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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자와 탕자… 너희들이 내 마음을 어찌 알겠느냐?

기독일보

입력 Nov 19, 2019 09:20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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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누가복음 15장을 요약해 보면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 등의 주제는 죄인을 찾으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그 일이 성공했을 때의 기쁨입니다. 죄인 된 아담을 먼저 찾으시고(창 3:9), 끊임없이 반역을 일삼아 온 이스라엘을 보듬고 어루만져 주시며 끝까지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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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많은 비유 중에서 가장 위대한 비유는 바로 탕자의 비유라고 말씀드려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사랑하셔서 끝까지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많은 비유 중에서 가장 감동적입니다.

죄인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좀 더 사실적으로 잘 나타내주는 인상 깊은 말씀입니다.

불만을 가득 품은 큰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말합니다. "아버지가 이르시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누가복음 15장 31-32절)".

이 비유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은 둘째 아들의 입장에 서서, 우리 자신의 판단으로 알아들으려 합니다. 우리 역시 둘째 아들처럼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고자 하는 사람은 둘째 아들이 아니라, 첫째 아들에 대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시작 부분을 보면, 죄인들을 가까이 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투덜거리는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혹 '나 자신이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함께 가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는 투덜거리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첫째 아들에 대해 서운해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동생을 다시 찾은 아버지의 기쁨을 이해하기보다, 장남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한 자신을 위해서는 잔치를 한 번도 배설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불만, 화를 표출했던 첫째 아들입니다. 그러한 인생이 아마 우리 인간들의 전형적인 모습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첫째 아들은 그동안 아버지와 함께했던 순간순간들이 즐겁거나 행복했다기보다 의무감과 힘든 노동으로 여겼으며, 아버지의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잔치를 벌이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첫째 아들은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동생이 밉고, 그런 동생을 위해 큰 잔치를 마련해 주신 아버지가 원망스러우며, 이 집안의 장남인 자신에게는 안중에도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무척 실망했습니다. 혹 자신의 지위가 동생에게로 넘어가지 않을까 내심 불안도 느끼면서, 동생에 대한 미움이 크게 마음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은 나름의 고통과 험난한 고생으로 말미암아 참된 행복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타국으로 갈 때 가져갔던 모든 것을 탕진해, 지치고 허기진 배를 부여잡으며 과거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을 그리워하며 현실의 불행을 인정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떠나 있었기에, 고달프고 불행한 자신의 모습이 비로소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셨는지, 자신은 그런 아버지에게 얼마나 실망을 안겼는지, 그리고 자신을 위해 걱정하고 기다리실 아버지의 마음을 읽게 됐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용서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우리 인간들은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후 통곡하면서 효도를 다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곤 합니다. 지금도 살아만 계신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효도를 다하겠다며,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막심한 후회를 합니다.

하지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무한하신 분이므로, 언제나 우리가 아버지에게 효도하기를 기다리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전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만이 아버지께 드리는 참 효도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언제까지 기다려 주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노아의 홍수를 통해,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알려주고 계심을 하루 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천군 나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하나님 품으로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 다음 심판대에서는 어느 누구의 변호도 변명도 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면서도, 정작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동생을 못마땅해 하는 첫째 아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요. 아니면 동생이 더 뼈저리게 고생하지 않고 너무 일찍 돌아왔다며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요.

회개하고 돌아온 동생에 대해 기뻐하는 아버지의 마음보다, 돌아온 동생으로 말미암아 흔들릴 수 있는 내 지위를 더 걱정하는 옹졸한 우리 모습은 아닌지, 자신을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나 낮은 자에게 차별적으로 대우를 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리고 힘 있는 지도자들의 권력의 힘으로 형제들을 괴롭히지는 않은지요. 교회 안에서 끼리끼리 뭉쳐 왕따를 시키거나 괴롭히지는 않는지요.

교회는 서로 살피며 미소 담긴 포용으로 보듬고 사랑해주는, 형제자매들의 예배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일러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나 신앙생활을 전제로 한, 형제애보다 재물과 세속적 친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첫째 아들과 같은 신앙인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 역시 어떤 환경과 여건이 나를 괴롭히더라도 참아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돌아온 동생은 아버지의 재산을 축내고, 바쁜 일손도 거들지 않은 채 타국에 가서 모든 것을 잃고 돌아왔습니다. 그 동생이 참으로 괘씸하고 미웠을 큰 아들의 마음은 세속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형이든 동생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을 굳게 사랑하시는 마음이심을 끝까지 믿고 신뢰하며 기다리는 지혜의 신앙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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