소설가 루스티첼로(Rustichello)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기록하도록 했다. 이것이 <동방견문록>이다.

원래 제목은 《Divisament dou Monde》로, '세계의 서술' 혹은 '세계에 대한 기록'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 책은 이후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는 <동방견문록>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의 번역 제목을 따라 <동방견문록>으로 알려 지게 되었다(이하 동방견문록으로 지칭).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중세 유럽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책이다. 지금 읽으면 1200년대의 중국과 중동 아시아 지역에 대한 단순한 소개를 나열한 불과한 책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세 지식인들에게는 단순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장거리 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동방견문록>은 아시아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얼마 없는 자료다.

따라서 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들이라면 누구나 <동방견문록>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하면 중세 지식인들의 서재에는 <동방견문록>이 한 권씩은 다 꽂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중세 시대의 베스트셀러였다.

서장: 여행 떠나게 된 이유 기록
1-2장: 중앙아시아 횡단 중 기록
3장: 쿠빌라이 칸과의 대화 기록
4장: 중국 북부와 베이징 등 기록
5장: 중국 남부와 토속종교 기록
6장: 귀환과 인도양에 대한 기록
7장: 중앙아, 러시아, 북극 기록

<동방견문록>의 내용은 서장을 포함해 총 여덟 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 서장은 마르코 폴로가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가 적혀 있다.

마르코 폴로의 아버지, '니콜로 폴로'는 상인이었다. 베네치아에 살던 니콜로 폴로는 형 마페오 폴로와 함께 물건을 팔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로 갔다.

그곳에서 더 동쪽으로 이동한 폴로 형제는 당시 몽골을 다스리던 '쿠발라이 칸'을 만나게 된다. 쿠발라이 칸은 두 형제에게 유럽의 여러 사정에 대해 꼼꼼히 질문하며 호기심을 보였다. 그리고 두 형제를 다시 사신의 자격으로 교황에게 보내어 우호적인 관계를 쌓고자 한다.

그래서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온 두 형제는 15살이던 마르코 폴로를 데리고 교황을 만난 후 마르코 폴로와 함께 쿠발라이 칸에게로 돌아간다. 서장에는 이런 내용이 요약되어 있다.

나머지 일곱 장은 세계 여러 지역에 대한 설명이다. 1장과 2장은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면서 만난 도시에 대한 설명이 있다. 아르메니아와 투르크메니아에서 시작하여 이라크와 페르시아 지방에 있는 도시에 대한 설명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미르를 넘어 중앙아시아를 지나면서 만난 도시의 이야기다.

3장은 당시 원나라 황제인 쿠빌라이 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전쟁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었지만, 정치적 이유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드라마 ‘마르코 폴로’.
넷플릭스가 제작한 드라마 ‘마르코 폴로’.

4장에서는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에 있는 동안 경험했던, '카타이'라고 불리던 중국의 북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서는 수도인 베이징에 대한 소개와 황제의 궁전에 대한 소개가 자세히 나와 있다.

 

5장은 중국 남쪽을 여행하며 만난 도시들을 소개한다. 여기에서는 그곳에서 만난 사원에 대한 기록이 많고, 중국에서 믿고 있는 토속 종교와 불교, 우상에 대한 기록을 특히 많이 하고 있다.

6장은 폴로 일가가 중국을 떠나 귀환하는 길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는 인도양 각지에 관한 사정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제7장은 중앙아시아 대초원을 중심으로 러시아와 북극 지방까지 설명하고 있다.

각 도시 설명하며 종교에 대해 소개
기독교인으로, 이슬람 부정적 설명
무슬림, 우리에게 사랑해야 할 대상

<동방견문록>의 큰 특징은 종교다. 각 도시를 설명할 때, 종교에 대한 소개가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마호메트를 신앙하는 아라비아 인이며 나머지는 그리스도의 교법을 좇는 다른 민족이다(모술 왕국에 대한 소개 중)."

"사마르칸은 번화한 대도시로 주민은 그리스도인과, 이슬람교도로 되어 있다(대도시 사마르칸에 대한 소개 중)."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시대에는 무엇보다 사람들의 종교가 큰 관심사이다. 그래서 동방견문록에서 종교에 대한 소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 중에 이슬람교도에 대한 설명은 다분히 공격적이고 편파적이다. 이슬람교도에 대한 설명을 할 때는 어느 도시나 예외 없이 부정적이고, 난폭한 이들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동방견문록이 쓰여진 1200년대는 십자군 원정이 끝난 이후다. 이슬람교도에 대한 증오심과 적대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슬람교도들은 모두 악한 사람으로 보이고, 또, 악한 사람이어야 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연장이 '망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문제를 '못'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중세 유럽인들은 '기독교 신앙' 대신 '기독교 종교'라는 망치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기독교'가 아니면 모두 '적'으로 보았다. 신앙이 사라진 중세 기독교의 눈에는 '이슬람'을 자신들이 적대하고 무찔러야 할 대상으로만 본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이 있는 기독교 신앙은 이슬람교인들을 싸워야 할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할 전도할 사람으로 본다. 그래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이슬람 국가로 들어간다.

기독교가 하나의 종교로 전락하면 '이슬람교도, 불교도, 힌두교도'등 다양한 종파와 대립하게 된다. 다른 종교인들을 대립하고 경쟁하며, 이겨야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으로 보면, '이슬람교도'도 없고, '불교도'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복음이 필요한 전도대상자들이 있을 뿐이다.

기독교, 종교와 신앙의 차이 주목
교리만 남아버린 중세 기독교 단면
영적 전쟁 이어가되, 영혼 사랑해야

최근 김진욱 선교사님의 안타까운 순교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은 터키 선교를 포기하지 않는다. 영적 전쟁은 이어가되, 영혼들을 사랑하기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로 전락한 중세 기독교와 신앙으로써의 기독교의 차이다.

<동방견문록>에서 드러나 이슬람교에 대한 적대심은 십자가 사랑 대신 십자가 교리만 남아버린 중세 기독교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동방견문록>을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마르코 밀리오네'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백만의 마르코'라는 뜻이다. 서장 머리글에서도 이 명칭을 언급하고 있다.

"현명하고 존경할 만한 베네치아 시민이요, '밀리오네'라 불렸던 마르코 폴로가 직접 본 바를 그가 말한 대로 기술 한 것이다."

마르코 폴로를 '마르코 밀리오네'라 불렀던 이유는 그의 막대한 재산도 한 몫을 했지만, 실제로 '허풍쟁이 마르코'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베네치아로 돌아간 마르코는 중국에 대한 설명을 할 때 마다 "백만"을 강조했다. 그만큼 크고 웅장하고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국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마르코가 말한 "백만"이 허풍으로만 들렸다. 그래서 그를 "과장이 심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마르코 미리오네"라고 부른 것이다. 이는 마르코 폴로의 '유언'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평소에 마르코 폴로의 과장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친구들과 가족들은 죽음을 앞둔 마르코 폴로에게 '죽음을 앞둔 지금, 이제껏 거짓말을 했던 것을 고백하라'고 말했다. 그때 마르코 폴로는 마지막 유언처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본 것의 절반도 말하지 않았다.'

마르코 폴로 당시에도 그렇고, 후대의 학자들도 <동방견문록>을 마르코 폴로가 직접 본 것을 기록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설명하는 중에 과장이나 어느 정도 지어낸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러나 <동방견문록> 안에는 직접 보지 못했다면 알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의 말을 다 믿지 못했다. 이는 자신들의 생각을 넘어선 일이자, 자신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넘어선 일들은 믿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은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믿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

어쩌면 마르코 폴로의 말처럼, <동방견문록>에 '기록된 중국'은 '자신이 본 중국'의 절반도 안 될 것이다. 본인이 경험한 것은 더 놀랍고, 더 대단한 것인데, 다 표현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코 폴로가 보고 온 중국은 변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밀리오네 마르코'라고 놀려도, 중국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는다. '사실'은 사람들이 이해해주지 않아도 '사실'이다.

진리도 그렇다. 사람들이 이해해주지 않아도 '진리'다. '진리'는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세상은 성도의 '신앙'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래도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들이 십자가를 외면해도, 십자가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것이 변함없는 진리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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