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월트 디즈니의 2019년 야심작 <겨울왕국 2>가 11월 21일 개봉합니다. 2014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겨울왕국>을 연출한 크리스 벅 감독에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를 맡았던 제니퍼 리 감독이 합류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성육신하신 아기 예수의 겸손한 탄생'이라는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를 찾기 어려워지는 가운데, 올해 겨울은 그 '촛대(?)'가 아예 '안나와 엘사' 자매에게로 넘어갈지 우려를 사고 있습니다.

개봉 5일을 앞두고 예매율 70%를 돌파한 <겨울왕국 2> 작품 속에는 크리스틴 벨(안나), 이디나 멘젤(엘사), 조시 게드(올라프), 조나단 그로프(크리스토프), 스털링 K. 브라운(마티아스), 제이슨 리터(라이더), 레이첼 매튜스(허니마렌), 마샤 플림튼(옐라나) 등의 배우들이 목소리를 맡았습니다.

알려진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의문의 목소리가 엘사를 부르고, 평화로운 아렌델 왕국을 위협합니다. 트롤은 모든 것이 과거에서 시작됐다며, 엘사의 힘의 비밀과 진실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위험에 빠진 아렌델 왕국을 구해야만 하는 엘사와 안나는 숨겨진 과거의 진실을 찾아 크리스토프, 올라프, 스벤과 위험천만한 놀라운 모험을 떠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개봉 전부터 대형마트와 완구매장 등을 '안나와 엘사, 올라프'가 점령한 가운데, <겨울왕국 2>는 '본편만한 속편 없다'는 영화계 속설을 깨고 한국에서 또 한 번의 천만 관객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편집자 주

201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 최대 흥행작 <겨울왕국>.
 201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 최대 흥행작 <겨울왕국>.

겨울왕국의 위상: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판도를 바꾼 <겨울왕국>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판도는 1998년과 2014년 각기 커다란 분기점을 맞이한다.

우선 1998년에는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사 드림웍스의 초기작 <개미>(Antz)와 기독교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The Prince of Egypt)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후 근 15년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2001년 <슈렉>, 2005년 <마다가스카>, 2008년 <쿵푸팬더>, 2010년 <드래곤 길들이기> 등, 적어도 한국 한정으로는 드림웍스 작품들이 장기간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의 흥행 성적을 압도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드림웍스는 원래 디즈니 스튜디오 회장이었던 제프리 카젠버그가 1994년 설립한 제작사였다. 카젠버그는 1989년 <인어공주>로 시작된 디즈니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유능한 인물이지만, 사내 경영권 다툼에 밀려 퇴사한 뒤 '타도 디즈니'의 기치를 걸고 스티븐 스필버그와 협력해 드림웍스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이듬해인 1995년,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던 한국 제1의 식품회사 CJ제일제당은 드림웍스에 약 3억 달러(3,500억원)의 설립자금을 출자해 드림웍스 2대 주주 자리에 올라선다.

이 시점부터 CJ는 현재 'CJ 제국'이라 불리는 미디어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하는데, 그 출발점에 드림웍스 출자가 있었던 것이다. 드림웍스 투자 이후 CJ 그룹은 멀티플렉스 극장산업, 영화 및 방송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진출하며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의 본격 성장기를 주도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드림웍스가 CJ 그룹의 홍보력과 유통망을 십분 활용한 덕에 국내에서는 유독 디즈니와 픽사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힘을 쓰지 못했는데, 이 형세를 단번에 역전시켜 버린 작품이 2014년 1월 개봉한다. 바로 <겨울왕국>(Frozen) 제1편이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천만 관객을 달성한 작품으로, 당시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공할 만한 흥행력을 발휘했다.

이로써 <겨울왕국>은 1999년 첫 번째 '디즈니 르네상스' 마감 이후, 다시 '디즈니 르네상스'를 열어준 작품이 되었다. 최근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는 판국이지만, 순수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겨울왕국>이 디즈니의 대표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판도를 바꾼 <겨울왕국>.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판도를 바꾼 <겨울왕국>.

이번 주 목요일에는 <겨울왕국> 속편인 <겨울왕국 2>가 개봉한다. 현재로서는 2019년 후반기 영화계의 가장 강력한 흥행작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전편과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극복하고 재차 천만 관객의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겨울왕국>은 안데르센의 창작동화 <눈의 여왕>(Snedronningen)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물론 원작의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각색된 서사를 선보이고 있지만, 주된 설정은 분명 <눈의 여왕>의 요소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트롤의 등장, 안나가 머리와 심장에 엘사의 얼음 마법을 맞는 것, 눈의 궁전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려 하는 엘사, 이런 모티프들은 모두 원작 동화인 <눈의 여왕>으로부터 직접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애니메이션 작품으로서의 <겨울왕국>은 의심할 여지 없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주인공 엘사와 안나, 그리고 마스코트 캐릭터인 눈사람 올라프 사이의 뛰어난 연기 케미스트리, 장면 곳곳을 채우는 세밀하고 화려한 영상 표현, 몇 차례 소소한 반전 요소들을 담고 있는 서사의 긴장감....

게다가 한 번만 들어도 뇌리에 남을만한 중독성을 가진 삽입곡 'Let it go'(렛 잇 고)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최근 몇 년간 제작된 상업용 애니메이션 영화들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가진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겨울왕국의 인간관: 주권적 자아에 만족하는 고독한 실존

<겨울왕국>이 내세우는 주제는 대부분의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겨울왕국>은 가족애, 특히 언니와 여동생 사이의 우애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이 주제는 사실 표면적으로 내세운 것이나 다름없다. <겨울왕국>의 흥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흔하디 흔한 가족애 이야기가 아니라, 눈덮인 산으로 도피한 엘사가 눈의 궁전을 짓는 장면, 그리고 그 장면에서 부르던 노래인 "Let it go"이다.

해방감 속에서 ‘Let it go’를 부르는 엘사.
해방감 속에서 ‘Let it go’를 부르는 엘사.

왕권 후보자에게 집중되는 세간의 시선과 기대, 그리고 감춰왔던 자신의 능력(눈과 얼음을 만들어내는) 때문에 괴로워하던 엘사는, 대관식 날 만인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들킨 다음, 괴물 취급을 받는 것에 상심해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곳으로 떠나 버린다.

이제 자신의 능력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눈덮인 산의 정상에서, 엘사는 고독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고독에 기뻐한다.

남의 시선과 가치관을 의식할 것 없이 자기 모습 그대로 살 수 있게 된 것에 해방감을 느끼면서 부르는 노래가 'Let it go', 즉 "그냥 그렇게 내버려둬"이다.

대중문화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콘텐츠들은 하나의 동일한 조건을 만족한다. 바로 당대 시대정신을 예술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노래를 예로 들면, 존 레넌의 'Imagine(1971)'은 당시 미국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던 히피 문화의 이상을 반영한다.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1976)'는 그 히피 문화의 이상이 좌절되고 자본과 쾌락의 위력에 굴복해 버린 이들의 좌절감과 상실감을 대변한다.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1991)'이 자본화, 상업화된 1980년대 미국 인사이더 문화의 결정판이라면, 같은 해 발표된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은 주류 문화에서 도태된 아웃사이더들의 절망어린 반항을 절절하게 표현한 곡이다.

너바나와 라디오헤드 이후 미국 팝음악계의 동향은 다음의 메시지로 요약될 수 있다. "그것이 오롯이 나의 삶이라면, 불완전해도 괜찮고, 망가져도 괜찮아. 주어진 가치에 지배되지 말고 네 삶을 충만히 누려."

'Let it go'가 특별히 새로운 시대정신을 열어준 곡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주로 관람할 것이 확실한 애니메이션에 삽입된 OST로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칠 만큼 개별화된 실존을 열망하는 정신, 외부에서 주어지는 가치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삶의 정신을 표현한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유명 목회자이자 설교자인 팀 켈러(Timothy J. Keller)는 <팀 켈러의 설교>(Preaching: Communicating Faith in an Age of Skepticism)라는 저서에서 <겨울왕국>의 'Let it go'에 대해 간단하지만 진중한 비판과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의 '표현적 개인주의(expressive individualism)' 개념을 언급하면서, 오늘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기정체성의 성격을 '주권적 자아(sovereign self)'라는 말로 규정한다.

팀 켈러가 설명하기로는, 이 '주권적 자아'라는 개념은 다분히 감정적, 정념적 성격을 갖는다.

기존 기독교 문화는 감정을 무조건 무시하고 억누르기보다, 그 감정의 단면들을 일일이 검토하고 반성해서 하나님을 향하는 감정, 신앙에 유익한 감정으로 전환하는 길을 보이려 한다.

 ‘주권적 자아’를 찾고서 왕관을 벗어던진 엘사. 아렌델 왕국의 왕관은 자아 위에 선 굴레의 상징이다.
 ‘주권적 자아’를 찾고서 왕관을 벗어던진 엘사. 아렌델 왕국의 왕관은 자아 위에 선 굴레의 상징이다.

그러나 오늘날 시대정신은 인간의 감정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도구로 사용하기보다, 인간 자신의 자기성을 확증하고 드높이는 자기 수긍 혹은 자기 관용의 감정으로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감정의 과잉이 허용되고 권장되기까지 한다.

<겨울왕국>의 'Let it go'는 바로 이런 주권적 자아라는 자기애적 감정의 과잉을 대변하는 노래로 손꼽힐 만하다. 이 노래는 자기가 수긍하고 사랑하는 자기 위에 그 어떤 권위나 가치도 두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가족인 안나와 왕국민들이 부여하는 역할과 의무를 거부하는 노래로 풀이되지만, 애니메이션 바깥으로는 모든 제도적, 사회적, 종교적 가치를 위해 자기정체성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고독한 자아의 찬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팀 켈러가 명명한 주권적 자아 개념은 니체 이후 서구 인간 이해, 특히 실존철학과 포스트구조주의 인간 이해의 기본을 이루며, 이런 이해를 대중적으로 다운그레이드 시킨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핵심 줄기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서는 분명 기독교 신앙에 적대적이고 파괴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 정서는 케노시스(kenosis), 즉 자기 비움과 자기 부인인데, '주권적 하나님'이 아닌 '주권적 자아'를 찬미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기 부인이란 시대를 역행하는 어리석음 혹은 반동적 사고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겨울왕국>의 ‘Let it go’에 반영된 인간 이해는 신앙의 한 본질인 자기 부인과는 상극의 성격을 갖는다.
 <겨울왕국>의 ‘Let it go’에 반영된 인간 이해는 신앙의 한 본질인 자기 부인과는 상극의 성격을 갖는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